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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Oct 09. 2021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할까?

내 일의 기쁨과 슬픔


몇 달 전, 밤새도록 보고서 쓰는 꿈을 꾼적이 있다. 별다른 장면 전환도 없이 노트북 모니터에 한컴 오피스 HWP문서만 떠 있는 꿈이었다. 중간에 둘째아이 수유하느라 깨서 다시 잠들었는데도 또 그 모니터에 커서만 깜빡이는 장면이 이어졌다. 계속해서 보고서를 작성했다가 지웠다가 다시 작성하기를 반복했다. 미칠 노릇이었다.


첫번째 육아휴직 후 복직하여 근무하는 중에 귀가 멍해지는 증상이 종종 있었는데, 그 꿈을 꾸고나서 종일 귀가 멍했다. 휴직 기간에도 이런 악몽을 꾸다니 대체 일이란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 꿈 속에서 나는 이 꿈을 그만 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이 보고서를 잘 써서 완벽하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함께 했다.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가 되어 흘러가고 있는걸까.


휴직 중에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떠올리는 것은 나에게 이상하지 않다. 설거지를 하러 싱크대 앞에 서거나 노을을 보려고 창문을 향하면 회사가 보인다.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주는 애증의 공간. 저기 앉아있을 동료들을 떠올리며 저기 앉아있던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 일이 주는 기쁨은 명확했다. 20대 대학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일을 하게 되었고, 10년 넘게 열심히 일 했다. 공공성을 가진 업무 특성상 우리나라 산업에 내가 (매우 작지만)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정신적 보상도 적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질문.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는걸까?

'어떤 일을 하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에 따라 회사생활의 질이 결정된다는 것을 깨달은 후 부터는 '좋은 사람'이 되겠노라 자주 다짐했다. 누군가에게 '좋지않은 사람'이 되기 쉬운 곳이 바로 회사이다. 육아휴직 후 복직하면서 박완서 작가님의 '세상 예쁜 것' 책을 사무실 책상 한 켠에 꽂아놨었다. 내가 마주하는 모든 사람이 원래는 '세상 예쁜 것'들이니 존중하며 소중히 여기고 싶은 내 다짐이었다. 우습게도 한 100여일 만에 그 다짐은 와르르 무너졌다. 좋은 사람이 되기는 글렀다고 생각하며 팀장님께 울고불고 소리쳤다.


"팀장님과 저는 안맞는 사이에요! 저 더는 못해먹겠으니 다른 팀으로 보내주세요!"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고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일을 도모하고 싶다. 보고서를 쓰느라 딱딱해진 내 안의 단어들도 다양하게 빛을 찾았으면 한다. 합리성만 추구하는 사고의 끈을 풀고 느슨하게 살며 생의 의미를 찾고 싶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는걸까?"라는 질문을 그만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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