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세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이제 3월이다. 유럽에서야 3월이 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사순절 기간이라 몸도 마음도 조심하는 기간이다.
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기독교 국가가 아니기에 교회력이 전 사회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못할뿐더러,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시기가 3월이다. 한국의 3월은 활기차다. 봄이 시작되었다.
봄은 길가에 꽃을 아름답게 피운다. 길 위에 선 앳된 얼굴이 곱디곱다. 방학 내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면 못다 한 이야기로 금세 볼이 빨개진다.
나도 볼 빨갛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홀로 한국에 찾아왔을 때, 혼자 여행을 떠났었다.
방학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들어왔으니 6월 초쯤이리라. 아직 장마도, 무더위도 찾아오지 않은 푸릇푸릇한 한국의 초여름이었다.
그때 본 한국은 얼마나 아름답던지. 고속버스를 타고 전국을 다니며 마주한 장면은 초록이었다.
온 국토에 펼쳐진 산들을 가득 채운 나무, 그 나무를 품은 잎사귀들이 어찌나 푸릇하던지.
약간의 습기 머금은 그 초록이 유럽에서 보던 건조한 숲의 초록과는 달리 보였다. 젊음을 노래하는 초록이었다.
그런 초록 속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또 다른 인연.
이민 사회는 무척이나 좁다. 이민 사회를 벗어나 독일로, 벨기에로, 영국으로, 그 땅의 원주민들에 뒤엉킨다면 다르겠지만, 내 맘이 편한 한국어, 그 한국어를 쓰는 한국인들의 사회는 독일에서 벨기에로, 벨기에에서 영국으로 이리저리 다닌 나였지만, 한국의 작은 도시만치도 못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나이니, 갈망하던 것은 푸르른 초록에 알맞은 새로운 인연이었다. 친구이던, 연인이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겹겹이 쌓인 실수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 나를 향한 타인의 시선, 고정관념으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싶었다.
어떤 인연이든 이 거대한 벽을 통해, 벽으로써 만나다 보니, 갑갑하기가 그지없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인연은 나 같이 소심한 범부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날이 가을날에 낙엽같이 휘날린다. 이제 그 초여름날 초록을 생각하면 싱그럽기 그지없지만, 다시 돌아갈 자신은 없다. 인연은 시간을 통해 쌓이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 일주일 바쁘게 보내었다. 분명 주일까지만 하더라도 대체휴무일이 있기에 넉넉히 쉬며 하고자 하는 일도 많았는데, 교구에 장례가 두 건이나 터졌다.
구정이 지나기 전 주말, 한 차례 장례를 집례 하였었다. 교구를 담당하며 집례 하였던 대부분의 장례는 얼굴이 알지 못하던 이들이었다. 이번 장례는 세 차례나 병문안을 갔었던 성도님이셨다.
첫 번째 갔을 때는 말씀을 잘 못하시기는 하셨지만, 함께 손도 잡고 기도도 하였고, 두 번째 갔을 때는 의식은 있으셨지만, 눈을 감으신 체 함께 예배를 드렸다. 이후 배웅을 나오신 따님께 그날이 성도님의 생신이었음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는 기존에 계시던 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기신 후였다. 치료로 인해 피곤하셨던지 주무시고 계신 성도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던 것이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얼마 있지 않아 따님께서 부고장을 보내주셨고, 구정 전 주말 장례를 집례 하였다. 복잡한 마음으로 구정을 보내었는데, 새로운 부고장이 도착했다. 핸드폰 메시지로 왔건만, 한겨울의 눈송이처럼 차디찼다.
한 분은 얼굴을 뵌 적 없는 분이셨다. 병중에 계실 때 유선상으로 결신 기도를 해드렸을 뿐이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날카롭다. 떠나보내는 유가족의 울음소리가 내 가슴을 후벼 판다. 다시금 만나게 될 수 없다는 이별로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당연하리라.
그래서 장례를 집례 하면 목사는 가족보다 먼저 선다. 장례 행렬을 이끈다. 입관 시에도, 발인 시에도, 화장 시에도, 안치 시에도, 묵묵히 그 죽음의 기운을 온당히 맞선다. 장례를 마치고 나면 진이 빠지는 이유다.
마지막 장례는 얼굴도 뵙고 이야기도 나누고 함께 예배도 드리셨던 분이다. 본래 몸이 불편하셔서 많은 시간 함께하지 못했더랬지만, 그 몸을 좀 먹는 병이 찾아왔음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이별을 맞이할 줄은 몰랐다.
목사도 인간이다. 갑작스레 맞는 이별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한겨울 온통 몸이 젖은 채로 들판 한가운데서 차디찬 바람을 이겨내듯, 묵묵히 그 시간을 버텨냈다. 그 가족보다야, 친지보다야, 교우보다야, 별것 아닐 것이기에.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장례에 참여하신 교우들께 건강하시길 부탁드렸다. 그 인연의 골이 깊을수록, 아픔은 더욱 진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다. 언젠가는 이 땅에서의 삶이 다하게 된다. 내 생명은 나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연결된 허다한 인연들이 있다. 한 존재의 사라짐은 그와 연결된 모든 인연의 소멸이다.
이는 아픔이지만, 또한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너와 나는 함께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