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무환

마흔 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두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대부분이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일 것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을 창제했고, 역사상 가장 뛰어난 성군으로 추앙받고 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비참하고, 누란의 위기였던 임진왜란에서 조선을 지켜낸 가장 명장 중의 명장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그러기에 서울 광화문 광장에 이 두 사람의 동상이 당당하게 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순신 장군이 21전 21승이라는 전투에서의 전승을 거둔 가장 큰 비결을 학자들은 바로 이 단어로 설명한다. ‘유비무환’. 이 말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리 준비하고 있으면 환란이 없다.’라는 뜻이다.


나 역시 이 단어를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다. 어떤 일을 하든지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지금까지 주의 종으로 살아왔다. 특히 목사가 하는 일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신경을 쓰는 부분은 뭐니 뭐니 해도 설교다.


27살 청춘의 나이에 처음 전도사가 되어 가장 먼저 한 일도 설교였다. 아울러 그 전도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 것도 역시 설교였다. 사람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고, 학교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거나,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사람들 앞에서 설교한다는 것은 사실 고문과 다름이 없었다.


처음 설교하기 전에는 남들도 하니 나도 하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 설교를 준비하고, 단상에 서는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첫 설교에서 나는 절망을 느꼈다. 다시는 설교하지 못하리라는 두려움, 왜 이런 일을 시켰느냐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


하지만, 나는 다시 설교해야 했고, 결국 설교는 나의 삶이 되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렇게 설교에 대해 자신 없어하던 나의 마음을 만져주시고, 포기하지 않도록 힘을 북돋아주셨다. 그리고 오히려 더 많은 이들 앞에서 설교하는 자리에 서게 하셔서 설교에 대해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하게 하셨다. 그렇게 설교한 지 어느덧 40년. 나는 그 세월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한 설교의 노하우를 깨우쳤다. 바로 ‘유비무환’이다.


지금도 설교는 내가 하는 여러 일 중에서 가장 많은 신경을 쓰이게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시간에 쫓겨서 주일에 하는 설교를 토요일 밤에 완성하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미리 설교를 준비한다. 더구나 매 주일 하는 설교가 아니라 특별한 집회에서 시리즈로 여러 편의 설교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3편이나, 4편. 7편이나 심지어 21편. 이렇게 많은 분량의 설교는 길게는 몇 개월 전부터 이미 기도하고, 기획하고, 준비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설교 역시 본인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을 이제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올해는 21일간의 다니엘 기도회를 6월에 한다. 그 다니엘 기도회의 준비를 지난 1월부터 이미 시작하고 있다. ‘유비무환’이야말로 임진왜란뿐 아니라 나의 목회에서도 문제를 사전에 막는 멋진 방법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뿔싸. 내가 ‘유비무환’ 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지난주 내내 해야지. 마음먹고는 설교 준비 때문에 잊은 것이 있었다. 이 글을 쓰는 것을 잊었다.


오후 4시쯤 톡을 보고는 오늘이 마감 날자 임을 알았다. 서둘러 집에 돌아와서 노트북을 열고 ‘유비무환’ 하지 못한 자신을 책하며 이 글을 썼다. 아들과의 약속 때문에 쓰게 된 이 글을 누가 보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아들의 명령이니 순종하고 쓰는 것이다. 아무튼 약속한 것이니 이제부터는 설교만이 아니라, 인생만이 아니라, 이 글도 ‘유비무환’하리라 다짐하며 글을 맺는다.


미리 설교를 준비하는 모습을 AI로 그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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