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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Oct 07. 2021

엄마, 잠은 어디서 와?

아들의 질문들


나는 Siri 아니고, NUGU 아니지만 5 아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엄마 역할  하나이다. 그런데 인터넷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을  같은 어려운 질문을 받고 곤란한 경우가 종종 있다. "엄마도  모르겠어."라는 대답은 우리 아들이  싫어한다. 절대 성의 없는 "몰라" 아니다. 대답하기 귀찮은 "몰라"도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교양을 동원해도 답을   없는 진짜 "몰라"이다. 나를 곤란하게 하면서도  사고를    커지게 만드는 아들의 질문  가지를 소개한다.


Q. 악당이 나타나면 112 경찰차를 부르고, 우리가 다치면 119 구급차를 부르잖아. 그런데 포크레인이 고장 나면 어느 차를 불러야 ?


포크레인이라.. 내가 살면서 포크레인을 운전할 일이 있을까? 집 근처 공사장에서 매일 포크레인을 만난다. 하지만 저 포크레인이 고장이 나면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내 일이 아니니까. 언젠가부터 나와 관련된 것이 아니면 관심을 닫았다. 예전에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다른 나라의 자유화 운동에도 관심을 가졌고, 내 일이 아니어도 함께 분노하고 슬퍼했다. 먹고살기 바빠지고 내 일상의 반경 안에서 바쁘게 살아가다 보니 내 생각과 관심도 그 반경만큼 작아졌다. 심지어 미래의 내 모습도 그 반경 안에서 그리며 살아왔다. 다시 스스로 질문해본다. 내가 살면서 포크레인을 운전할 일이 있을까? 음, 모를 일이겠지. 미래의 내 N잡러 모습 중 하나가 중장비 기사일지도 모를 일 아닌가. (아무튼, 포크레인이 고장 나면 제조사 서비스센터로 전화하면 된다고 대답해주었고 이 다음에 같이 한번 가보기로 했다.)


Q. 별 모양 눈이 멋진데, 우리 눈은 왜 동그란 모양이야?


"몰라"만큼 성의 없어 보일 수 있는 대답이 "원래 그래"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원래 그런 것을 어떻게 성의있게 설명해야 할지 어려운 질문도 있다. 우리 눈은 왜 동그란 모양일까.. "몰라"와 "원래 그래"라고 하기 싫어서, "왜 그럴까?.."라며 은근슬쩍 시간을 벌어본다. 우리 눈이 별 모양이나 하트 모양이면 멋질 텐데 정말 왜 동그란 모양일까. 동그란 눈이어야 시야가 가장 크게 이상적으로 확보되는 걸까. '시야'의 개념을 5살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해보다가 결국 이렇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거울 앞에서 자세히 봐봐. 우리 눈이 그렇게 동~그란 모양은 아니야. 별처럼 뾰족한 부분도 있어."


Q. 엄마는 왜 예뻐?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고 찾고 싶지도 않게 내 이성을 마비시키는 낭만적인 질문도 있다. (농담이 아니라 매우 진지한 질문이었음을 미리 밝혀둔다.) 내가 살면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던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아이의 이 질문을 생각하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이 된 것 마냥 배시시 웃음이 나온다. 도대체 나는 왜 예쁜 걸까?


Q. 엄마, 잠은 어디서 와?


그러고 보니 나도 어릴 적 궁금했던 것 같다. '잠이 온다'라고 표현하는 말이 너무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 오나? 다리가 있나? 날아오나? 우리 아들도 잠이 어디서 오는지 궁금해하길래 "밖에서 걸어와서 우리 하품으로 들어와"라고 대답했다. 며칠 후 늦은 밤, 아들은 나에게 배운 그대로 중얼중얼 말하며 잠을 맞이했다.

"엄마, 잠이 오고 있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2층 5층 8층 2층 10층. 딩동댕. 띠띠띡띡띡 문을 열었어. 신발을 벗고 거실로 왔어. 잠이 방으로 들어오고 있어. 잠이 침대로 왔네. 잠이 나한테 왔어. 잠이 너무 오고 있어."






이 세상에 온 지 이제 막 4년이 된 어린 사람의 질문과 표현이 그에게는 진지하고 나에게는 놀랍다. 질문들을 그와 나 사이에 올려놓고 잠깐 고민에 빠진다. 과학책처럼 대답해줄 것인가, 아니면 드라마처럼 대답해줄 것인가? 나는 대부분은 후자를 택한다. 엄마의 개그 본능 때문인지 재미있는 드라마처럼 대답하는 게 좋다. 낮에는 왜 달이 안 보이냐는 질문에 어느 날은 달이 삐져서 집에 간 거라고 대답했다.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삐진 거냐고 아들은 의아해했다. 훗날 아들의 지구과학 수업시간을 상상해본다. 달이 실은 낮에 떠있기도 하지만 햇빛이 밝아서 안 보이는 것뿐이라고 배울 때, 어릴 적 엄마의 대답을 떠올리며 피씩 웃을까.


아이의 질문 덕분에 뻔한 세상이 새롭게 보이는 순간이 있다. '그냥'이라는 단어 안에 숨 죽어있던 만물의 존재와 나의 감각들이 살아나기도 한다. 저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이렇게 생각될 수도 있구나, 내 딱딱한 생각주머니를 툭툭 건드린다. 아마 멀지 않은 미래에 아들은 나에게 더 이상 세상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고 혼자 답을 찾아나갈 것이다. 그때가 올 때까지 아이의 질문에 최대한 성심성의껏 대답을 해주고 싶다. 그래야 나는 이 멋진 질문들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테니까.




덧) 그 외 엄마도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 여러 개


Q. 엄마, 나 드디어 다 큰 것 같지 않아?

Q. 벌집은 장난감이 없는 곳이야?

Q. 엄마는 왜 이렇게 웃겨?

Q. 잠은 어디서 와?

Q. 전기뱀장어의 전기가 사라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Q. 엄마 아빠가 죽으면 공룡뼈처럼 되는 거야?

Q. 간지러운 건 어떤 모양이야?

Q. 길을 가다가 고양이가 나를 만지려고 하면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

Q. 화장실에서는 변기 물에 손을 넣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규칙인거지?

Q. 하품을 만지면 쫀득쫀득할까?

Q. 상처는 왜 다 빨간색이야? 멍도 상처야? 멍은 왜 파란색이야?

Q. 해와 달의 집은 어디야? 우주는 얼마나 크길래 해와 달이 다 살아?

Q. 엄마는 마술을 어디서 배웠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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