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섯 번째 이야기 - 아버지가 쓰는 글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엔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어린 시절 불렀던 이 가곡 ‘봄이 오면’은 지금도, 해마다 봄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이다.
그런가 하면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란 시도 있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가실 길에 아름 따다 뿌리우리다.’
학창 시절 나에게 봄꽃은 단연 진달래였다.
야산 곳곳에 보랏빛으로 피어 있는 진달래 군락들을 보면서 그 보랏빛에 감동되고, 그 적막함에 마음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봄의 전령은 벚꽃이 되었다.
처음 벚꽃을 본 것은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한 창경원에서였다.
조선 왕조의 정궁이었던 창경궁을 일제는 동물원으로 격하시켰고, 조선의 기를 꺾겠다는 생각인지, 내선일체를 하겠다는 각오인지 그들의 꽃인 벚꽃 나무를 창경원 곳곳에 심었다.
1960-70년대 봄이 되어도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서울 시민들은 그 아이들을 데리고 겸사겸사 동물도 보고, 벚꽃도 보겠다는 생각에 창경원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 보았던 벚꽃이 여의도 윤중로에, 서울 시내 곳곳에, 전국 곳곳에 심어지게 되고, 이제 벚꽃은 대한민국의 봄꽃이 되고 말았다.
봄이 되면 어디를 가든 벚꽃으로 거리는 화사해지고, 심지어 아파트 단지 안에도 화려한 벚꽃이 만발하다 보니 더는 여의도 벚꽃놀이를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오죽했으면 ‘벚꽃 엔딩’이라는 노래가 봄만 되면 매스컴을 뒤덮을까. 이쯤 되다 보니 벚꽃의 아름다움도, 비장함도 그 의미가 희석이 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어디 봄꽃이 벚꽃만 있으랴. 원래부터 한반도의 봄의 전령이었던 노란 개나리부터, 목련, 봄의 시작을 알리는 동백, 매화, 그리고 늦봄에 피는 철쭉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봄날 들판 지천에서 피는 들꽃들에 이르기까지. 가히 봄은 꽃들의 축제 날일 것이다.
그러니 이왕이면 벚꽃만이 아닌 다양한 봄꽃을 지역별로, 거리마다 색다르게 피우고, 가꾸어 본다면 어떨까.
우리 민족이 워낙 유행에 민감하고, 뭐 하나에 꽂히면 그것에 직진하는 민족성이 있다 해도 이제는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저마다의 개성을 존중하고, 다양함이 아름다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10년간 있었던 독일에서 나는 봄에 벚꽃을 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독일의 봄은 두 꽃으로 기억한다. 봄이 되면 도심 곳곳에 심어 있는 노란 수선화가 만개해서 도로를 지나는 운전자들에게 봄을 알렸다.
그리고 목련. 한국의 목련보다 더 크고 화사한 목련이 나무마다 자태를 뽐내고 피어 있었다.
나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나부터, 좀 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탕후루가 맛있다 하니 탕후루 집이 전국 곳곳에 생겨나고, 두쫀쿠가 좋다 하니 이번에는 두쫀쿠가 전국을 열병처럼 휩쓰는 것보다는 탕후루도, 두쫀쿠도, 약과도, 새우깡도, 초코파이도 공존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보수도, 진보도, 중도도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정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철천지원수로 생각해서 그를 끝장내버리려는 잔인함이 우리 국민의 마음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나와 다를지라도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대화하고, 생각을 모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곧 봄꽃들로 물들 산하를 기대하며 나의 작은 소원을 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