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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Sep 15. 2021

실수는 잘못이 아니잖아

이제 다음 주면 나의 첫 아이 큰 아들이 태어난 지 딱 4년이 된다. 내 뱃속에서 살던 시간까지 포함하여 한국 나이로 5살인 이 아이는 아직도 배변 훈련 진행 중이다. 보통은 3-4살 전후로 배변 훈련을 완료한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아직도 밤에 기저귀를 한다. (잠이 들면 한밤중에 몰래 채우고, 아침에 일어나기 전 새벽에 몰래 속옷으로 갈아입힌다.) 낮에 기저귀를 떼고 속옷을 입고 생활한지는 이제 9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마저도 어린이집 선생님의 권유로 시작했다. 아이와 서로 스트레스받는 게 싫어서 천천히 시도하자는 생각이었다.


음 아니다.. 엄마인 내가 스트레스받는 게 싫어서였다. 몇 년 동안 기저귀 갈아입히는 것도 익숙해져서 불편한 게 없고, 배변 훈련한답시고 이불이며 각종 빨래가 늘어나는 게 생각만 해도 골치 아팠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수월하게 기저귀를 뗄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이렇게 어영부영 늘어져서인지 배변 훈련도 지지부진하다. 아이가 느긋한 성격이기도 하고, 야단맞은  회복 탄력성(!) 좋은 편이라 그런가. 낮에 놀다가 속옷에 쉬를 한적도 많다. 처음 한두 번은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여러  반복되다 보니 나도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는 정말 벼락같이 화를 내고 울고불고 현관문 밖으로 쫓아낸 적도 있다. 그런 행동이 정서적 학대에 해당될  있다고 하던데.. 나는 신고당한다고 해도   없는 못된 엄마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아이는 눈앞의 놀잇감이 너무 재밌으니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참자.' 그러다가 참지 못할 상황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아직 어리니 자기 통제가 잘 되지 않는 것이라고 어른인 내가 좀 더 이해해야 하는데, 몸과 마음이 힘든 날에는 내 안에 이해할 틈이 없다. 아무튼 아이의 배변 훈련은 여전히 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예민한 부분이다.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나.


오늘 아침,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마법을 어디서 배웠어?"

"어느 날 마법사가 엄마 꿈에 나타났어. 그때부터 마법을 할 수 있게 되더라?"

"와아.. 내 꿈에는 언제쯤 마법사가 나타날까?!"

"규칙과 약속을 잘 지키는 어린이의 꿈에 나타나. 엄마는 그런 어린이 었거든."


그 말을 들은 아이는 '규칙과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쁜 행동'에 어떤 게 있는지 얘기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쭉 나열해주었다. "친구들을 때리는 행동, 동생 괴롭히기, 거짓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행동, 노느라 쉬를 참다가 팬티에 쉬 하는 것," 여기까지 들은 아이가 내 말을 끊었다.


"엄마, 그건 실수야. 화장실에 못 가고 쉬를 해버리는 것. 실수는 잘못이 아니잖아."


그 순간 '아.. 걸려들었다.'라고 생각했다. 한두 번 어쩔 수 없이 쉬를 하는 건 실수라고 할 수 있지만 노느라 정신이 팔려서 여러 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잘못된 행동 아닐까, 등등 몇 마디를 더 주고받다가 난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실수는 잘못이 아니지.."

"엄마, 실수는 나쁜 행동이 아니야. 다음부터 안 그러도록 조심하면 돼."


회사 후배가 실수를 했을 때 그 업무를 더 이상 그 후배에게 맡기지 않고 그대로 내가 가져와 처리해버린 적이 있다. 그 실수를 대신 수습하면서 나는 그게 그 실수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실수에 관대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버린 걸까. 너무나 잘 알다시피 우리 모두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알파고도 실수를 한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남들보다 더 성과를 내야 했고,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의 '실수는 곧 잘못'이라고 잘못 배워온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은연중에 그런 사고방식이 들어있었나 보다.


"엄마, 나 팬티에 쉬를 해버렸어. 괜찮아. 갈아입으면 돼, 그리고 다음부터 안 그러면 돼."


너무 당연한 생각이니 매우 당당한 말과 행동이 나온다. 화를 낼 수가 없다. 실수에 대해 의연한 저 모습이 참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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