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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Oct 19. 2021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면 당장 달려갈 거야

무엇이 중요한지 아는 삶


엄마, 힘들면 나를 불러!


우리 집 5살 아들이 나를 도와주는 재미에 푹 빠졌다. 포대에서 쌀통으로 쌀을 옮겨 담는 일, 동생이 다 먹은 젖병을 식탁으로 옮겨놓는 일, 어린이집에서 사용한 본인의 텀블러를 닦는 일 등 '집안일 놀이'가 몇 가지 새롭게 생겼다. 엄빠의 "고마워."라는 말과 함께 누군가를 도와줬다는 뜨끈한 마음까지 더해져 아이의 마음이 간지럽다. 참으려고 애쓰지만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뿌듯함을 감출 수 없다.


올해 들어 부쩍 많이 자란 아이를 보고 주위에서 "아유, 다 컸네."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 말을 들어온 아이는 본인이 정말 다 컸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해 어른인 엄마를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큰 성취로 다가오는 것 같다. "엄마, 나 다 큰 것 같지 않아?" "나, 어른 같지 않아?" 하면서 나를 도와준다. 그리고 돌아서기 전에 항상 덧붙인다.

"엄마, 또 힘들면 나를 불러! 내가 도와줄게!"


나는 어떤가.

엄마 아빠가 힘들 때 나는 바로 달려가지 못했다.




출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날 아침, 휴대폰에 뜬 동생의 전화에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생이 울먹이며 상황을 전했다. 아빠가 공장에서 큰 사고를 당했고 급하게 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아빠는 그날 아침 프레스 기계에 양손이 찧이는 큰 사고를 당했다.


내가 사는 일산과 친정이 있는 대구는 사실 물리적으로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KTX로 2시간이 걸린다. 차가 밀리는 시간대에 일산에서 강남 가는 강변북로에서도 2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으니 대구까지 2시간은 멀지도 않다. 그런데 나는 동생의 그 전화를 받고 바로 대구로 내려가지 못했다. 못 가도록 말린 사람은 딱 두 사람이었다.

나, 그리고 우리 엄마.


동생의 전화를 끊고, 아니 어쩌면 동생의 전화를 받는 중에도, 오늘 무조건 처리해야 하는 업무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오늘 퇴근 후에 대구에 간다면 바로 올라오지 못할 것이니, 내가 자리를 비울 며칠간 처리되어야 하는 업무에 대해서도 계산했다.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고, 내가 PM이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빠가 힘든데 당장 사무실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딸년이었다.


이런 내 생각도 모르고, 우리 엄마는 내가 당장 대구로 내려올까 봐 걱정했다. 어차피 긴 수술이 될 예정이니 당장 내려온다고 해도 병원에 대기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고, 차질 없이 회사 업무를 보라고 하셨다. 심지어 대구에 내려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셨던 것 같다.


언젠가 내가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다고 했을 때, 우리 엄마가 하셨던 말씀이 있다.

"내가 너처럼 배우고 그런 멋진 기회를 얻었다면 나는 내가 올라갈 수 있는 자리까지 끝까지 올라가보고 싶어."

엄마에게 그런 야망이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그 이후 회사생활에 지칠 때마다 내 등에는 엄마의 이 말씀이 따라다녔다. 우리 엄마는 내가 조직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승진을 할 때마다 무척 기뻐하셨다. 당사자인 나보다도 더 기뻐하셨다. 그런 엄마이기 때문에 막 복직해서 큰 프로젝트를 맡은 딸이 집안일 때문에 급한 공백을 만드는 게 적잖이 내키지 않으셨을 것이다.


나는 그날 일과 내내 눈물을 참으며 많은 업무를 정리했고 18시 퇴근 후 바로 행신역으로 갔다. 노트북을 챙겨가려는 나를 팀장님께서 말리셨던 것 같다.




2년이 지난 지금, 한걸음 멀찍이 그날을 뒤돌아 본다. 그렇게 '무조건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뭐였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긴 수술 후 마취에 취해 "너무 아프다. 우리 엄마가 보고 싶다."라고 횡설수설 울먹이던 우리 아빠의 모습만 기억난다.


손주가 생겨 할아버지가 된 우리 아빠가 엄마를 찾으며 울먹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막상 할머니께서 살아계실 때는 살뜰히 대하지 못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도 너무 아플 때는 엄마가 떠오르나 보다. 그 옆에는 남편도 걱정되지만 딸의 회사 생활에 폐 끼치고 싶지 않은 우리 엄마, 그리고 작은 아이의 엄마가 된 것도 종종 까먹으며 그 이전의 모습 그대로 일에 빠져 사는 내가 서 있었다.


만약 훗날 내가 크게 다쳤고, 내 딸이 그때의 나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길 바랄까. 과연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하여 당장 내 옆에 달려오길 바랄까. 잘 모르겠다. 가지 않은 길은 언제나 존재하므로 완벽한 선택은 없다. 지나간 일에 더 이상 긴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이제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면 당장 달려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렇게 살 수 있는 내 자리를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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