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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Dec 03. 2021

아이들의 생일, 엄마의 기록 (1)

워킹맘의 첫째 이른둥이 출산 썰


훗날 이 글을 읽게 될 너희들에게,

<원인 불명의 조기 양막 파열>, 엄마의 진단명이었어. 임신한 여성의 자궁에서 진통 전에 양수가 터지는 것을 의미하지.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해. 임신기간 내내 아무런 이벤트가 없던 엄마의 양막이 왜 갑자기 파열됐을까 많이, 정말 많이 생각했어. 의학적으로 알아낼 수는 없었지만 엄마는 하나의 결론에 다다랐지. 아무래도 너희가 그때 나오고 싶어서 양막을 발로 차버린게 아닐까 싶어. 그렇기 때문에 정상 재태주수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너무 빨리 너희를 낳게 된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은 없어. 난 내 속에 너희의 생명을 품고 세상에 내놓는 거룩한 일을 했는데 내가 왜 미안하겠니. 그런데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래 글 행간에 어쩔 수 없는 미안함이나 후회 비슷한 것이 불쑥 보인다면 그냥 '아, 엄마가 살던 시대의 워킹맘은 이런 환경에서 이런 정신 상태로 살았구나.'라고 가볍게 읽어주길 바란다. 사랑해.



내 생애 첫 출산을 한 지 4년 3개월이 지났다.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이는 두 번째 출산은 지금으로부터 10개월 전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고, 예상보다 빠르게 나의 노화가 진행 중이다. 그래서 더 잊기 전에 아이들이 태어난 그날, 겨우 막 엄마로 태어난 내 모습을 기록해두고 싶다.




"자, 지금 아기를 낳으셔야 합니다."


출근하던 길이었다. 새벽에 분비물이 좀 비치길래 혹시 모르니 확인차 잠깐 병원에 들렀던 상황이었다. 그냥 분비물이 아니라 양수가 새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긴급한 상황인지 몰랐던 나는 아기를 만날 생각에 조금 들뜨기도 했다. 하지만 금세 회사에서 나를 기다리는 업무들이 생각났다. 회사에 다녀오겠다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더욱더 단호하게 말하며 얼른 입원 수속을 밟게 했다.

"회사 가지 마세요. 오늘 아기 만나는 거예요."


35주 1일.

정상 분만일보다 2주가 빨랐다. 이 35주 시기에는 폐가 완성되는 시기이다. 즉, 이때 아기가 태어나면 폐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묵직한 폐 성숙 주사를 맞고 누워만 있었다.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도 양수가 폭포처럼 쏟아져 흘렀다. 사실 가만히 누워만 있지는 못했다. 계속해서 울려대는 업무 카톡에 답을 하며 업무 파트너들에게 내 상황을 알렸다. 상황은 알겠으나 이거 하나만 좀 물어보겠다, 라는 업무 연락도 있었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어 나도 휴대폰으로 볼 수 있는 모든 크라우드 자료를 다 훑어보며 답을 해줬다.


태아의 성장에 있어 엄마 뱃속에서의 하루는 태어난 이후의 일주일과 비슷하다고 했던가. 아무튼 이 시기의 태아는 엄마 뱃속에 1시간이라도 더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태아의 상태를 계속 확인해가며 최대한 분만을 늦추고 병원에서 1박을 보냈다. 양막이 파열된 이후에는 계속해서 감염의 위험이 있고, 감염이 발생하면 태아뿐만 아니라 산모도 위험해진다, 라는 것을 분만 후에야 알았다. 우리 둘 다 죽을 수 있다는 소리, 라는 것도 분만 후에야 알았다. 양수는 계속 터져 나왔다. 와, 진짜.. 콸.콸.콸.


양수가 나오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경우 진통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출산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진통이 걸리지 않았다. 촉진제를 써서 유도분만을 했는데도 진통이 없었다. 양수가 터진 지 32시간이 흘러가고 있었고 이 와중에 남편이 집에서 부랴부랴 가져온 출산 가방의 바디필로우*를 보며 까르륵 웃어 넘어가기도 했다.


유도분만 중에도 업무 연락은 계속되었다. 만약 내가 이때의 첫 번째 임신기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뱃속 아이를 위해 업무를 덜 하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글쎄.. 그때 그 프로젝트는 내가 5년간 자식처럼 키워온 업무이다. 가짜 자식과 내 뱃속의 진짜 자식을 어떻게 비교하냐고 손가락질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으니까. 양수가 철철 흐르는 상태로 누워 한참을 내 스스로에게 손가락질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수없이 물으며 비난했다.


자궁의 양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제왕절개 수술을 결정했다. 하반신 마취가 시작되고 간호사 한 분이 내 배를 세게 눌렀다. 몇 분도 안되어 어떤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의 첫아기, 노라**였다. 그가 왔구나. '저렇게 울 수 있다는 것은 폐가 잘 만들어졌다는 거 아닐까'라는 안도감에 내 눈에서도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내 얼굴 옆에 노라가 왔다. 노라에게 인사를 했다.

"노라야, 웰컴 투 더 월드."

내 목소리를 들은 노라가 갑자기 울음을 멈추더니 실눈을 뜨고 나를 쳐다봤다.




잠결에 대구 사투리가 들렸다. KTX를 타고 급하게 일산으로 올라온 친정엄마의 목소리였다. 그렇게 나를 찾는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이 커지면서 나도 수면마취에서 깨어났다.

"괜찮나? 안 아프나?"

엄마는 울먹이고 있었다. 갓난아기였던 내가 이발소에 앉아 배냇머리를 밀고 있을 때도, 처음 유치를 뽑으러 치과에 누워있을 때도, 내가 웃으며 결혼식장을 걸어 들어올 때도 내 모습을 보고 울었던 우리 엄마가 또 울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통증이 없었다. 다만 계속된 금식에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을 뿐이다.


자연분만이 고통 선불제라면 제왕절개 수술 산모에게는 고통이 후불로 청구된다. 지혈을 위해 배에 얹어두었던 모래주머니를 빼고 간호사가 내 배(좀 전에 개복수술을 한 나의 그 배)를 눌러 오로를 뺐다. 진심 눈앞에 별이 보였고 뭐하는 짓이냐며 간호사의 머리채를 잡아 뜯을 뻔했다. 이윽고 미역국 대환장 파티가 시작되었으나 3차 병원 NICU(신생아 집중치료실)로 전원 된 노라를 떠올리며 나는 미역국 위에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럼에도 산후 회복을 위해 좀비처럼 병원 복도를 계속 걸어야 했는데 내 안의 모든 장기가 쏟아져내리는 것처럼 너무나 아팠다. 이런 내 컨디션과 상관없이 내 몸뚱이는 아이를 먹일 시스템을 빠르게 갖추어 나갔다. 가슴에 모유가 차올랐고 젖몸살이 시작되었다. 위아래로 난리였다. 만신창이가 된 몸과 마음에 산후 우울감까지 더해져 매일 울기만 했다.


출산 소식을 알리며 팀 단톡방을 포함한 모든 업무 카톡방에서 나왔다. 회사생활 기간 중 가장 후련했던 순간으로 기억한다. 퇴사 전까지 하차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이 버스에서 잠깐 내렸다고 생각하니 잠시 동안이지만 자유인이 된 것 같았다. 업무 생각을 멈추니 장거리 여정 중 잠깐 버스정류소에서 신선한 바람을 쐬는 것처럼 머릿속이 굉장히 상쾌해졌다. (비록 몸과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만신창이었지만.)




재태주수 35주 2일 출산. 2.51kg.

이제 아이가 이른둥이라는 사실은 1년에 한 번 받는 아이의 영유아 검진 사전 문진표 작성 시에만 자각한다. 이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은 대체로 매 순간 자각하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거짓말처럼 그 사실을 잠깐 잊기도 한다. 아이와 엄마가 탄생한 그날의 어떤 기억은 잊히기도 할 것이고, 새로운 기억이 얹어져 왜곡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 배의 흉터와 초음파 검사 시 보이는 자궁벽의 수술 자국은 내가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흉터에 영원히 각인될 장면을 하나 골라보라고 한다면 어떤 기억을 선택할까. 나의 첫인사에 울음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보던 노라의 까만 눈동자가 생각난다.




*남편의 출산 가방 썰 : '우리가 우리가 되는 동안' 참조

**노라 : 첫째 아이 태명. 북극광(오로라, Northern Lights, 이트)과 같은 환상적 아름다움을 담아 작명하였음.




출근하다가 아이를 낳게 된 첫째 아이 출산 기록에 이어, 회사 사무실에서 양수가 터진 둘째 아이의 출산 기록은 2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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