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집이 좋아

서른 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40년간 매주 일요일 설교를 하면서 나에게 생긴 불문율이 있다. 토요일이면 원칙적으로 약속을 잡지 않는 것이다. 아주 중대한 일이나, 결혼 주례가 아니면 사람들을 따로 만나지 않았다. 그러니 어디 외부에라도 나가는 것은 더욱 삼가는 일이었다.


그러던 차에 교회에서 남자 성도들이 굳이 토요일에 단합을 위해 모여야 한다니, 4년 만에 모이자는 요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럼 모여도 동네에서 모여서 식사나 하면 좋으련만 지금이 굴 철이니 굳이 굴을 먹으러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최하는 분에게 다음날이 주일이니 늦지 않게 도착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게 해서 정말 오랜만에 토요일 아침 8시에 교회에서 굴 단지로 출발했다. 도착지는 충남 해안가에 있는 천북이라는 곳인데 보령 근처 바닷가라는 것이다. 차가 밀릴까 싶어 조금 일찍 출발한다고 했는데 서해안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웬걸, 도로는 이미 차들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웬 사람들이 그렇게 차들을 끌고 왔는지 아직 9시가 안 되었는데도 차는 고속도로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밀리고 있었다. 늦어도 10시 반이면 도착하리라던 호언장담은 결국 허언으로 끝나고 11시가 넘어서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이른 시간에 음식점은 이미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다행히 예약을 해놓은 관계로 음식은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상에 차려진 음식을 보는 순간, 숨이 탁 막혔다. ‘커다란’도 아니고 ‘거대한’ 양푼에 가리비 조개와 굴이 잔뜩 쌓여 있는데 나는 보기만 해도 이미 질릴 정도였다. 각상마다 네 사람이 앉았는데 과연 저 많은 것을 네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어서 줄줄이 음식들이 연이어 나왔다, 굴 파전, 굴 무침, 굴 라면, 굴 칼국수, 굴밥, 굴로 요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요리가 계속 나왔다. 나중에는 상에 음식을 놓을 자리가 없어 의자 옆에 놓아야 할 정도였다. 한 손에 두터운 목장갑을 끼고 까먹는 굴찜은 아무리 까먹고, 또 까먹어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내 눈을 더욱 의심하게 하는 정경이 옆 좌석에서 벌어졌다. 우리 좌석은 네 명이 음식을 먹고 있는데, 옆 좌석은 세 명이 그 많은 음식을 다 처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먹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우리는 조개와 굴찜을 아직 반도 먹지 못했는데 그쪽은 이미 바닥이 드러나 보였다.


결국 우리 좌석의 굴찜을 아낌없이 그들에 퍼주고 나서야 겨우 앞에 놓인 음식을 처리할 수 있었다. 거기에 배는 얼마나 불렀는지 일어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럼에도 남의 음식까지 더 드신 분들은 연신 자리를 일어서기 아쉬운 듯 굴 파전에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


어느덧 시간이 12시도 훌쩍 넘어 이제 어디 좋은 곳에 가서 커피 한잔하고 서둘러 올라가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약 50km 떨어진 보령에 상하원이란 좋은 곳이 있으니, 그곳에 가자는 것이었다. 다들 가자고 하는데 내가 반대해서 초를 질 수도 없는 상황이라 속으로는 걱정했지만, 겉으로는 그렇게 하자고 시원하게 동의했다.


그런데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시골길을 1시간이 넘도록 달려서야 상하원이 있는 작은 섬 다리를 지나려는데 다리에 들어서는 순간 뭔가 잘못 왔다는 생각이 심하게 들었다. 차들이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겨우 어렵사리 주차장으로 들어가려 하니 이미 주차장은 만차라 들어갈 수도 없었다.


결국 1시간도 넘게 걸려서 간 상하원은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차를 돌려 임근의 대천 해수욕장으로 갔다. 저 유명한 대천 해수욕장에 가니 그곳도 이미 차들의 물결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주변의 음식점과 카페들이 도로 두차장을 점거하고 주차를 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차를 대기도 어려웠다.


그나마 겨우 차를 주차하고 커피숍에 들어가서 한 30분쯤 있었을까 하다가 우리는 가는 길을 걱정해서 카페를 나와 드넓은 대천 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인증숏을 한 장 찍고 2시 30분에 광명으로 출발했다.


그나마 올라가는 길은 그렇게 막히지 않았다. 홍성을 지나 당진으로 가는 내내 길이 열려 있어 기분 좋게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즐거움도 잠시, 서해대교에 있는 휴게소에서 잠시 쉰 후 서해대교를 건너자마자 차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해안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운전하시는 분은 차가 이렇게까지 밀리지는 않는데 이상하다고 하면서 좀 더 빠른 곳으로 가겠다고 차를 돌려봤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차가 가는 모든 도로는 다 막혔다. 결국 차가 광명에 도착한 시간은 6시도 훌쩍 넘은 6시 20분경이었다. 그러나 어쩌겠나. 이미 해는 졌고, 상황은 되돌릴 수도 없는데.


나는 그곳에서 집까지 다시 꽉 막히는 도로와 씨름하며, 감사하며, 기뻐하며, 도를 닦으며 집에 도착했다. 그날 하루의 기억이 하도 강렬하여 월요일 새벽, 일찍 눈을 뜬 나는 혹시나 그 엄청난 추억을 잊을까 이처럼 그날의 소회를 적고 있다. 좀처럼, 아니 전혀 하지 않던 지난 토요일의 여행을 추억하며 기록하는 한 줄의 감상은 이것이다. ‘토요일은 집이 좋아’


ChatGPT Image 2025년 12월 1일 오전 11_28_41.png 굴을 먹는 모습을 AI로 그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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