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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Dec 21. 2021

벌서는 밤


아이가 밤새 울었다.


코감기와 이앓이가 겹친 생후 10개월 아기의 고통스러운 밤이었다. 끙끙 앓다가 똑똑 자다가 아이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겨우 푹 긴 잠에 들 수 있었다. 해가 뜨려나 싶어 창문 쪽을 몸으로 가리고 비스듬히 누워 나도 잠에 들었다. 잠시 후 아이는 창문 밖 가득한 안개처럼 투명하게 하얀 얼굴로 깨어났다. 다행히 평화로운 얼굴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여전히 고통스러운 내가 있다.


5살 된 엄마는 아직 모르는 게 많지만 아이가 아픈 상황에서의 그 두려움은 안다. 그래서 첫째 아들이 감기에 걸려 골골거릴 때에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감기가 둘째 딸에게 옮겨가는 중에도 나는 두려웠다. 아이들의 감기가 더 심해질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아픈 아이의 온갖 짜증과 잠투정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나의 괴로운 상황이 두려웠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아이 목이 찢어질듯이 운다. 날카롭게 '엄마'를 말하며 울부짖는다. 저 '엄마'라는 말이 이제 막 말문이 터진 아기의 목과 입술이 내는 의미 없는 발화음인지, 아니면 정말 나를 향한 '부름'인지 모르겠다. 그냥 전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귀를 막았다.


아이를 끌어안아 달래본다. 아무리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다. 둥가둥가 하며 아이 엉덩이를 치는 내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간다. 아이가 더 크게 울고 그 소리 크기만큼 내 손에 더 힘이 들어간다. 화가 실린다. 화가 실린 손바닥으로 내 허벅지를 친다. 허벅지가 아픈 게 아니라 손이 아프다. 나는 어떻게 울어야 하나. 엄마를 부르며 울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우리 엄마가 너무 괴로울 것 같다.


갓난아기를 돌보지 않고 방치하여 아동학대로 구속되는 부모에 대한 기사가 심심찮게 나온다. 그런 기사에 달리는 온갖 비난의 댓글을 보면 어느새 나는 그 범죄자 부모 중 한 사람이 되어 그 비난을 듣고 있다. 한밤중 어슴푸레한 밤의 공기 속에서 귀를 날카롭게 찌르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얼마나 반복적으로 나를 괴롭히는지, 달래도 달래지지 않는 이 무력감이 얼마나 이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게 만드는지, 내가 왜 이런 벌을 서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억울하기만 한 이 어두운 동굴 속을 계속해서 걷고 넘어진다.




아이를 침대에 던지고 고스란히 그 울음 섞인 "엄마, 엄마, 엄마,..." 소리를 듣는다. 벌을 서다가 차가운 공기가 훅 들어오는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열어젖혔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멍하게 아득해질 때까지 생각했다. 나는 이 밤들을 왜 이렇게 못 견디는 걸까, 나의 수면 부족에서 오는 단순한 까닭일까, 나는 특정 데시벨의 소음을 못 견디는 신경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나는 엄마가 되어서는 안 될 인간이었나.


아픈 아이의 상태를 헤아리지 못하고 괴로운 내 상태만 견디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그런 나는 스스로가 혹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남편에게 털어놓은 적도 있다. 그러다가 우리 부부가 스스로를 관찰하여 찾은 해법은 '욕망을 줄이는 것'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그 책을 마저 읽어야지,

오늘은 꼭 따뜻한 루이보스티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할 거야,

지금 떠오른 이 문장으로 당장 글을 쓰고 싶어,

오늘 밤에는 그림 종이 앞에 앉아야지,

언제 자나, 얘는 도대체 언제 잘까, 아 또 깼다..


이 욕망의 상태가 계속 이어지고 욕구가 해소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화가 난다. 그걸 못하게 만드는 상대 아이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아예 애초에 욕망을 멈추면 괴로움도 없을 것이고 그러면 모두에게 평온이 찾아올까.


밤새 화를  무서운 엄마도 엄마라고, 아이가 나를 향해 웃으며 성큼성큼 기어온다. 손에  순간을 내려놓고 아이의 까맣고  눈동자를 바라본다. 어젯밤 내가 걷던  아득한 동굴 같다. 미래의 나에게 시간을 내지 말고, 지금 바로 여기에  자신을 가져다 놓는 연습이 필요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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