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이, 동행

마흔일곱 번째 이야기 - 아들이 쓰는 글

깊은 피곤이 가시지 않는다.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정신없는 주일을 보내고 맞은 월요일. 하지만 그보다 앞서 아이와 보냈던 피곤이 하루 지나 내게 찾아왔다.


보통 사람은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에 무언가 해볼 만한 여유가 있다. 교역자인 나는 토요일, 하루 지나, 월요일이다. 그것도 이처럼 바쁜 사회에서 토요일에도 일정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토요일은 오랜만에 무언가 해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새 학기가 되어 일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아내가 요새 심상치 않다. 육체가 지치니 마음도 지친다.


자주 시간을 내어 주고 싶지만, 현대 사회에서 가장 주기 어려운 것이,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모자란 것이 시간이다.


다행히 이번 토요일 시간을 내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딸아이와 길을 떠났다.


전날부터 아이와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했더랬지만,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 예전에 가본 적 있는 박물관에 먼저 갔다.


아이의 책 중에 타는 것이 연달아 나오는 책이 있다. 손바닥 크기에 책이다.


가뜩이나 친하지 않은 아빠와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이는 그래도 그 작은 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그 책을 읽으며, 다음에는 아빠랑 이것도 타자, 저것도 타자, 약속하곤 했다.


그래서 지난 연말, 아내가 일정이 있어서 아이와 내가 시간을 보내야 할 때마다, 그것들을 한 번씩 타보려고 했다.


가장 쉬웠던 것은, 자동차다. 자동차야 어린이집 갈 때도 아빠랑 타곤 한다.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다음은 기차. 아직 아이가 어려서 기차를 타고 오랜 시간 이동하는 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힘든 일이다. 그래서, 기차 대신 전철을 탔다.


일단 외형상으로는 비슷하니, 아이도 칙칙폭폭 기차를 외치며 좋아했다. 그 좁은 열차 안, 수많은 사람이 몰려 있어서, 탄 것은 4~5 정거장이었지만, 내릴 때는 아빠에게 안겨 잠들어 있었다.


그다음은 배다. 내가 사는 곳에는 배가 없기에 한강까지 나갔다. 때마침 서울에 있던 할머니 할아버지도 만나고, 고모와 고모부도 만났다.


엄마 빼고, 온 가족과 배를 탄 그때가 아이가 고모부와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시간이었다.


그토록 즐거워하던, 아이, 고모부였는데. 그래도 그 시간이 우리에게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가 고모부와 함께 손도 잡고 사진도, 동영상도 찍었다.


그다음에 간 곳이 내가 지난 토요일 갔던 박물관이다. 김포공항에 있는 항공 박물관이다.


사실은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전망대를 찾고자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전망대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나다 본 박물관, 오히려 아이에게는 더 기쁨의 시간이었다. 이런 비행기도 저런 비행기도 보았으니. 더군다나 그곳 4층에는 전망대도 있었다.


이 타는 것을 경험하는 프로젝트가 아이에게는 너무 좋았던 것 같다.


배가 나오고, 비행기가 나오고, 기차가 나오는 그림책을 볼 때마다, “아빠, 아빠” 외치며, 아빠랑 같이 탔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모습이 너무 좋아서 지난 토요일도 그 박물관에 갔던 거다.


원래 계획은 박물관에 갔다가, 그곳 전망대에서 비행기 날아가는 것도 보고, 관내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동물원에 가는 것이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4층 전망대에서 보라색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도 보았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보라색이라 보라색을 좋아하고, 보라색 옷만 입는데, 마침 보라색 비행기가 날아가서 아이는 배나 더 좋아한 것 같다.


내려와서 식당을 찾으려고 하는데, 분명 가보았던 식당인데, 이리로 가도 저리로 가도 보이지 않았다. 공사로 문이 닫힌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아이와 함께 근처 몰로 향했다. 건물도 크고 사람도 많으니,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 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밥을 먹이고 나서 얼마나 지쳤던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집에 가야 하나 했지만,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그곳에서 아이스크림까지 먹이고 동물원으로 향했다.


아이도 정신이 없었던지 가는 내 자다가, 어찌 알았는지 도착해서 좀 쉬어볼까, 했더니, 일어났다. 아이를 데리고, 동물원을 다니며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날은 왜 이리 좋은지, 동물 먹이는 왜 생각보다 많은지, 왜 토끼는 배가 불러서 당근을 안 먹는지, 결코 쉬운 일정이 아니었다.


그래도 말, 양, 염소, 타조, 잉어, 토끼까지 밥을 먹였더니, 이제 집에 가자고, 엄마 보러 가자고 아이가 졸라서 집으로 향했다. 마침 나도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굳이 시간으로 따지면 다섯 시간 삼십 분 정도.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 것은 심심하지만, 밖에서 하루 종일 아이를 보는 건 지치는 일이다.


그래도 아이는 재밌었던지 엄마에게, 영상통화로 할머니들에게 보라색 비행기도, 말도, 토기도 자랑한다. 딸기 아이스크림에 대해서도 재잘댄다.


토요일, 본의 아니게 일찍 잠들었고, 새벽에 나와 교회로 향했지만, 하루 종일 그 피곤이 나를 눌러댔다. 커피도 마시고, 비타민도 먹고, 영양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다. 모든 어머니가,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위대하다.


월요일 아침, 아내가 일찍 출근하고, 아이를 깨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혀 어린이집에 데려다주었다. 그러고는 아내의 심부름을 몇 개 해두고, 간간이 세탁기도 돌렸다.


그리고 휴일 오전, 여유를 맞아 글을 쓴다. 이따가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갈 예정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와 함께하는 일이 복잡해지고, 체력도 많이 필요해지겠지만,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이 나는 참 좋다.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그분처럼, 언제나 그렇듯이, 동행.


아버지와 딸의 독서 시간.png 아이와 아빠가 함께 책을 보는 장면을 AI로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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