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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Sep 16. 2021

웃는 표정의 친절한 나뭇잎

아이의 첫 버스 탑승기


현재 육아휴직 중이지만 잠깐 회사 행사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그 행사는 아이가 평소 관심 있어하던 분야의 내용이기도 해서 아이를 데리고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서 행사도 둘러보고 엄마의 회사 친구들도 만나고 올 텐데 같이 가겠냐고 아이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너무 좋다며 매우 들떠서 물었다.


엄마의 회사 친구들은 어떤 표정이야?
웃는 표정일까? 화난 표정일까?

사람의 많고 많은 속성 중에 그들의 '표정'을 가장 먼저 궁금해하는 아이의 반응이 신기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서 마주친 많은 낯선 사람들의 표정은 어땠을까? 일부는 친절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얼마 전에 5살 아들이 난생처음으로 버스를 타보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 버스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니 처음 아이와 밖을 나왔던 예전 초보엄마 시절이 생각났다. 어린아이를 유아차에 눕혀 바람도 쐴 겸 처음으로 둘이 카페에 갔는데, 노키즈존이라고 하여 도망치듯 커피만 포장해서 나왔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유아차를 밀고 다니면서 길 위에 턱이 이렇게 많았구나 깨달았던 어깨의 뻐근함도 떠올랐다. 지금도 아이와 함께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긴장이 된다. 식당에서는 주위 시선이 무서워서 꼭 식당 바닥을 물티슈로 말끔히 닦고 나오게 된다. 내가 '맘충' 소리를 듣는 건 넘어갈 수 있는데, 같이 있는 우리 아이가 '맘충의 자식'이 되는 건 너무 견디기 힘들 것 같아서다.


이런 기억들과 동시에 버스의 높은 계단과 급한 출발, 내가 겪어온 버스 기사님들의 예민한 얼굴까지 떠올랐다. 과연 이 아이를 데리고 내가 무사히 잘 다녀올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났다. 타야 하는 버스가 저 멀리 보였을 때부터 버스가 정차하면 아이를 안고 이렇게 태워서 빈자리까지 이렇게 손을 잡고 천천히 가서 앉히고, 내릴 때는 그 정류장에서 미리 하차 카드를 찍고 아이를 이렇게 저렇게 안아서 넘어지지 않게 계단을 내려가야지, 등등 머릿속으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아이는 어른 버스를 타게 되었다며 매우 신나해했다.


버스가 왔다. 버스 앞문이 열렸고, 아이가 계단을 혼자 올라가 보게 하려고 했는데 기사님의 눈빛이 이미 따갑다.(물론  기분 탓일 수도 있다..ㅠㅠ) 그래서 계단 하나 어렵게 올라간 아이를 그대로 번쩍 안아서 바로 버스 안으로 올렸다. 빈자리가 보였고 이따가 하차하기 쉽도록 하차  근처에 있는 자리에다가 아이를 앉혔다.


아이 거기 앉히지 마!!


낯선 사람으로부터 들어보는 오랜만의 반말이었다. 버스 안의 여러 얼굴들이 나와 아이를 쳐다봤다. 아이에게 설명할 새도 없이 다른 자리로 아이를 급하게 옮겼다. 아마 유사시 그 자리는 위험할 수 있으니 아이를 거기 앉히지 말라고 하는 것이리라 이해했다. 왜 반말이시냐고 따지고 들 수 있었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습한 날씨에 피곤했고 잔뜩 긴장까지 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보는 앞에서 누군가와 싸우거나 공격을 받고 싶지 않았다. 소리치는 아저씨의 말 중에 나온 '아이'라는 단어가 본인을 향해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는 나이이다. 나의 당황한 표정도 이미 귀신같이 알아차렸을 거다. 본인 때문에 엄마가 공격받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싫었다.


아, 아이가 5살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아이와 집 밖을 나가는 건 이토록 긴장되는 일이구나 또 한 번 깨달았다. 아이 때문에 불편한 사람들이 있을까 봐 주위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아이를 계속해서 통제한다. 그렇게 노력해도 우리 때문에 불편한 사람들이 생기고, 다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아직 미숙한 한 인간이 사회 질서에 대해 배우는 중이다. 아마 아이는 그 과정에서 화난 표정들을 많이 만나봤을 거다. 사회 질서를 지키지 않는 성인에게는 쉽게 보이지 못할 그 표정이 아이에게는 쉽다. 만약 그 버스에 내가 아닌 아이 아빠가 아이와 타고 있었어도 그런 반말이 날아왔을까?..


버스에서 내려 한참 동안 나뭇잎을 함께 주우며 신나게 놀았다. 아이의 첫 버스 탑승기가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기억될 수 있도록. 오늘의 경험이 웃는 표정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웃는 표정의 친절한 나뭇잎들을 아이와 함께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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