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왕이 되어서

서른한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일 년에 3주 정도 부모님이 한국에 가셔야 하는 일정이 있으셨다. 선교사들이 모이는 시기에 귀국하셔서 그간 진행된 선교사역을 보고하시고, 사람들을 만나 기도를 요청하시고, 한국에서 처리해야 하는 다양한 일들을 감당하시고, 자투리 시간이 나면 한국에서만 사 올 수 있는 각종 선물들을 사 오시는 시간이었다. 물론 누나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정은 마지막 일정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대게 5월, 좀 늦어지면 6월 정도에 이 일정이 있으셨는데, 그때는 여름 방학이 시작하기 전이라 누나와 나는 독일에 있어야 했다. 처음 부모님이 우리를 두고 한국에 가셨을 때는 둘만이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무섭고 두렵기도 했지만, 우리도 서서히 나이를 먹어가다 보니, 질풍노도의 시기도 찾아오고 겉으로는 슬퍼하였지만, 속으로는 기뻐하는 때가 오기도 했었다.


어머니께서는 둘만 남겨진 자식들이 굶을까 봐, 냉장고 가득 반찬을 해두시고, 국도 한 솥을 끓여 놓으시고, 냉동고에는 요리해 먹을 수 있는 재료를 가득 채워 두셨고, 혹시나 해, 라면과 컵라면도 사두셨다. 대게 우리의 선택은 라면과 컵라면이었는데, 대신에 참 다양한 방법으로 라면을 끓이는 방법을 습득하는 시간이 되었다.


처음에는 라면을 끓이는 것도 귀찮으니 컵라면을 주로 먹었고, 그다음에는 봉지라면을 끓여 먹었다. 그 라면도 냄비를 꺼내는 게 귀찮아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일도 많았다. 그러다가 라면이 좀 질릴 때쯤 되면 냉동고에 있는 다양한 재료들을 라면에 넣어 먹곤 하였다. 그렇게 열심히 라면을 먹었는데, 라면을 다 먹게 되거나, 라면이 질리게 되면, 해두시고 가신 반찬을 먹거나, 간혹 가다가 요리를 해먹기도 했다.


대단한 요리를 한 것은 아니고, 보통은 간단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요리를 했다. 나의 경우에는 김치볶음밥, 김치부침개 위주로 해먹곤 했다. 맛이 그렇게 있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본인이 해 먹기는 부산한 일이다 보니 누나도 제법 자주 내가 한 요리를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언젠가 결혼을 하고 그때에 기억을 떠올리며 김치볶음밥을 한다고 설치며 온 주방을 어지럽혔던 적이 있다. 오랜만에 해서인지 그때 그 맛이 제대로 나지 않았고 그 후로 아내는 더 이상 내가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요즘은 김치가 들어간 요리 말고도 다른 요리를 하는 경우도 있다. 대게는 아내가 아이에게 붙잡혀 있어서, 아이가 엄마를 놓아주지 않아서 아내의 지시에 따라 요리를 하는 경우다. 나 같은 경우 요리를 할 때 감을 의존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제발 맛 좀 봐가면서 레시피대로 요리를 하라고 혼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아내는 철저한 편이다. 레시피에 나오는 그대로 따르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래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니, 내가 요리를 하게 될 때에도 아내의 지시에 따라 요리를 하는 것이다. 아내가 알고 있는 레시피를 단계별로 이야기해 주면 그 단계에 따라 요리를 한다. 그러면 내가 하는 요리라도 제법 먹을 만한 음식이 되곤 한다. 더욱이나 요새는 밀키트도 참 잘 나온다. 밀키트의 경우 아내의 지시가 없어도 준비된 재료를 설명서에 따라 요리하면 되니 이것도 성공 확률이 제법 높은 편이다.


오늘 점심은 아쉽게도 밀키트가 아니었고, 아내도 없었다. 양념된 불고기였는데 아내가 소분해 놓은 거였다. 큰 어려움 없이 그냥 프라이팬에 볶기만 하면 되는 초간단 요리였다. 설명서도 아내도 없었지만 옛적에 김치볶음밥을 해 먹던 담대함을 일으켜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볶아냈다. 고기만 있는 것이 섭섭해서 냉장고에 있는 버섯도 넣어서 볶았다. 그러다가 한 번씩 뚜껑을 덥어주곤 하였는데, 그 갇힌 열기로 고기도 익고 버섯도 잘 익게 되었다. 이를 밥 위에 얹어서 먹었더니 제법 먹을만하였다.


언젠가 요리가 좀 능숙해지면 누나를 초대해 밥을 해주어야겠다. 옛날에 말도 안 되던 내 요리도 맛있다고 먹어주었으니, 밀키트이든 아내의 도움을 받든, 그에 따라 만들어진 제대로 된 요리라면 들쑥날쑥하고 엉망진창일 것 같은 누나의 속을 달래어 주지 않을까. 뭐 사실 누나는 나보다는 훨씬 씩씩한 편이라 전혀 그런 마음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소심한 남동생은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뿐이다. 근래에 자꾸 연락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속상할 뿐이다.


ChatGPT Image 2025년 12월 8일 오후 02_47_21.png 김치볶음밥을 만드는 장면을 AI로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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