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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Sep 28. 2021

5살 시인에게 동생이 생겼다

나의 아티스트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붙여준 나의 첫 아이. 나는 올해 5살 된 이 아이를 "나의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예상치 못한 말과 행동으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기 때문이다.(예상치 못한 전개로 나를 화나게 하기도 한다.) 글을 쓰고 싶게 만드는 글감을 가장 많이 주는 존재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내 눈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내 속에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이었나 깨닫게 해 준 존재이기도 하다.)


말이 다소 늦은 편이었지만, 말문이 터지기가 무섭게 나의 아티스트는 놀라운 문장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참 근사한 표현들이다. 부캐 중 하나로 작가를 꿈꾸는 나는 그가 약간 부럽기도 하다. 이렇게 다들 처음에는 시인으로 태어났다가 이 능력을 잃지 않고 끝까지 간직해가는 사람들만이 시인으로 살아가는 걸까.


우리 집에 사는 5살 시인에게 동생이 생겼다. 동생의 태명은 '우주'였고, 세상에 태어나 불리는 이름은 '주하'이다. 사람이 엄마 뱃속에 있다가 태어나 세상에 나오고, 아기로서 세상을 느끼며 조금씩 눈빛이 달라지는 모습은 두 번째 보는데도 참 신기하다. 5살 시인의 눈에는 그런 동생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당연하기도 한, 묘한 존재로 다가오는 것 같다.


"이제, 하나 둘 셋 여덟 아홉, 넷 이야!"


병원에서 잠깐 만났다가 2주 후 시인의 동생이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처음 온 날. 우리 가족이 네 식구가 되었다며 그는 들떠했다. 그리고 온 집안의 인형들을 다 동생 주위에 불러놓고는 "얘들아, 우주가 태어났어! 우리가 돌봐줘야 해!"라며 오빠로서의 각오를 다졌다.


이 날 나는 시인에게 평생 잊지 못할 문장을 선물 받았다.


엄마, 아 이제 생각이 났어.
우주가 엄마 뱃속에서 수영했잖아. 헤엄쳐서 우리 집에 왔나 봐!
여기 우주가 있잖아? 이 안에 주하가 있는 거야!


태아가 가족의 곁에 오는 장면에 대해 이보다  정확하고 근사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양수 속에서 헤엄치며 우리에게 다다르기를 200일이 넘도록 고대했을 것이다. ' 뱃속에서 물고기처럼 꼬물거리던 딸이 우리 집까지 이렇게 헤엄쳐서 오느라 애썼구나' 싶으면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내가 아이를 낳은  아니라 아이가 나에게 찾아온 거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비 오던 어느 날, 동생이 응애응애 칭얼거리는 소리를 듣다가 시인께서 또 한 편의 시를 읊으셨다.


엄마, 주하는 비와 비슷한 것 같아.
비도 오다가 안 오다가 오다가 안 오다가 하잖아?
주하도 울다가 안 울다가 울다가 안 울다가 하니까
비와 비슷해!


살면서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표현이다. 칭얼거리는 아기가 비와 비슷하다니. 정말 찰떡같은 비유였다. 타인의 문학을 거의 접하지 않으므로(책을 거의 읽어주지 않음) 모방에 대한 자기 검열도 없이 자유로운 표현이 터져 나온다.


5살 시인에게 동생이 생기면 이렇게 좋은 시가 많이 만들어지는구나. 나는 그 옆에서 그 시를 감상하고 놀라워하고 마음 뜨끈하게 위로받는다.


엄마에게 이렇게 과분하고 근사한 선물을 줘서 고마워. (자꾸만 뭐라 하고 화내서 미안해)


새 생명에게 영감을 받는 시인


동생을 돌봐줄 인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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