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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Nov 23. 2021

아이와 함께 여행하기

삶은 여행


영월의 한 북스테이 숙소에 앉아, 우는 아이를 달래며 나도 펑펑 울었던 밤이 있다. 인천에서 토론토까지 아이를 안고 13시간을 걸어간 적도 있다.(비행기 입석 티켓을 끊은 건 아니었다.) 고성 앞바다가 무척 맑고 아름다워 한동안 바라보고 싶었으나 아이가 너무 무서워해서 금방 돌아선 날도 있다. 머물고 싶던 그곳을 뒤로하며 사이드미러 속 풍경이 흐릿해질 때까지 쳐다봤다.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고행이다.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닐 때면 '애가 무슨 고생이야'라는 눈빛이 들릴 때가 있다.(실제로 직접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너도 고생, 10kg이 넘는 너를 안고 아득바득 낯선 길에 오르는 나도 고생. 나는 왜 이 고행길을 선택하는 걸까.


순전히 '내'가 떠나고 싶어서이다. 아이에게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서 여행을 떠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직 너무 어리니 기억도 못할 것이고 꼭 오늘이 아니어도 아이는 창창한 앞으로의 여러 날동안 청년의 눈으로 이 풍경들을 다시 마주할 것이다. '내'가 보고 느끼고 싶어서이다. 미국 횡단 열차에 비스듬히 누워 창 밖으로는 달을 보고 등 뒤로는 철컹철컹 기차와 길의 소리를 느꼈던 20대의 그날들처럼, 길 위에서 계속 새로워지고 싶다.


"아이의 지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장성한 세 아들이 있는 어느 카페 주인 아주머니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목까지 올라온 말을 그냥 삼키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마음이 툭 나와버렸다.

"저의 지금도 다시 돌아오지 않잖아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의 이기심을 너무 드러냈나 곤란해하던 차에 더 곤란한 말이 꽂힌다.

"엄마잖아요."

아, 곤란하여라.


나는 엄마가 되었고, 내 뱃속에서 내 살을 먹고 태어난 아이들이 내 피로 만들어진 모유를 먹고 점점 커졌다. 그렇게 내 살과 피로 키운 존재가 이제는 내 시간을 먹고 자란다. 내가 사랑하는 여행의 시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여행길에서의 시간 대부분은 아이들을 케어하는 데에 쓰게 되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들을 케어할 생각에 긴장과 피로감으로 가득 차 있다. 여행에서의 행복은 그 틈에서 반짝 찰나처럼 발견된다. 어쩌다가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져서 내 눈과 마음이 새로운 기운으로 충만해지는 딱 몇 초의 순간들이 생기는데, 바로 그때 그걸 잡아야 한다. 이 행복의 비결을 발견한 다음부터는 그 순간이 아쉽게 끝나더라도 바로 놓아준다. 그렇게 예전보다 조금 더 포기했고, 조금 더 얻게 되었다.


첫째 아이가 5살이 되니 이제 여행길에서의 시간을 기억하기 시작한다. 얼마 전 영주 소백산 자락에서 묵었던 허름한 초가집 숙소를 '나무집'이라고 부르며 할머니에게 그날에 대해 잔뜩 얘기하는 걸 들었다. "나무집에 갔었는데 화장실이랑 주방이 집 밖에 있더라? 밤에는 엄마아빠랑 별을 봤어요!" 아이의 그 말이 나를 다시 그날 밤으로 데려간다.


그날 밤은 다행히 맑았고 꽤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 별자리 앱을 켜서 온 밤하늘을 비추었고 우리 손가락 끝에서 여러 별자리들이 빛났다. 그간 아이패드 별자리 앱을 꽤 재밌게 봐왔던 아이는 왠지 저건 토성의 고리 같다며 매우 들떠했다. 명왕성을 봤다며 좋아하기도 했다.(당연히 실제 토성과 명왕성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가 봤다면 본거겠지.)


"엄마, 오늘은 달과 별의 날이야. 여긴... 우주잖아!"

맞다. 우리가 우주 속에 있다. 너무 낭만적인 말이었다. 이제 내 여행의 낭만은 이렇게 재편되는 것일까.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 그리고 나의 삶이.


그 날의 밤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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