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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Sep 15. 2021

인생의 퍼즐

남편의 커피


20대에 처음으로 오소희 작가님을 알게 되면서 그의 자유로운 영혼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렇게 그의 여러 책들을 읽어왔고 최근에 '떠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면'을 읽게 되었다. 코로나 시대인 데다가 육아휴직 기간 중 오랜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될 나를 위해 진작에 사둔 책이었다. 이 책은 여기를 '떠나' 온 세계를 여행하던 오소희 작가님이 여기에 '머물' 집을 지어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집에 머무르며 행복해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두어 달에 걸쳐 잠들기 전 틈틈이 아껴 읽었다. 워낙 오감으로 느껴야 하는 표현들이 많아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읽었다. 시간을 들여 충분히 상상해야 하는 문장들이었다. 상상할 여유가 있을 때에만 이 책을 펼쳤고, 그렇지 않은 저녁에는 다른 책을 들었다. 읽는 내내 오소희 작가님과 함께 머무르기도 하고 떠나기도 한 매우 특별한 여행이었다. 여행이라는 것이 꼭 특정 장소에 가야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있는 여기에서도 초심을 계속해서 상기시킬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여행이구나 싶었다.


내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이야기는 '오빠가 말 달리자' 부분이었다. 오소희 작가님의 두 살 터울 오빠에 대한 이야기인데,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른 채 무덤덤 살아가는 이 시대의 우리를 보는 것 같아 많이 공감되었다.


어찌 보면 매우 평범한 한국의 중년 남자였다.
아들로서의 과도한 중압감에 시달리고,
아둔한 교육 제도의 피해자인.
그래서 인생 퍼즐의 소중한 몇 조각을
끝끝내 못 찾아 아쉬워도
원래 못 찾는 것이려니 공허한 채로 나이 드는.


그런 작가님의 오빠가 다행히 인생의 그리 늦지 않은 때에 그 퍼즐 몇 개를 맞춰가며 행복을 찾는 이야기였다. 함께 말을 타고 달리는 오누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나의 아들과 딸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와 함께 퍼즐을 맞춰 갈 남편이 떠올랐다.


커피를 좋아해서 커피와 관련된 일을 해보고자 요즘 커피 수업을 듣고 있는 남편이 원두에 대해 공부 중이다. 로스팅도 해보고 다양한 원두를 접하면서 아주 신이 났다. 그런 남편이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먹기 위해 그라인더를 사고 싶어 했다.  필요해 보이지 않았기에 나는 구매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다 가만 생각해보니 지금 남편이 인생 퍼즐의 소중한  조각을 맞추는 중인데 내가 방해하면  되겠다 싶어 그라인더 구매 반대 입장을 거둬들였다.


우리 남편은 내 인생 퍼즐에 도움이 되고자 나에게 책도 선물하고 글을 쓸 시간도 충분히 확보해주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나는 그깟 그라인더 하나 못 사게 했나 미안해졌다. 행복을 추구하는 일에 효율성을 따지지 말고, 돈과 마음을 아끼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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