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음 주면 나의 첫 아이 큰 아들이 태어난 지 딱 4년이 된다. 내 뱃속에서 살던 시간까지 포함하여 한국 나이로 5살인 이 아이는 아직도 배변 훈련 진행 중이다. 보통은 3-4살 전후로 배변 훈련을 완료한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도 밤에 기저귀를 한다. (잠이 들면 한밤중에 몰래 채우고, 아침에 일어나기 전 새벽에 몰래 속옷으로 갈아입힌다.) 낮에 기저귀를 떼고 속옷을 입고 생활한지는 이제 9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마저도 어린이집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다. 아이와 서로 스트레스받는 게 싫어서 천천히 시도하자는 생각이었다.
음 아니다.. 엄마인 내가 스트레스받는 게 싫어서였다. 몇 년 동안 기저귀 갈아입히는 것도 익숙해져서 불편한 게 없고, 배변 훈련한답시고 이불이며 각종 빨래가 늘어나는 게 생각만 해도 골치 아팠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수월하게 기저귀를 뗄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어영부영 늘어져서인지 배변 훈련도 지지부진하다. 아이가 느긋한 성격이기도 하고, 야단맞은 후 회복 탄력성(!)도 좋은 편이라 그런가. 낮에 놀다가 속옷에 쉬를 한적도 많다. 처음 한두 번은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나도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는 정말 벼락같이 화를 내고 울고불고 현관문 밖으로 쫓아낸 적도 있다. 그런 행동이 정서적 학대에 해당될 수 있다고 하던데.. 나는 신고당한다고 해도 할 말 없는 못된 엄마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아이는 눈앞의 놀잇감이 너무 재밌으니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참자.' 그러다가 참지 못할 상황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아직 어리니 자기 통제가 잘 되지 않는 것이라고 어른인 내가 좀 더 이해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힘든 날에는 내 안에 이해할 틈이 없다. 아무튼 아이의 배변 훈련은 여전히 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예민한 부분이다.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나.
오늘 아침,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마법을 어디서 배웠어?"
"어느 날 마법사가 엄마 꿈에 나타났어. 그때부터 마법을 할 수 있게 되더라?"
"와아.. 내 꿈에는 언제쯤 마법사가 나타날까?!"
"규칙과 약속을 잘 지키는 어린이의 꿈에 나타나. 엄마는 그런 어린이 었거든."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규칙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쁜 행동'에 어떤 게 있는지 얘기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쭉 나열해주었다. "친구들을 때리는 행동, 동생 괴롭히기, 거짓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행동, 노느라 쉬를 참다가 팬티에 쉬 하는 것," 여기까지 들은 아이가 내 말을 끊었다.
"엄마, 그건 실수야. 화장실에 못 가고 쉬를 해버리는 것. 실수는 잘못이 아니잖아."
그 순간 '아.. 걸려들었다.'라고 생각했다. 한두 번 어쩔 수 없이 쉬를 하는 건 실수라고 할 수 있지만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여러 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잘못된 행동 아닐까, 등등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난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실수는 잘못이 아니지.."
"엄마, 실수는 나쁜 행동이 아니야. 다음부터 안 그러도록 조심하면 돼."
회사 후배가 실수를 했을 때 그 업무를 더 이상 그 후배에게 맡기지 않고 그대로 내가 가져와 처리해버린 적이 있다. 그 실수를 대신 수습하면서 나는 그게 그 실수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실수에 관대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너무나 잘 알다시피 우리 모두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알파고도 실수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남들보다 더 성과를 내야 했고,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의 '실수는 곧 잘못'이라고 잘못 배워온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은연중에 그런 사고방식이 들어있었나 보다.
"엄마, 나 팬티에 쉬를 해버렸어. 괜찮아. 갈아입으면 돼, 그리고 다음부터 안 그러면 돼."
너무 당연한 생각이니 매우 당당한 말과 행동이 나온다. 화를 낼 수가 없다. 실수에 대해 의연한 저 모습이 참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