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두 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던 2월의 어느 아침, 여느 때처럼 일찍 사무실에 나와 한가한 새벽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문득 생각나는 노래가 있었다. 전혀 뜬금없이, 왜 그 노래가 생각났는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참 뜬금없는 일이었다. 그때 생각난 노래는 이런 가사의 노래였다.
‘쇼쇼 쇼조리 쇼조리 노 니나와 준준 준모레오 민나데데 또이또이또이 오이라노 도모다찌 복구리 복구리 보’
이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아는가. 짐작할 수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일본 노래다. 일제 강점기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어머니가 내가 어릴 적에 항상 들려주었고, 그래서 나이가 이만큼 먹은 지금도 가사로 곡조도 기억하고 부르는 노래다.
신기한 것은 이 노래를 떠올린 것이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잊고 있던 노래가 왜 갑자기 툭 튀어나와 내 입으로 부르게 했는지, 내 입이요, 내 머리이지만, 나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그렇게 노래를 떠올리면서 다시 한번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 노래의 가사가 무슨 뜻인지. 평생을, 가끔, 이 노래가 기억날 때마다 궁금했는데 아직까지 이 가사의 뜻을 모르니 이 기회에 파파고나 돌려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파파고를 돌려봤다. 그런데 할 때마다 다른 내용이, 그것도 전혀 이해되지 않는 문장으로 번역이 됐다. 내가 알고 있는 노래의 가사가 틀린 것인지, 내 일본어 발음이 달라서인지, 이해할 수 없는 노래 말이었다. 아무튼 이번에도 이 노래 가사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실패한 듯하다.
아쉬운 것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여쭈어보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면 무뚝뚝하기만 한 장남의 어린 시절 추억의 소환에 환하게 미소 지으셨을 텐데. 사람의 뇌는 참 신기하다. 더구나 오랫동안 간직된다는 장기 기억의 경우가 그렇다.
왜 전혀 생각하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았는데 불쑥불쑥 뜬금없는 기억들이 소환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단어나, 곡조, 풍경이나, 뭔가라도 연관 있는 것이 생각 속에서 떠오를 때 숨어 있던 기억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때는 그런 것도 전혀 없는데 갑자기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기억이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뜬금없이 떠올랐다. 누나가 경희대학교를 다녔기에 대학교 1학년 누나의 대학 교재를 보다가 전 경희대 교수였던 서정범 교수의 수필을 읽게 되었다. 그 수필의 제목은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였다.
그 수필의 내용이 어떤 내용인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수필을 보고 난 다음의 느낌은 기억이 난다. 작가가 그 수필에서 말한 놓친 열차는 예전의 기억이다. 아니 기억 중에서도 놓친 열차이기에 아프고 아쉬운 기억이다.
당시에는 열차를 놓친 것처럼 속상하고, 아픈 기억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기억이 추억이 되고 나니 그 아픈 기억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 수필의 제목도, 내용도, 글귀도 참 아름다웠다.
이전까지는 시와 소설에 심취해 왔던 나는 비로소 수필의 멋짐에 빠져들어 그 후 서정범 교수의 수필집뿐 아니라 저 유명한 피천득 교수의 수필 등, 당대의 수필집을 섭렵했다.
그런 수필에 대한 애정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서 전 서강대 교수였던 장영희 교수의 수필까지. 현대 모더니즘 문학의 시조라고 일컫는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20대 초반에 보았다.
내 평생 읽던 책 중에서 가장 뜬금없는 책이기도 하다. 기존의 문학의 틀을 다 파괴하는 소설의 구조에 오직 한 가지 이유만으로 책을 다 읽었다. 난해한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보았다. 는 자부심을 가지려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책이야말로 작가의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간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때로는 뜬금없음도 아름답다. 소중하다. 뜬금없는 생각, 말, 행동에 나도 모르는 내 삶의 소중한 의미가 담겨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니 갑자기 지금 이 아침에 이 글을 뜬금없이 쓰는 이유가 떠올랐다.
지난번 연재 글을 마감날에 생각나 서둘러 글을 쓰며 연재 글을 ‘유비무환’하겠다는 생각이 이 아침에 뜬금없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참 뜬금없는 오늘,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