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두 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1999년 9월 16일 밤 9시 30분쯤 나는 처음으로 독일 뒤셀도르프에 발을 디뎠다. 오랜 비행 여정으로 몸은 파김치가 되었지만, 평생 처음 도착한 낯선 타지에 도착한 나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공항 출구를 나섰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성도들과 인사를 나눈 후 차를 타고 시내에 접어들었을 때 처음 본 독일 도시의 느낌은 어둡고, 침울한 느낌이었다.
아직 반 10시가 되지 않았음에도 도심에 불빛이 거의 없었고, 도시 전체가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독일 생활에서 가장 피부로 와닿는 것은 언어의 불편함과 날씨에 적응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어차피 언어는 이제부터 배워가면 될 일이었지만, 문제는 날씨였다.
짧은 가을이 지나고 10월 중순부터 독일 특유의 음울한 가을과 겨울이 시작되었다. 더구나 처음 만나는 독일의 겨울은 한국의 겨울과는 사뭇 달랐다. 한국은 겨울이 건기라 주로 건조하고, 쨍한 추위로 사람의 몸을 얼어붙게 했다. 그런데 독일은 겨울에도 좀처럼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위도는 서울보다 훨씬 높았지만, 대서양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한국 같은 대륙의 추위는 없었다. 그러나 겨울이 우기인 독일에서는 겨울 내내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남쪽 알프스 쪽 독일에는 눈도 많이 온다고 했지만, 내가 사는 독일 중부에서는 눈보다는 비가 겨울을 책임졌다.
거기에 전기세도, 기름값도, 가스비도 한국에 비해 월등하게 비싼 독일에서는 실내에서 20도 이상 온도를 올리는 법이 없었다. 보통 1-2도의 기온에 하루 종일 비가 오는 날씨를 상상해 보라. 그야말로 뼈를 에이는 추위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처음 독일의 겨울을 맞는 한국인들은 온돌도 아니고, 라디에이터로 기온을 올리는 독일 집 라디에이터에 몸을 바싹 붙여도 추위를 견디기 어려웠다.
그나마 밖에 나가면 파란 하늘이라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웬걸 밖을 나가면 하늘이며, 집들이며, 사람들이며 온통 회색이 독일의 겨울을 장식했다. 먼저 독일에서 사신 성도님들이 그런 말을 했다. “목사님, 독일 겨울에 자 적응해야 합니다. 독일에 온 한국 사람 중에서 독일 겨울을 견디지 못해서 마음을 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분들의 말이 일리 있다 할 만큼 독일의 겨울은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나는, 독일의 겨울이 좋았다. 독일의 흐림이, 음울함이, 회색이 좋았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너무 맑고 밝고, 들뜬 날씨나 분위기가 별로였다. 계절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달이 2월이었던 만큼 좀 우울하고 잿빛 하늘을 좋아했다. 그런데 독일이 딱 그런 날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남들은 날씨가 우울하다, 침울하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독일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 갈대와 같다던가. 그런 독일에 적응하며 살게 되면서 3년이 지나고 5년이 지나며 어느 순간 햇빛을 그리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겨울에 아주 드물게 해라도 보이는 날에는 내 마음까지 덩달아 환해지는 걸 보면서 사람은 결코 환경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독일에서의 10년을 잘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독일에서는 참 길었다. 독일은 한국에 비해 시계가 늦게 돌아가는지 10년이 한 30년은 된 듯하다. 그리고 독일에서 돌아온 지 어느덧 16년이 지났다. 아직도 요즘 같은 겨울 독일을 떠올리면 독일의 잿빛 하늘이 생각나지만, 그것도 이제는 아스라한 추억으로 내 마음에 담겨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참 코로나로 인해 팬데믹의 공포가 전 세계를 뒤덮던 시절, 일과를 마치고 교회에서 집으로 차를 타고 가는데 마침 독일의 겨울 하늘이 생각날 만큼 온 도시가 잿빛으로 변했다. 그때 문득 마음이 답답해졌다. 언제까지 이 팬데믹이 계속될지. 삶이 이 잿빛 겨울처럼 계속 우울하다면 어떻게 앞으로 버텨야 할지 하는 막막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그런 생각은 잠깐의 우울로 끝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때의 먹먹함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그러나 삶은 놀라운 치유력이 있었다. 영원할 것 같던 팬데믹의 시대가 끝나고 삶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며칠 전 나는 한국에서 독일의 겨울을 만났다. 하늘은 온통 잿빛으로 어두웠고,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잿빛이 아니었다. 저 잿빛 하늘 너머에 쨍하게 맑은 겨울 하늘이 자리 잡고 있음이 생각났다. ‘맞아. 내가 눈을 들어 보는 하늘은 언제나 파란 하늘이었지. 단지 이런저런 구름들이 잠깐 자리 잡고 있는 것이지. 저 구름이 걷히면 다시 밝은 세상이 내 앞에 펼쳐질 거야.’
누구의 삶이 언제나 맑고, 밝고, 환하기만 할까. 어둡고, 막막하고, 짙은 독일의 겨울 같은 삶도 이어지기도 한다. 꼭 기억하자. 슬픔과 아픔의 구름은 언젠가 반드시 걷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