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 Aug 31. 2021

나의 죽음

출산을 앞두고 찾아온 두려움

  버스에서 내려 골목을 걷고 있었는데 한 아저씨가 저 쪽 구역은 위험하여 죽을수도 있으니 절대 가지말라고 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여행 중)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20대에도 가끔 했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던 것 같다. 혼자 미국 횡단여행길을 나설 때도 위험할 수는 있으며 그 길에서 죽더라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것 같다. 1개월짜리 기차 이용권(Amtrak Pass)만 끊고 숙소 예약은커녕 어느 도시에서 얼마나 머무르겠다는 일정 계획도 없이 시작한 여행이었다. 발길 닿는 대로 가겠다며 배낭과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나선 여행이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구나 싶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금도 가끔 한다. 이제는 두렵다. 남겨진 존재들이 나의 부재로 너무 큰 슬픔에 빠질까봐 두렵다. 20대에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큰 두려움 없이 저렇게 혼자 여행도 곧잘 했고, 아름다운 것에 흠뻑 빠진 날에는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두렵다. 내 인생에서 지켜내야 하는 소중한 존재들이 생겨서일까.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부쩍 겁이 많아진 것 같긴 하다.


  사실 첫째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만 해도 죽음에 대해 별로 심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는 달랐다. 첫째 아이를 제왕절개 수술로 낳았으므로 둘째 아이 분만 시에도 수술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임신기간 내내 분만 수술을 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호르몬의 영향에 따른 과한 걱정일수도 있으나, 전혀 가능성이 없는 상황은 아니므로 출산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더 불안했다. 결국 출산 시점이 다가왔다. 정상 분만 시기가 아닌 35주에 양수가 터져 응급환자로 병원에 누워있게 된 나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유서를 작성해놨으니 혹시 잘못되면 휴대폰 메모장의 유서를 확인해달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기가 찬다며 비웃었다.


  코로나 감염 예방을 위하여 병원에서는 보호자의 면회도 극도로 제한했다. 그래서 혼자 우울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병원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남편과 첫째 아이를 아주 잠깐 만날 수 있었다. 덕분에 좀 더 힘이 났다. 수술실 대기 침대에 누워 내가 쓴 유서 내용을 떠올려 보았다. 그 순간, 사랑하는 저들을 남겨두고 이대로 죽을 수 없으며 기필코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취과 의사 선생님께 수술 중 수면 마취를 하지 않겠다고 내 의사를 똑똑히 전달했다. 내가 수술 중에 깨어있다고 해서 운명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깨어나지 못할 위험만큼은 해소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 소식을 들은 남편은 여전히 비웃었지만 나는 진지했다.


  둘째 아이는 그렇게 예쁘다던데 무조건 살아서 얼마나 예쁜 딸이 나오는지 보고 싶었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면회가 불가하여 입원 전 제대로 안아주지도 못한 나의 첫 아이, 우리 아들도 떠올랐다. 그렇게 추운 수술방에서 내 배가 열리고, 아이가 나오고, 눈을 맞춰 첫인사를 했다. 수술방에서 유일하게 마스크를 하지 않아도 되는 무구한 작은 천사였다. 내 배가 닫히고 회복실로 가기까지 나는 의식을 꼭 붙들어 잡고 있었다. 다행히 나의 유서가 가족에게 전달될 일도 없었다. 남편은 여전히 비웃었지만 나는 안도했다.


  앞으로 유서를 틈틈이 작성하여  업데이트해 보려고 한다. 감히 죽는 시점을 선택할  있다면  장례식 조문객들이 안타까워하거나 슬퍼하기보다 우리 다시 만날 인사를 유쾌하게   있는 적당한 때라면 좋겠다. 그때까지 살아있는 지금은  많이 감사하고  많이 사랑하겠다고    다짐해본다.


마침내 두 발로 성큼 내 삶에 들어온 둘째 아이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의 빛과 그림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