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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Aug 24. 2021

하루를 밝히는 말

나의 말이 너에게 닿아

얼마 전 식당에 들러 김밥 포장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김밥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백발의 할아버지께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위해 지갑을 열며 하신 말씀을 듣게 되었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입맛이 없어서 조금 남긴 것이니 꼭 그렇게 알아달라는 양해의 말씀이었다. 몇 분 뒤 음식 남긴 그릇을 치울 식당 주인의 헛헛한 마음을 한 걸음 미리 헤아린 인사였던 것이다.


단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다는 말의 중요성은 어릴 적부터 익히 들어왔다. 속담에서 말의 중요성을 언급할 때 돈의 가치로 환산하는 방식의 교훈은 다소 아쉽다. 우리 아이들이 말의 중요성을 배울 때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빛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간다면 더 좋겠다.




다소 늦은 아침, 5살 아들이 어린이집 등원 준비를 한다. 셔틀버스 타야 할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은 급하다. 손으로는 막내 딸아이의 젖병을 씻으면서 식탁에 앉아있는 아들이 시리얼을 서둘러 잘 먹고 있는지 계속 뒤돌아봤다. 그랬더니 아들이 묻는다.


"엄마, 왜 자꾸 나를 봐?"


내 눈빛에서는 이미 "얼른 먹고 빨리 나가야 해. 늦었어!"라는 메시지가 발사되고 있을 테지만, 마음 저 구석에 있는 고백을 툭 꺼내 보았다.


"자꾸 보고 싶어서."


못 들은 척 몇 번을 되물어 여러 번 고백을 들은 아들의 얼굴에 씨익 웃음이 번진다. 내 말 한마디가 아들에게 닿아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빛이 생기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도 엄마가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어."


마스크를 끼고 집을 나서는 아이의 얼굴에도 빛이 번져있다. 조금 늦게 하루가 시작되었을지 몰라도 평소보다 조금 더 환한 하루가 될 것이다.


마스크로도 감춰지지 않는 격한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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