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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Sep 30. 2021

마음껏 기쁘게 선물 받기

아들의 여자 친구 J


엄마, J에게 젓가락을 선물하고 싶어.


J 우리 5 아들과 어린이집 같은 반에 다니는 친한 여자 친구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어서 서너  집을 오가며 함께 놀았다. J에게 젓가락이 많을 텐데  젓가락을 선물하려는지 궁금했지만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예뻐서  묻진 않았다. (아들 여자 친구 선물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다.) 내가 흔쾌히 구매를 허락하자 이때다 싶었는지 "숟가락도 살까?"라고 보태기를 한다. (그래, 여자 친구에게 세트 선물로 구색을 맞추고 싶겠지.)


어린이집 하원 후, 아이와 쿠팡을 열고 앉아서 J의 선물을 골랐다. 내가 알기로는 J가 '티니핑'을 좋아하는데 아들은 이상하게 '시크릿 쥬쥬'로 젓가락 브랜드를 정해주었다. 그럴만한 사연이 있나 보다 싶어서 더 묻진 않았다. 아들은 '시크릿 쥬쥬'로 검색되어 나오는 수저세트 몇 개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그중에서 분홍색 하트가 다섯 개나 박혀있는 가장 화려한 디자인을 골랐다. 너무 화려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우려에도 "J가 좋아할 거야!"라며 확신을 보였다.


다음날 J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둘 사이에 이미 선물 얘기가 오갔는지 J가 선물을 찾았고, 아들은 (깜빡하고 있다가) 본인의 서랍에서 분홍빛 수저세트를 꺼내 J에게 건넸다.


선물을 받아 든 J는 정말 진심으로 기뻐했다. 내 주위 누군가가 선물을 받고 이렇게나 기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 그냥 인사치레로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진짜로 이 선물을 받아서 기뻐했다. 숟가락 손잡이의 분홍색 하트 위에 반짝이는 스티커가 예쁘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해주었고, 갖고 싶었던 거라는 센스 있는 말도 덧붙였다. 정말 정말 고맙다고 여러 번 말했다.


선물 받는 사람이 이렇게 좋아하니 선물 주는 사람도 덩달아 마음이 따뜻해졌다. 결제만 한 내 마음이 이렇게 뜨끈한데 선물할 마음을 먹고 손수 하나하나 고른 우리 아들은 어떨까 얼굴을 쳐다보니.. 놀라웠다. 내가 이 아이를 낳아 4년간 키우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으로 J를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닌가. 꾹 다문 입으로 애써 감춰도 입꼬리에 스멀스멀 새어 나와 온 얼굴로 번져있는 저 뿌듯함. 그래, 그럴만하겠다. 그만큼 J의 반응이 인상 깊었다.




나는 '받기'를 잘하는 사람인지 생각해보았다. 받는 것을 불편해하는 편에 가까운 것 같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시간을 들여 준비한 선물을 받아도 송구스러운 마음이 더 커서 J처럼 마음껏 기뻐한 적이 드물었다. 얼마 전, 시어머니께서 나에게 좋은 머플러를 선물해주신 적이 있는데, 그때도 고맙다는 말에 기쁜 얼굴은 빠져 있었다. 고맙기는 한데 넙눅 받는 게 미안한, 이상한 마음이다.


선물을 받았을 때 기꺼이 반갑고 마음껏 기뻐하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누군가의 마음을 잘 받을 줄 알아야 내 마음을 잘 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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