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세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사람에게는 각기 다른 향취가 난다. 어린 아기에게 나는 젖 냄새, 다른 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화장품 냄새, 사랑하는 이를 위해 열심히 준비한 음식 냄새, 하루 종일 짙은 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땀 냄새 등, 사람으로 붐비는 곳은 이런 향취가 뒤섞여서 고얀 냄새가 되어 버린다. 머리가 멍해지는 고얀 냄새를 맡게 되면 숨이 가빠지고 머리가 하얘지며 금세 맑은 공기를 맡기 위해 창문을 열어야 한다.
그러나, 이를 나누어서 접하게 되면 다르다. 너무나 사랑하여서 그 무엇이든 아끼질 않은 아이의 냄새, 평생을 사랑하기로 맹세하며 마치 나의 살과 같이 나의 뼈와 같이 대하는 배우자의 냄새, 이제는 장성하여 자녀까지 나은 아들을 한술 더 먹이겠다고 열심히 요리를 하시는 어머니의 냄새, 가족들을 위해 뼈가 부수어지고 녹아내리는 고통을 감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버지의 냄새, 그 어떤 냄새가 향취가 아니고, 그 어떤 냄새가 내게 고통이 되겠는가?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이 외부정보를 받아들이는 주된 통로는 시각이라고 한다. 약 80프로의 정보가 이 시각을 통해 들어오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시각 자체는 어머니 배에서 나와서 발달되는 감각이다. 그에 비해 이미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발달되는 감각이 있으니 이는 미각과 후각이다. 그래서 그런지 신생아들의 모습을 보면 가장 먼저 맛을 통해 무언가를 판단하고, 그다음에는 냄새를 통해 무언가를 판단한다. 어머니의 향취를 기억하고 어머니가 안아야 편하게 잠들곤 한다.
하지만 누군가를 기억하는 과정은 단지 오감의 결과만은 아니다. 명확히 이야기해 본다면 오감은 단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통로일 뿐이지 결과는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향한 기억이란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고, 이 기억을 이루는 조각들을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이후 기억을 살펴보게 되면 그 안에는 오감의 조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이야기만 남아있게 된다. 단지 그 이야기를 이루었던 오감의 조각과 유사한 감각을 느끼게 되면 마치 솥뚜껑을 보고 자라 생각을 하듯, 그 감각이 통로가 되어 옛이야기로 여행을 떠나게 만들 뿐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누군가와의 관계를 특별하게 만드는 배경이 된다. 누군가와 특별한 경험이 있고 나면 다시금 그를 만났을 때 그를 내 시각 청각 후각을 통해 대면하게 되었을 때 옛이야기가 떠오르고 그 이야기는 그와 내가 새롭게 쌓아가는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것이다.
이미 배경이 있는 이와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되면, 더 두터운 배경이 쌓이게 되고, 종국에는 이는 굵은 동아줄이 되어 서로를 묶어 주는 것이다. 이 동아줄을 통해 짙은 감정이, 애정이, 마음이 오고 가는 것이다.
처음 교구를 맡고 나서 성령대망회를 하게 되었다. 이때 얼굴을 알고 있었던 분은 미리 인사하였던 교구의 중책을 맡으신 세분의 권사님뿐이었다. 수십 명 중의 세 명뿐이니 거진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다. 떨리는 마음도 있었고,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한 달을 보내고 다시금 성령대망회를 하게 되었는데, 그 사이 열심히 지역예배를 드려서인지 아는 얼굴이 대부분이었다. 이전에는 군중으로 보이던 성도님들이, 이제는 한 명 한 명 특별한 이야기로 내게 다가왔다.
그래서 그런지, 이제는 매 주일 한 번에 수십 명씩 들어오시는 성도님들 가운데도 우리 교구 성도님들이 쉽게 분간할 수 있다. 마치 뒤에 후광이 비추는 듯, 각자만의 향취를 지니신 성도님들이 내 눈에 쏙쏙 들어오곤 한다.
이런 순간에도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인연이 있다. 사랑하는 딸과 아내이다. 몇 백 명에 이르는 성도님들이 기도를 받고 가시는 주일의 일상이 영화처럼 흘러가는데 그 영화를 뚫고 나의 현실로 다가오는 이들이다. 주위를 둘러싼 모든 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이질감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는 내 기쁨이며, 즐거움이고,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하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