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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Sep 06. 2021

먼지 한 톨과 집안일

정돈된 일상을 위한 노동

  20대에 처음으로 자취를 하며 제대로 된 집안일을 경험하게 되었다. 출근하느라 낮에는 아무도 없는 방이고, 좁은 방 안에서 고작 나 혼자 사부작 걸어 다니는 게 전부인데 어쩜 이렇게 먼지가 쌓이는지 신기했다. 먼지 한 톨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어느새 새까만 때가 눈에 보이는 때가 온다. 그 때를 닦으면서 생각했다. 집 안에 이렇게 먼지가 많은지 20살이 훌쩍 넘어서야 알게 되었구나. 그동안 내가 사는 집에는 나 대신 미리 먼지를 닦아주는 엄마가 계셨기 때문에 난 그 사실을 모르고 살아왔던 거구나.


  코로나바이러스, 그리고 사람들을 피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그 속에서 발생하는 노동의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집안일에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있던 어느 날, 건조기가 두어 번 돌아가 방 한쪽에 산더미처럼 빨래가 쌓여있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대략 3일 정도 저렇게 있었나 보다. 과연 남편은 저걸 보고도 개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인가 순간 화가 꿀렁꿀렁 끓기 시작했다. 저녁에 먹을 보쌈 고기를 재우고, 내 몸뚱아리를 겨우 씻고, 첫째 아이 밥을 해서 먹이고, 그 설거지까지 끝내고, 주방 정리를 한 후 돌아선 참이었다. 참을 수 없는 무언가가 내 목을 뜨겁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호흡을 가다듬었다. 언젠가 남편이 집안일 중에 빨래 개는 것이 가장 싫다고 하길래 그럼 그 일은 내가 하리라 마음먹었던 훈훈한 신혼 시절이 떠올랐다.


  '그래, 내가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이 빨래 산더미 하나 정리하지 못하겠냐.'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냐.'


  중얼중얼 화를 참아본다.


  정돈된 일상을 보내기 위해 투입되어야 하는 노동의 시간은 꽤 길다. 외부활동을 최소화하고 집에 더 머무를수록 집안일은 더 쌓여만 간다. 하나를 끝내고 돌아서면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또 다른 집안일이 보인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뜨끈한 차라도 한잔 마실라치면 싱크대에 들어 있는 설거지거리가 보인다. 아직 하루를 마무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의 설거지를 내일로 미루는 것은 영 찝찝하다.


  요리는 좋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밥 먹기 싫어하는 아이를 식탁에 앉혀 어떻게든 먹여야 하는 상황이 되고 나서부터는 주방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불안했다. 그런 내가 코로나 시대의 가정 보육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의 삼시 세끼를 차려야 할 때는 정말 암담했다. 동시에 나는 재택근무를 하며 내 입에 넣을 음식도 차려야 하는 임산부였다. 자기 자식 먹이는 일에 암담함까지 들먹일 일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해 본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튼튼한 사회적 돌봄 시스템이 얼마나 필요한지 코로나 시대의 맞벌이 부부가 되어서야 크게 깨달았다.


  싫든 좋든 이것은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이다. 일상을 가꾸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코로나 시대에 더 크게 다가온 집안일을 마주하면서 이 집안일들을 사랑하려면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할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뽀얀 먼지도, 물때도, 얼룩도 그냥 좀 모른 척해볼까. 조금 게을러지면 조금 더 행복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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