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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Oct 26. 2021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서 아들을 본다

아이를 낳아 좋은 점


나는 커서 엄마가 될까?
아빠가 될까?

아이가 재미있는 질문을 했다. 그건  봐야 아는 거지만 혹시   무엇이 되고 싶냐고 아이에게 되물었다. 그랬더니 어른이 되어 재미난 게임을 실컷 하고 싶다며(!)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며칠  어제  갑자기  질문을 꺼내더니 이번에는 엄마가 좋다며 커서 엄마가 되고 싶다고 한다. 아마도 내가 잠시 외출한 사이에 아빠와 무슨 일이 있었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구여자인 나는 5 서울남자의 스위트  대답에 잠시 기뻐하며 오늘은 내가 생각하는 답을 말해주었다.


"너는 아빠도 되지 않을 것이고, 엄마도 되지 않을 것이며, 바로 '너'가 될 거야."




나의 첫째 아이는 아들이다. 아들을 낳은 이후로 세상에서 마주하는 많은 남자들에게서 다 커버린 우리 아들의 모습을 본다. 이전에는 여자의 입장에서 여자의 삶만 크게 보였다면 아들을 키우기 시작하면서는 지나치는 남자 사람의 감정도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굳이 눈길을 주지 않고 지나치게 되는 식물들처럼 그동안 내 시야 밖에 존재하던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잘생긴 남자들 빼고)


어제 건강검진을 하러 검진센터에 갔다. 채혈 후 지혈을 위해 팔을 꾹 누르며 앉아있는데 내 눈앞에 분주한 두 명의 직원이 보였다. 상급자처럼 보이는 똑부러지는 인상의 여직원, 그리고 사회초년생임에 틀림없을 어리숙한 인상의 남직원. 여직원이 차트를 보며 수검자들을 직접 응대하는 업무를 하고, 남직원이 차트의 이름을 호명하거나 물건을 정리하는 보조 업무를 하는 것 같았다. 그 남직원은 아직 업무 경험이 많지 않은지 자신감이 없었고 자꾸 수검자들의 이름을 작은 소리로 불러 두어 번 혼선이 발생했다. 여직원이 남직원에게 눈치를 주고 또 다른 직원과 숙덕 거리기도 했다. 그 남직원은 바로 뒤에서 박스의 채뇨 종이컵에 플라스틱 뚜껑을 닫아 하나하나 다시 박스에 넣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종이컵들이 신경질적으로 툭툭 불편한 소리를 내며 박스로 떨어졌다.


그 남직원의 힘없는 등과 어깨를 보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언젠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우리 아들이 저기 서있는 것만 같았다. 모르긴 몰라도 저 남직원은 지금 당장 다 때려치우고 뛰쳐나가고 싶은데 꾹 참고 있는 듯 보였다. 똑같은 상황은 아닐지라도 비슷한 상황들을 겪어내며 견디고 버틸 아들의 뒷모습처럼 보였다. 주책스럽게 눈물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 엄마 다 됐구나.'  


예전에는 괜찮은(얼굴이 잘생기거나 마음씨도 잘생긴) 남자를 보면 '와아, 이 남자랑 연애 한번 해보면 정말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괜찮은 남자를 보면 '와아, 정말 잘 컸네. 우리 아들도 저렇게 크면 좋겠다.' 싶은 생각부터 먼저 든다. (음, 조금 슬퍼진다.)


얼마 전, 박정민 배우가 쓴 책을 읽다가 이 배우에 대해 더 알아보게 되었고, 그의 매력에 풍덩 빠지려던 찰나에 '와아, 정말 잘 컸네.' 라며 엄마 모드 스위치가 켜졌다. 어떻게 키워야 이렇게 잘 자라는 건지, 그리고 무명시절을 통과하던 아들을 옆에서 지켜 본 그 부모의 심정이 어땠을까,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되어줄 수 있을까, 등등. 다른 남자에게 반하지 않게 하려는 호르몬의 몹쓸 작용인 것일까. 아무튼 남자 사람에 대해서 성적인 매력보다는 인간 자체의 색깔을 더 보게 된 것 같다. 남녀 따질 것 없이 한 사람으로서의 내면에는 똑같이 외로움도, 환희도, 감동도, 성장도 존재한다. 그게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어릴 적 언젠가 그런 날이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굣길이었는데 갑자기 내 주위의 행인들이 평소와 다르게 보이는 게 아닌가. 내가 이렇게 매 순간 이 세상의 중심이 되어 마치 카메라로 촬영하듯 세상을 보고 있는데, 저 사람들도 다 나처럼 본인 중심의 카메라를 가지고 살겠구나, 라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에 스쳤다. 나에게는 내가 주인공이고 저 사람들이 주변인인데, 저 사람들의 세상에는 내가 주변인이고 저들 각각이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시절의 어린 나는 엄청난 사실을 알아버린 것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그 날 그 순간처럼 타인에 대해 인지하는 내 마음의 시야가 또 한 뼘 더 커진 것 같다. 고맙다거나 죄송하다는 인사를 더 자주, 많은 사람에게 하게 되었다.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굴러다니는 낙엽이나 우두커니 서 있는 가로수가 아니라, 생각과 감정이 있는 하나의 존재로 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이전보다 아주 조금 더 세상에 친절한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아이 낳은 후에 어떤 게 좋으냐고 물어오면 사실 해줄 말이 마땅치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이 대답을 자신있게 써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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