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 서는 때

마흔한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설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이제 귀경길 정체도 점점 끝에 다다르고 있다. 굳게 잠겨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던 귀경차량의 바퀴도 서서히 내일 찾아올 일상을 향해 굴러간다. 3일의 설 연휴였지만, 이미 지난 주말부터 전국으로 향하였던 발걸음이 다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시간이다.


뉴스를 보니 이번 해 귀경행렬 중 가장 정체가 심했을 때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6시간 40분 정도 소요되었다고 한다. 보통 때는 4시간 반에서 5시간 정도 걸리니 퍽이나 많은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는 것이다. 지금도 운전하고 있을 모든 분께 심심한 위로를 올려드려 본다. 그래도 몇 해 전 보았던, 거진 9시간에 걸쳐서 이동했다는 뉴스에 비하면 이 정도는 반가운 소식일 것이다.


작은 판단 실수가 있어도 긴 시간을 길 위에서 보내어야 하다 보니 다들 연휴가 되면, 눈치싸움을 한다. 언제 출발하고, 언제 돌아오는 것이 그나마 수월하게 오고 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눈치싸움이 때로는 좋은 핑곗거리도 되는데, 사람을 피하고 싶을 때, 본가에서 빨리 나오고자 할 때 될 수 있는 탁월한 이유가 된다.


나는 목회자이기에 명절 연휴를 전부 다 쉬어본 적이 요 10년 내에는 거의 없다. 명절은 보통 삼일을 쉬는데, 일주일 중 삼일이라면 어떻게 배치해도 예배가 껴있기 마련이다. 일찍 시작하든, 늦게 시작하든, 일찍 끝나든, 조금씩 연휴 기간이 달라진다. 이것을 목회자만의 특징으로 보긴 어렵다. 생각보다 삼일 전체를 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각자의 사정이 각자의 환경을 꾸미고, 또 서로 다른 연휴를 보내게 만든다.


어떤 이유가 되었든 간에 연휴가 시작되는 시점과 끝나는 시점은 개인마다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 누구에게라도, 연휴는 잠시 멈추는 시간이다. 아무리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이라도 온 국민이 쉬게 되는 명절이라는 특별한 환경적인 요소 때문이라도 잠시 쉼을 얻었을 것이다. 그 쉼이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만든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이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웃을 돌보며 평소 가지지 못했던 여유로 인해 웃음꽃을 피우는 시간이었으리라.


특별히 우리 집은 그 중앙에 내 딸이 있었다. 처가에야 처제의 두 딸도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내 딸이 주인공이었다. 십여 년간을 어린아이가 없었으니, 무엇을 한들 이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작은 몸짓과는 다르게 수배는 큰 어른들의 그 마음을 흔들어 대곤 하였다. 특히나 좋아하는 “생일축하합니다” 노래를 집안에 온 어른이 함께 불러주었으니, 콘서트가 다름없었을 테다. 언제나 그랬듯 딸은 내게 기쁨이기에 고뇌와 고통을 잠시 잊게 하곤 했다.


그럼에도 솔직히 말해보노라면 이번 연휴는 내게 편한 시간이 아니었다. 회복의 시간도, 즐거움을 누릴 여유도 없었다. 마음이 빈곤했기 때문이다. ‘여유‘가 있기를 바랐지만, 직전까지 쌓여온 일상의 피로감이 누적되어 마음을 바싹 마르게 해 버렸기 때문이다. 내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일상의 바퀴가 굴러가고 있었다.


정작 멈추어야 할 때 멈추지 않다 보니, 이제는 완전히 일상을 탈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내 심정을 머릿속으로 그려 본다면 더 이상 굴러가지 않는 일상을 억지로 목에 매고 끌고 가는 이미지다. 그러니, 노력하면 할수록,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할수록, 목이 조여 오고, 고통은 가중된다.


일상이 멈춘다면, 그 일상이라는 그림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덩달아 나도, 내 아내도, 내 아이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일상의 돌무더기를 피해, 이름 모를 처마 밑으로 피해야 할 터이니, 이것도 쉽게 결정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소망하는 것은 굴러가지 않는 그 열정이라는 바퀴가 다시금 굴러가기를 소망해 보는 것이다.


정체가운데 괴로워하는 남성을 AI로 그려보았다.


작가의 이전글유비무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