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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Dec 31. 2021

매주 노래 한 곡 나누는 삶

시간 부자 무벌이(?) 부부의 2021년


오늘은 2021년 12월 31일.


2022년의 새로운 문 앞에서 문고리를 만지작거린다. 문을 열고 걸어 나가려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2021년을 뒤돌아본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다. 그야말로 충만하게 잘 지낸 한 해였다.


맞벌이 부부로 지내던 우리는 올해   근로 노동을 하지 않는 무벌이(?) 부부가 되었다. 육아휴직 급여가 나오긴 하지만 기존 우리  근로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저축도 있고, 주식도 있고, 코인도 있어서  덕에 읽고 싶은 책들은 아쉬움 없이  읽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존 벌이보다는 훨씬 적은 상황이니 팍팍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올해의 마지막에 서보니 나는  어느 때보다 풍족한  해를 보낸  같다. 우리 부부가 매일 마주 앉아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고 웃을  있어 더없이 충분했다.


매주 남편에게 노래 한 곡을 추천하겠습니다.


내가 남편과 결혼할 때 서약한 내용 중 하나이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나 올해가 되어서야 그 약속을 충실히 지켜낼 수 있었다. 매주 단 한 곡의 노래를 정해 남편에게 추천하는 것은 사실 큰 시간과 노력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를 다닐 때에는 그럴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그럴 에너지조차 없었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업무를 챙기고, 퇴근 후에는 아이와 집안을 챙기고 나면 이미 잘 시간. 그나마도 노트북을 펴고 잔업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겨우 잠들어 아침이 되면 아이와 한바탕 소란을 피우며 어린이집 셔틀버스에 아이를 태우고 난 투벅투벅 회사로 갔다. 하루 종일 안팎으로 나를 찾는 사람들 앞에서 여러 이름표를 바꿔 달았고 그런 나의 일상에는 새로운 노래 한 곡 발견할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우리 남편에게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매주 지키고 있는 루틴이 하나 있다. 다가올 다음 주에 들을 노래들을 골라 매주 플레이 리스트를 만드는 것. 리스트에 들어갈 노래를 선택할 때는 그 주의 감정과 상황이 반영된다. 그때그때 인생 페이지의 분위기가 들어간다. 그렇게 쌓인 플레이 리스트 기록들은 바로 그의 일기이다. 나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멜론 플레이 리스트 후보 목록에 매주 한 곡씩 슬쩍 넣어둔다. 그 다음주에 나의 추천곡이 그의 엄선된 플레이 리스트에 들어가 있으면 꽤나 기쁘고 뿌듯하다.


오늘처럼 한 해의 마지막 날, 남편은 유독 바쁘다. 올해의 플레이 리스트 세리머니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엑셀로 정리된 그 해의 플레이 리스트는 '가장 많이 플레이 리스트에 반영된 노래', 그리고 '가장 많이 재생된 노래' 등 여러 기준으로 집계한다. 이 결과를 가지고 우리는 연말 시상식을 진행한다. 다같이 모여 앉아 그 해에 가장 많이 들은 노래들을 다시 함께 듣는 것이 우리 가족의 송년회이다. 올해는 어떤 노래들이 오디오 시상대에 오를까.




우리 부부가 둘 다 회사에 다닐 때에는 하루 한 끼 겨우 저녁식사를 함께 할 수 있었고, 그나마도 회사에서 있었던 골치 아픈 일들이 주된 대화 소재였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는 동정과 연민이 가득했고, 잠을 청하는 매일 밤에는 '이렇게 사는 게 괜찮은 걸까.' 자주 의심했다. 잘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인데 어찌 된 일인지 '왜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는 물음표만 쌓여갔다.


올해를 지나면서 우리의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삶을 가꾸는 에너지는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차 있다. 매일 아침 남편과 마주 앉아 커피와 차를 마시며,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나누었다. 항상 화가 나 있던 나는 올해 글쓰기를 시작하고 그림을 다시 그리면서 좀 더 밝아진 것 같다고 남편이 좋아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걸 해보고 싶다, 저걸 해보고 싶다.' 말하는 나에게 가장 큰 응원을 보내주는 사람도 남편이다. 그런 남편과 우리 스스로에 더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이 대화할 수 있어 감사한 한 해였다.


현실은 현실이니, 팔자 좋게 매일 남편과 집에서 뒹굴뒹굴하는 생활도 곧 끝이 날 것이다. 휴직기간이 끝나면 나는 회사, 그곳으로 돌아갈 것이고, 남편도 인생의 퍼즐 조각을 채워나가며 벌이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금이 얼마나 그리울까. 2021년 우리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삶이 흔들릴 때마다 떠올리고 싶다.


"음악, 여행, 사람, 날씨, 꽃.
이들의 공통점은 '태풍'을 몰고 올 가능성이 있다는 거야.
불어오는 것 중 제일은 음악이지."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박연준


우리 부부에게 좋은 음악들이 유독 많이 불어온 2021년. 어떤 삶이 나에게 충만함을 주는지 깨닫게 된 중요한 해였다.


"남편에게 매주 노래 한 곡 나누는 삶"


새해에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매일 노래 한 곡만큼의 에너지는 꼭 아껴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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