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 Sep 13. 2021

엄마, 우리는 언제 죽어?

불어나는 거짓말들

얼마 전, 부여로 떠난 가족여행에서 박물관 두어 군데를 다녀온 적이 있다. 쇼케이스 안에 들어있는 그릇과 장신구를 보던 5살 아들이 물었다. "엄마, 이걸 쓰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어?" 사실대로 말해줬다. "옛날에 살던 사람들이 쓰던 거고, 그 사람들은 오래전에 다 죽었지." 꽤 많은 사람들이 쓰던 물건 같은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죽었다니 좀 놀란 모양이다. 그렇게 걷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나에게 물었다.


"엄마, 우리는 언제 죽어?"


순간 좀 망설여졌다. 아이와 무엇이든 대화할 수 있지만 그래도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좀 어려웠다. 한동안 죽음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이런저런 관련 책들을 많이 읽던 때가 있었다. ('나의 죽음' 참조) 이렇게 나는 죽음이 언제나 생과 맞닿아 있는 거라고 책으로 배운 여자. 그래서 내가 배운 대로 대답해주었다.


"우리가 언제 죽는지는 아무도 몰라. 당장 오늘 죽을 수도 있고, 내일 죽을 수도 있어. 그러니 지금 당장 행복하고 재밌게 살아야 해."


'엄마도 잘 모르겠다.'라는 대답을 성의 없게 생각하는 건지 평소에도 이런 식의 대답을 싫어하는 아들이다. 그런데 대답 자체가 '아무도 몰라'라고 하니, 제대로 된 대답을 하라는 듯 몇 번을 더 물어보았다. 아이가 싫든 좋든 나는 정말 그 답을 모르겠는 걸 어떡하겠나. 뭐, 나만 모르나? 정말 아무도 모르는걸!


그 후로 보름이 지났다.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데 매우 작은 초파리가 날아왔다. 그걸 본 아이가 갑자기 식탁에 손바닥을 내리쳐 초파리를 잡았다. 나는 초파리를 때려잡은 아들의 폭력성(이라고 말하니 과해 보일 수 있으나)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초파리는 너한테 잘못한 게 없는데 너는 왜 초파리를 죽이기까지 한 거야?"

"엄마, 초파리가 앉은 음식을 먹고 우리가 배탈이 날 수 있어."

"(엇.. 어디서 저런 걸 배운 거지?..) 그렇다고 해도 다른 생물을 때리거나 죽이는 건 나쁜 행동이야."

"알겠어."


그러다가 갑자기 '죽음'에 대해 떠올랐는지 아이가 또 물었다.


"엄마, 우리 가족은 언제 죽어? 오늘 죽을 수도 있는 거야?"

"응,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아이 눈에 눈물이 고이고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소리 내어 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너무 놀란 내 눈에도 같이 눈물이 차올랐다. 죽지 않으면 좋겠냐고 물으니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죽으면 어린이집에도 못 가고, 그리고 너무 심심할 것 같아. 흑흑."

"너, 어린이집에 별로 안 가고 싶어 했잖아. 그리고 심심할지 재밌을지는 모를 일이야."

"엄마랑 아빠, 내 동생을 더 못 보잖아."


그래, 너무너무 보고 싶을 것 같다. 훗날 내가 늙어 죽으면 이렇게 내 손을 잡고 펑펑 울고 있을, 어른이 된 아이가 그려진다. 죽어가는 그 순간에도 나는 이 아이가 무척이나 보고 싶겠지. 그 날의 늙은 나는 코 앞의 죽음이 무섭다기 보다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많이 슬플 것 같다. 나를 뒤로 하고 살아나갈 젊고 큰 아들은 어떻게 견딜까. 이런 생각에 다다르자 나도 갑자기 너무 슬퍼졌다. 따끈한 수육을 맛있게 먹다 말고 모자가 부둥켜안고 울었다.


"엄마가 마법사*인 거 알지? 아빠도, 너도, 동생도 절대 죽지 못하게 엄마가 마술을 부려놓을 테니 걱정 마."

"그럼 엄마가 죽으면 어떡해?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아.. 흑흑."

"엄마는 마법사여서 안 죽어. 마술콩이 지켜줘."


죽지 않겠다는 거짓말을 해버렸다. 나중에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수습하지 않아도  만큼 우리 가족에게는  미래의 사건이 되길 감히 바란다. 생에 대한 집착인지 미련인지 애정 같은 것이 차오른다. 내가 낳은  하나의 생명 때문에. 덕분에.


"엄마, 나도 엄마처럼 마법 배우고 싶다. 그래서 엄마 죽지 않도록 마법 부릴 거야."



고마워.



*저희 아들은 제가 마술을 부려 손에서 사탕이 나오게 하고, 몸에 마술콩이 가득한 마법사로 알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난지원금의 쓸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