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세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요즘 한 오티티에서 방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서 복싱 경기를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 중에는 어렸을 적부터 복싱을 배워서 복싱하는 엘리트 선수도 있고, 프로로써 복싱하는 선수도 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취미로 복싱하는 이들도 있으며, 다양한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던, 하지만 이제는 은퇴한 이들도 나온다. 이런 다양한 이들이 나옴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 모두 복싱을 사랑하고, 아직도 그 복싱을 즐거이 한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가 한 출연자의 멘트가 귀에 들어왔다. 복싱은 싸움이 아니다, 스포츠다. 이 말에는 복합적인 의미가 숨겨져 있다. 이는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 첫 번째이고, 복싱에는 꼭 지켜야 하는 룰이 있다는 것이 두 번째이며, 그러하기에 복싱에는 기술과 전략이 있다는 것이 세 번째이다.
그래서 그런지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어렸을 적부터 복싱을 해왔던 엘리트 선수들이 빛을 보는 것 같다. 복싱 기술로 훈련되고, 철저히 이성적으로 상대방을 분석하며, 전략적으로 경기를 운영하다 보니, 웬만한 체급 차이가 아니면 쉽게 엘리트 선수들을 당해내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복싱을 할 때는 감정이 주가 되어서는 안 되고, 전략적으로 기술을 가지고 대할 때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니 어렸을 적 생각이 났다. 한 번은 한국에 가셨던 아버지께서 복싱 글로브 2세트를 사 오셨다. 이유를 들어보니, 나와 복싱을 하기 위해서라고 하셨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때의 나는 복싱과 그리 친근한 사이가 아니었다. 복싱이라는 스포츠가 텔레비전에서 그것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을 봤지 실제로 경기를 해본 것은 물론이요, 경기를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당시 사춘기에 막 들어간 나로서는 복싱 글로브를 보자마자 흥미가 돋았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우리 집 거실에서 역사적인 첫 경기를 치러졌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복싱 글로브를 끼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비슷하게 주먹질을 해대었지만, 아버지는 한 대도 맞지 않으셨다.
잽으로 나를 툭툭 치셨는데, 그게 또 성질을 돋우어서, 더 이상 두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막무가내로 두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갔는데 그런 주먹에 누가 맞겠는가. 결국 제대로 옆구리 꽂힌 주먹 한 방에 방구석을 굴러야만 했다.
한참이 지나 고통이 좀 가시자, 글로브를 벗어던지고, 나 안 해, 외치고 방에 들어가 버렸다. 그러고 나서 두, 세 번 정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다. 두, 세 번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다 보니, 아 나는 이걸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철하게 바라보고 해도 될까 말까 한데 흥분해서 달려드니 어찌해도 안 되는 것이었다.
사실 복싱만 그러하겠는가, 세상만사가 다 그렇다. 감정적으로 달려들어서는 될 일도 안 된다. 인생에 어떤 어려움과 문제도 차분한 마음을 가지고 바라볼 때 해결하는 방법이 생겨난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경험할수록 깨달아지는 것은 세상은 내 맘대로 하나도 안된다는 것이 첫 번째이고,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것이 두 번째이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자.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갑갑해하지 말자.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한 걸음씩 걸어가자. 내 입속에 매일 맴도는 기도이다. 이렇게 외우다 보면 언젠가는 이 고달픈 인생도, 이를 이겨내는 걸음도 더 이상 치열한 싸움이 아닌, 복싱 경기와 같이 즐거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