나의 스승

스물 네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나는 원래 저녁형 인간이었다. 소년 시절부터 책 보기를 좋아했기에 밤늦게까지 책을 보다가 날을 샐 때가 많이 있었다. 새벽 4시가 넘어서도 지난밤 독서의 여운으로 머리가 맑아져 잠이 오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아침에야 잠이 들어 오후에 일어나면 다시 늦은 밤이 되어도 정신이 말짱한 상태로 다시 책을 펼쳤다. 그런 탓에 책을 참 많이 읽기는 했다.


모든 장르를 망라한 독서를 통해 나의 젊음을 치열하게 살았고, 그것이 이처럼 나의 삶의 중요한 자산이 되리라고는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성직자가 되어 새벽형 인간으로 바뀌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변화였다. 그러나 사명이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된 것이다.


지금도 새벽 예배를 인도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새벽에 일어나 사무실로 출발한다. 집에서 사무실까지는 30여 km가 되기에 서둘러 집을 나선다. 사실 일찍 나오는 이유는 습관이 된 것도 있지만, 출근 거리가 멀고, 많이 막히는 구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들처럼 출근 시간에 맞춰 출근하면 보통 1시간 30분, 좀 막히면 2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아예 차가 막히기 전 일찍 나오면 30분이면 올 수 있으니 그렇게 5시 전에 집을 나선다. 새벽 예배가 있을 때는 3시 30분 이면 집에서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집에서 나와 출근하면서 성산대교를 건널 때쯤, 나는 습관적으로 하늘을 보게 된다. 자유로에서 성산대교를 타려면 어쩔 수 없이 눈이 하늘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어찌나 오묘한지. 비슷한 시간대에 하늘을 보는데, 어쩌면 하늘이 그렇게 다른지. 겨울이면 아직도 캄캄한 밤하늘에 구름이 달빛에 비쳐 찬란하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하지 언저리의 새벽에는 이미 동이 훤하게 터서 이른 아침의 일출을 보기도 한다.


성산대교를 타면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여의도의 마천루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아직은 어두운 한강과 주변의 아파트들이 보인다. 그렇게 새벽하늘을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 있다. 세상이 참 아름답다는 것. 이 멋진 세상을 만드신 그분이 계신다는 것. 이것은 비단 새벽하늘을 볼 때만의 감상을 아니다.


어린 날부터 여행을 좋아했기에 지금도 시간이 나면 이 나라의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것을 즐겨한다. 그것도 나는 웬만하면 두 발로 걸으며 자연을, 사람들을,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을 즐긴다. 그렇게 삶을, 인생을, 세상을 보면 삶이란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 너무나 신비하고 놀랍다. 한 번은 지리산 둘레길 3코스를 금계 구간을 걸은 적이 있다.


20km가 훌쩍 넘 고, 산을 몇 개를 넘는 난코스였지만, 거의 10시간에 걸쳐 그 구간을 걸었다. 6월의 더운 날이라 땀은 연신 온몸을 적시는데, 10시간 내내 한 사람도 만나 지 않는 고독한 산행이 얼마나 상쾌한지 콧노래를 부르면서 걸었다.


그런데 작은 산 정상쯤을 지나면서 잠깐 쉬려고 길가 바위에 앉아 있는데,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개미 떼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 개미 떼가 수십 수 백 마리가 아니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천수만 마리가 되어 보였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많은 개미 떼의 행렬이 너무나도 일사불란했다.


그들이 논산 훈련소에서 제식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데, 어쩌면 그처럼 질서 정연한지. 한참을 개미 떼를 보면서 생각한 것이 있다.


사람은 아무것도 아님을. 나의 얕은 지식과 경험은 아무것도 아님을. 그러기에 더욱 겸손하고, 배우고, 남을 존중해야 함을. 자연은,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머리 숙이게, 무릎 꿇게 하는 나의 스승이다.


0_3.png 새벽에 서울을 달리는 남성의 모습을 AI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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