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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Oct 14. 2021

아이의 시선 속에서


결혼한 지 만 5년이 되어가는 우리 부부는 부부싸움을 거의 하지 않았다. 스파크가 튀는 큰 말싸움은 딱 한 번으로 기억한다. 대화 중 의견이 다른 이슈가 나오면 서로 본인 생각을 좀 얘기하다가 그냥 스르륵 대화를 마무리한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뭐 딱히 바꿀 생각 없다. 너도 그러냐? 존중할게. 끝.


개인주의자들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굳이 상대를 바꾸려고 설득하느라 힘을 빼지는 않는다. 그래서 큰 싸움 없이 결혼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우리 부부도 아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감정의 골이 생긴다. 아이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원팀(ONE TEAM)이 되어 공통의 가치를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자꾸 서로를 설득하려고 든다.


얼마 전, 아이의 유튜브 시청에 대한 의견 차이로 작은 언쟁이 있었다. 아이가 남편에게 "아빠를 회 떠먹을 거야"라고 말한 게 그 시작이었다. 이런 나쁜 말을 어디서 들었냐고 물으니 유튜브에서 봤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모르는 사람의 말을 따라 해서는 안된다고 알려주며 아이를 크게 혼냈다.


여기에서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모방을 통해 학습하는 시기이므로 유튜브를 무분별하게 노출시킨 우리 부부에게 잘못이 있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래서 왜 아이를 혼내냐고 남편에게 따졌다. 하지만 남편은 우리 책임도 있으나 아무 사람의 말을 그대로 따라한 아이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쁜 말인지 이상한 말인지 판단도 안 되는 아이에게 아이패드를 쥐어주고 너무 자유롭게 영상 콘텐츠를 노출시킨 것 같다고 나는 자책했다. 그런 중에도 남편은 아이가 다음부터 그러지 않도록 잘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서 나의 못된 버릇이 나왔다. 그냥 그대로 입을 다물어버린 것이다.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고 그냥 설거지만 계속했다. 그런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아이도 나의  침묵이 불편했던 걸까.  정적을 파고들어 "엄마 말이 맞다고 생각해. 어른들이 잘못했어."라고 말을 보탰다. 5살이 되면 저렇게 어른들의 대화에서 각자의 입장을 파악하고 본인의 의견까지 보탤  있게 되는 건가. 속으로  인간의 성장에 대해 조용히 감탄했다. 그렇더라도 우리 가족과 선생님, 친구  외에 모르는 사람의 말을 아무렇게나 따라 하는  잘못된 거라고 남편아이에게 다시 일러주었다. 나는 혹시 새로운 말을 듣고 어떤 뜻인지 궁금하면 엄빠에게 물어보고 사용하라고 얘기했다. (유튜브 접속이 안되도록 사파리 앱을 차단시키는 조치도 했음...)


아이가 우리를 보고 있었다. 부부싸움이라고 하기에는 사소하지만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했다. 아이도 그 분위기를 감지하고 '아빠와 엄마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까지 파악할 수 있다니, 새삼 아이가 하나의 엄연한 '존재'로 다가왔다. 그러다가 내가 우리 부모님의 비슷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는 최초의 기억에 닿았다. 그 시절 우리 부모님은 지금의 나보다도 어렸겠구나 싶으면서 괜스레 마음이 짠했다.


몇 달 전 꿈에 아주 어릴 적 살던 집이 나왔다. 공간은 '방 하나'였지만 엄연히 우리 네 식구에게는 집이었던 곳, 내 기억 속 첫번째 우리집이다. 내가 그날 꾼 꿈에는 스토리가 없었다. 굉장히 크게 싸우며 감정적으로 무너져버린 나의 부모님만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등장했다. 꿈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는 마음이 너무나 아팠다. 현실에서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울고 소리치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무척 생생한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이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아파했다.


우리 부부의 대화를 지켜보던 아이의 시선 속으로 따라가 본다. 내가 아이가 되어 그 시절의 우리 부모님을 바라본다. 지금의 나보다도 어린 두 청년이 열심히 두 딸을 키운다. 먹고살기 바빴고, 다투기도 했을 것이며, 남들에게는 말 못 할 걱정거리들도 하나 둘 가슴에 쌓이고 있었을 것이다. 그 꿈에서의 모습과는 다르게 묵묵한 두 사람이 보이는데 왜 내 마음은 꿈에서 깬 것처럼 아픈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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