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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Aug 31. 2021

뒷모습을 지켜보는 역할

나의 뒷모습은 어땠을까

  코로나 시대, 지인들과의 만남이 대폭 줄었다. 누군가를 만나 마스크를 마주하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아 육아 중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집 근처 한류천을 따라 혼자 걷는다. 오늘도 그 흙탕물을 바라보고 앉아있는 중년의 뒷모습들을 만났다. 그 윗모습들은 전화 통화를 하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만히 물 위의 낚싯대만 바라보고 있다. 나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일까,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외롭게 앉아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전혀 외롭지 않은 일반적인 여가시간일까. 무방비 상태의 뒷모습은 순수하다.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아이가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손을 놓고 첫 한 걸음을 떼기까지 우리는 무수한 뒷모습을 목격한다. 엄마인 내가 대신 해줄 수 없는 혼자만의 노력을 지켜봐야만 한다. 그 아이가 언젠가는 저 작은 등에 큰 가방을 메고 학교에 걸어 들어갈 테고, 무거운 시험을 치러 집을 나설 테고, 청년이 되어 훌쩍 먼 여행길도 떠날 것이다. 또 평생의 단짝을 만나 결혼식장에 걸어 들어가기도 하겠지. 나는 그 아이의 등 뒤에 있다. 그 뒷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는 게 내 몫의 역할일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응원하며 최선을 다해 그 역할을 수행하겠다.


  있는 힘을 다하여 몸을 뒤집는 생후 5개월 딸아이의 등을 본다. 언젠가 23살 된 딸이 1년간의 인턴 생활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던 우리 엄마가 떠오른다. 당신은 가보지 못해 마냥 막연한 '미국'이라는 곳에 딸이 가겠다고 했고, 매우 두려웠으나 그렇게 품에서 떠나보낼 마음을 먹었을 엄마의 마음이 이제 어렴풋이 헤아려진다. 인천공항으로 떠나는 리무진 버스 계단을 오르다가 뒤를 돌아보니 엄마가 울고 있었다. 내가 태어나 배냇머리를 밀 때도, 유치를 뽑으러 치과 의자에 앉아있을 때도, 결혼식장에서 사랑하는 신랑을 바라보고 있을 때도 엄마는 내 뒷모습을 보며 울었다고 한다. 이제 내가 엄마가 되었다.


  옛 연인의 뒷모습에는 나의 20대가 있었다. 서로의 취향에 영향을 주고 인생의 푸른 시절을 함께 했던 옛 연인에게 안녕을 말하며 헤어진 날이었다. "잘 살아라." 진심으로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며 악수를 하고 등을 돌렸다. 몇 걸음 후 뒤돌아본 그의 뒷모습에 나의 20대가 있었다. 꿈꾸었지만 불안했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앞이 보이지 않던, 하지만 내 인생 가장 빛났을 그 시간. 그렇게 나의 20대와 헤어진 날이었다.


  앞선 이의 뒷모습이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의 행복한 얼굴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 40대의 내가 지금의 나를 뒤돌아봤을 때, 청년이 된 나의 아이들이 뒤돌아 엄마인 나를 바라봤을 때, 내가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오늘도 나의 세계를 충실히 가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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