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할 수 있나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6년 하고도 6개월은 더 쓴 청소기가 고장 났다. 충전도 안 되고 켜지지도 않았다. 배터리 문제인 듯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비스 센터에 가서 점검받았더니, 1분도 지나지 않아서 배터리가 수명을 다했다고 했다. 결국 생각 못 한 큰 지출이 생겼다. 배터리를 사서 돌아왔다. 그래도 청소기 가격보다는 싸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나를 위로하는 유일한 생각이었다.


솔직히 이야기해 보면, 이 일도 몇 주째 뒤로 밀었던 일을 해낸 것이다. 일정이 있기도 했지만, 사실 큰 어려움도 없으면서 단지 방문하는 일이 귀찮아서 여태껏 뒤로 밀어왔다. 그러다가 방구석에 먼지를 보며 이제는 밀대걸레로만 청소하는 것이 한계구나, 생각하게 된 것이 오늘 서비스 센터를 방문하게 된 동기였다.


서비스 센터를 갔다 오고 나서, 청소해야 하는데, 집에 들어오니 쉬고 싶고, 쉬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고, 점심을 먹고 나니 점심을 먹으면서 보았던 영상을 끝까지 보느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분명 청소하기 위해 청소기 배터리를 비싼 돈 주고 산 것이건만, 몸이 자꾸만 늘어진다. 애꿎은 청소기만 자기 자리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으리라.


그래도 어찌하겠는가, 월요일인데. 월요일이니, 나도 좀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강하다. 고된 일을 하고 사는 것도 아닌데, 휴일이라고 주어진 월요일이니, 그 주어진 역할을 잘 감당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자꾸만 늘어진다. 휴일이라고 해야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닌데, 움직이기가 천근만근 같다. 괜히 이방 저 방 다니며 드러누워 본다.


이렇게 드러누워 있다가 보면 마음이 채워지려나 싶다. 기운을 내라고 커피를 마시고, 단 간식을 먹고, 에너지 음료를 먹어보아도 바닥으로 온몸을 끌어내리는 힘을 감당할 수 없다. 유독 내게만 더 큰 중력이 발동되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무력함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바로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먼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집 안 정리를 하고, 빨래를 분류하여 세탁기에 넣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이곳저곳 먼지가 쌓인 곳을 걸레로 닦고, 산처럼 쌓여있는 설거지도 하고, 건조기 안에 정리하지 못했던 빨래를 개어 넣는다. 여기에서 포인트는 열심히 하지 않는 거다. 처음에는 정말 조금씩,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조금씩 조금씩 해야 할 일을 해나가다 보면, 어느샌가 손이 빨라지고, 몸에 열기가 돌며, 마음이 상쾌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정리가 다 되면, 다른 할 일들도 문제없이 하나씩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사람은 신기한 게 축 늘어졌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면 일을 해나갈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오늘도 다시 일어나야지. 하나씩 해나가야지. 애써 무거운 맘을 일으켜 본다.


ChatGPT Image 2025년 11월 24일 오후 04_00_15.png 청소기를 미는 모습을 AI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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