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새벽 3시 30분에 잠이 깼다. 잠이 깨어 화장실에 다녀온 뒤 다시 잠을 청했지만, 한 번 깬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30분을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서재로 와서 이런저런 뉴스를 살펴보았다. 지금 시간은 4시 30분. 결국 다시 오지 않을 잠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열었다.
어제는 주일이라 세 번의 설교를 하고, 장례까지 있어 입관 예배를 인도했다. 피곤한 몸과 마음을 잠으로 달래겠다고 마음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느긋하게 7시까지는 자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7시는 웬걸 새벽 3시 30분이라니.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 잠이 다시 안 올까, 생각해 보니 그것이 나의 일상적인 루틴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평소에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젊은 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맑은 밤들을 지새면서 수많은 책과 씨름했던 젊은 날이 있었다. 도스또예프스키에 심취했고, 발작, 스탕달, 체홉, 뚜르게네프에 빠져 살던 그 시절, 일찍 자야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 내가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된 것은 독일에 가서 새벽 예배를 인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독일에 가기 전에도 간혹 새벽 예배에 가기는 했지만, 그것은 간헐적이었고, 청년 사역의 특성상 대부분의 사역은 오히려 밤에 이루어졌다. 그런 내가 독일에서 한 교회를 담임하고 새벽 예배를 인도하면서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 거룩한 짐이 되었다.
그것도 다른 교역자도 없이 나 혼자 그 짐을 져야 했기에 더욱 거룩한 부담이 된 것이다. 처음 독일에 갔을 때 내가 맡은 교회의 상황은 많이 어려웠다. 성도 간에 다툼과 시비가 있었고, 교회에 와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들어하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 부임한 담임 목사가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오히려 성도들에게 오해의 소지를 줄까 싶어 매일매일 살얼음을 걷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러하기에 새벽 예배를 늦을까 걱정이 되어 어떻게 하든 일찍 잠자리에 들려고 했고, 새벽에는 몇 개의 알람을 맞춰 놓아 알람 소리를 들으며 새벽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렇게 힘들었던 독일 사역의 초기를 지내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가 안정되고, 점차 부흥되었다.
그리고 그야말로 하나님의 손길이 닿아 독일 교회 건물을 매입해서 성전을 이전하고 사택마저 교회에 붙어 있는 곳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웬걸, 사택을 이사해 보니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택이 교회와 붙어 있다 보니 이제는 성도들이 시도 때도 없이 사택을 찾아오는 것이었다. 오는 성도를 막을 수도 없으니 그야말로 유리 집에 사는 것과 같았다.
더구나 이제 새벽 예배는 다른 핑계를 댈 수도 없었다, 집이 교회에 붙어 있으니 안 갈 수도, 못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돌이켜 보면 10년을 사역하면서 두 번쯤 새벽 예배에 늦은 것 같다. 알람을 맞춘다고 맞췄지만, 뭔가 잘못되어 알람이 울리지 않았다 한참 단잠을 자고 있는데 요란한 초인종 소리에 놀라 나가 보니 한 성도님이 목사님이 왜 안 오냐고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옷을 입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성전에 올라가니 수십 명의 성도들이 찬송을 부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찌나 미안하고 멋쩍었는지, 그 이후 독일 사역을 마칠 때까지 더는 늦지를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시작된 나의 수면 루틴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저녁이 되면 5시쯤 일찍 저녁 식사를 하고 늦어도 8시에는 잠자리에 든다. 새벽 예배 있을 때는 좀 더 일찍 자기도 한다. 그리고 새벽 3시, 늦어도 3시 반에는 잠에서 깬다. 오늘처럼 월요일 아침에는 늦잠이라도 자려고 마음먹고 자리에 눕는데 그럴 때도 있지만, 이렇게 루틴에 따라 새벽 일찍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조금 전 그렇게 잠에서 깨어 침대에서 뒤척이다가 그런 생각이 났다. 왜 나는 좀 더 자지 못하고 이렇게 일찍 깨어 예민하게 생각의 날이 설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래, 오늘 하루는 이렇게 일찍 시작하는구나. 하나님이 나를 좀 더 일찍 보고 싶어 하시는구나. 감사한 마음으로 일어나자. 그리고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자.’ 그 어떤 사람이 자신이 원해서 이 세상에 존재할까. 태어나보니 이렇게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은 매일매일이 경이와 기적의 연속이다. 이 소중한 매일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면서 살아야겠다. 이제 미뤄두었던 이 글도 썼으니, 옷을 걸쳐 입고 또 하나의 루틴인 워킹을 하러 나가야 하겠다. 이렇게 올해의 추석날,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