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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Dec 29. 2021

미움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늘 브런치의 알림을 열어보니 얼마 전에 쓴 글의 조회수가 8,000을 돌파했다고 한다. 깜짝 놀라 자리를 고쳐 앉았다. 이럴 때면 덜컥 겁이 난다. 그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본다. 누군가에게 상처되는 표현이 있거나 오해될만한 문장이 있을까 봐 몇몇 내용을 고쳐 다듬었다. 이번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쓴 것이라 그럴만한 소지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에 심장이 쿵쾅거린다. 나를 비난하는 댓글일까 봐 두렵다.


처음 브런치의 작가 승인을 받고 글을 열 편쯤 썼을 때였나. 어딘가 내 글이 걸린 건지 조회수가 30,000을 넘어간 적이 있었다. 잘 쓴 글이어서 사람들에게 노출된 게 아니라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연결된 것 같았다. (정작 스스로가 괜찮게 썼다고 생각되는 글은 조회수가 안 나옴...) 브런치 작가가 되면 다들 한 번씩 이렇게 띄워주나 보다 싶어서 크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중 댓글이 하나 달렸다.


그 해당 글은 내가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 대해 쓴 글이었는데 거기 달린 댓글에는 비난과 박탈감 비슷한 것이 담겨있었다. 노골적인 비난은 아니었지만 팔자 좋아서 그렇게 사는 거 아니냐는 그의 속마음이 충분히 느껴지는 댓글이었다. 무서웠다. 내 글이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한 마음이 들게 하는 것 같았다. 함께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이 고민을 털어놓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죄책감은 많이 해소되었지만 그때부터 나는 좀 겁이 많아졌다. 내게 그럴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도 내 글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원치 않는다. 더불어 나 역시 내 글을 읽은 누군가의 반응으로 상처받기는 싫다.


그 일이 조금 잊힐 즈음, 얼마 전 내 친구의 브런치 글에 누군가가 공격적인 댓글을 달아 소란이 일어났다. 나를 향한 비난에는 주저앉아 울기만 하는데, 내 가족이나 친구들에 대한 공격은 누구보다 으르렁 거리는 편이다. 그런 내가 이번에도 아침부터 울화통이 터졌다. 친구가 그 댓글을 발견한 순간 얼마나 놀랐을지, 그 비난을 보고 마음 아파할 아내 생각에 얼마나 걱정됐을지.. 너무 화가 났다. 그 댓글을 쓴 사람이 무려 퇴고까지 하여 그 내용을 본인 브런치에 옮겨놓은 것도 봤다. 육성으로 욕이 나왔다. 그 사람이 쏜 그 날카로운 화살이 돌고 돌아 다시 그에게 갈 거라며 이를 갈았다. 그 악플러가 미웠다.


이틀 동안 이 사건이 계속 머리맡에 맴돌았다. 그러다 갑자기 얼마 전에 본 그의 뒷모습이 생각났다. 내가 참 미워했던 그. 함께 회사생활을 한지 10년이 넘어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걷는 뒷모습 모양새만으로 누군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사람 관계에 대해 배운 것들이 있다.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면 그 사람도 나를 싫어한다는 것, 모두가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몸소 배웠다. 나는 특히 그가 너무 싫었고 그래서인지 그도 나를 노골적으로 싫어했던 것 같다. 철저히 사측이었던 그, 그리고 정확히 반대편에 서서 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불의라고 외쳤던 나. 아마 내가 퇴사하는 날까지 그와 웃으며 대화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조직의 권력구조가 바뀌면서 지난 권력의 제1 오른팔이었던 그는 당연히 뒷방으로 밀려났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어 점심시간도 훌쩍 넘은 시간에 회사 주위를 하릴없이 걷는 뒷모습을 얼마 전 내가 본 것이다. 벌써 세 번째다. 회사 근처에 사는 바람에 휴직 중에도 별 걸 다 보게 된다.


나는 똑똑한 그가 왜 그렇게 권력에 붙어 직원들에게 칼을 들이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땐 그랬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누군가에게는 불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를 때였다. 선과 악은 교과서에 나오듯 단순하고 말끔하게 양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도, 인간도, 우리 모두 복잡한 존재라는 것을 잘 모를 때였다.


철저히 악의 모습으로 존재하던 그에게 다른 모습을 발견한 건 작년이다. 그의 하나뿐인 딸이 이름도 무서운 큰 병을 얻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의 어깨가 점점 약해졌다. 아무리 회사에 칼바람을 일으키던 그도 자식 일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 아이의 아버지였다. 어떤 직원들은 그가 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왜 그의 딸이 벌을 받아야 하는 거냐며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소름 끼치게 고개를 저었다. 각자의 아이를 키우는 같은 부모 입장이 되어 보니 마냥 남일처럼 보이지도 않거니와 벌 받은 거라고 꿈에라도 고소해하는 건 더더욱 안될 일이었다.


어쩌면 그는 그냥 본인의 신념을 좀 낮추고 조직에서 부여받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직원 정도였을지 모른다. 훗날 내가 회사에서 그런 업무를 받는다면 나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퇴사해버릴 수 있을까. 실제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았으니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도 내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할 뿐 그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회사 후배들에게, 협력사 파트너들에게, 동료들에게 그와 비슷한 부당하고 불손한 직원이었던 순간이 전혀 없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없다.


그의 행동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누구도 완전한 악인은 아니라고 이해하고 싶었다. 아무튼 그와 웃는 얼굴로 대화 나눌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지만 미워하는 마음은 거두기로 했었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 글의 뼈대를 잡아가던 중, 나는 좀 의아했다. 친구의 악플러 사건에 분노하다가 왜 갑자기 그의 뒷모습이 생각난 걸까. 글 쓰기를 멈추고 반나절 내내 생각해봤다. 왜일까. 왜 갑자기 그가 생각났을까.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


수긍할 수밖에 없었던 남편의 퇴사 사유가 떠올랐다. 친구의 악플러를 보면서 나는 실로 꽤 오랜만에 누군가를 불같이 미워한 것이다. 사고의 관성이란 참 신기한 것이어서 이전에 누군가를 미워했던 감정까지 소환했다.


더 이상 누군가를 미워하지 말자고 남편과 다짐했던, 얼마 전의 내 모습을 다시 떠올려본다. 분노할 일이 생기더라도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그 사람을 거울 삼아 내가 그 짓을 범하지 않으면 될 일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며 파르르 하는 나를 오랜만에 만났다. 악플러를 미워할 시간에  친구들의 글을    읽고,    응원의 마음을 얹는 것이 나에게 훨씬  건강한 일이었다. 앞으로 행여 미움의 감정이 다가온다고 해도 미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 않도록 부단히 마음을 비워내는 내가 되고 싶다. 머무는 마음 없이 흘려보낼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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