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 Jan 04. 2022

잘 걷고, 싸우지 말고, 아프지 않기

우리들의 새해 다짐


나는 그냥 내가 될래!


2022년 우리 가족의 새해 다짐에 대해 얘기 나누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6살 아들. '새해 다짐'이라는 것이 생소한 우리 아들에게 '어떤 어린이가 되고 싶으냐'라고 물으며 답을 유도했더니 그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냥 내*가 될래."

 *실제로는 여기 '내' 자리에 본인의 이름이 들어감.


하마터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칠 뻔했다. '누구 아들이길래 이렇게 근사한 새해 다짐을 말하는 거야?!'라고 내 마음에 자랑스러움 비슷한 것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하지만 곧 의식적으로 그 기분을 떨쳐내고자 노력했다. 이 존재는 '나의 아들이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자랑스러워하거나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나는 그냥 새해에도 여전히 나의 아티스트, 우리 아들의 1호 팬으로서 그를 많이 많이 사랑할 것이다.


잠시 후 남편과 내가 새해 다짐을 하나 둘 꺼내놓으니 그걸 들은 아들이 몇 가지 더 추가한다. (아, 새해 다짐이라는 것은 이런 거구나 감이 온 모양이다.) 동생 잘 돌봐주기, 어려운 글자 쓰기 등등. 하루에 간식을 4개만(?) 먹겠다며 한 개 더 먹고 싶어도 참겠다고 한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도 잘 가겠다는 다짐까지 스스로 꺼내놓았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더 의젓한 6살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 걸까.


가족회의가 끝나갈 즈음 내 귀에다가 작게 하나 더 말했다. "참, 똥꼬 안 만지기..."




이제 6살이 된 아들은 우리 부부가 없이도 할머니 집에서 3박 4일을 자고 올 만큼 어느새 커버렸다. 너무 이른 걱정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르겠으나, '아, 우리가 없어도 되나. 이렇게 조금씩 우리 곁에서 날아가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나 보다. 남편은 새해 다짐 중 하나로 '가족들과 추억 만들어 기록하기'를 넣었다. 아이들이 우리에게 재잘재잘 기꺼이 곁을 내주고 언제든 살을 비비고 뒹굴뒹굴할 수 있는 바로 지금, 함께 추억을 많이 만들고 그걸 기록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작년은 우리 아들에게 '미운 5살 사춘기' 기간이었다. 거기에 동생이 생긴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본인도 힘들고, 그런 그를 보는 우리 부부도 꽤나 힘들었다. 이제 어느 정도의 예의범절 훈육도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야단도 참 많이 쳤는데, 뒤돌아보니 때때로 그게 지나쳐 5살에게 15살의 매너를 요구하기도 했다. 6살을 6살로 바라보자는 반성과 함께, 남편은 아이를 하루에 꼭 한 번 이상은 따뜻하게 폭 안아주겠다고 다짐했다.


이 외에도 영상 편집 마스터, 음반 리뷰 작성 등 총 14개의 새해 다짐을 꺼내놓은 남편은 각 다짐마다 짧지 않은 부가 설명까지 작성해 와서 나를 놀라게 했다. 그중, 미움과 의심을 하지 않고, 밝고 생산적인 것에 더 집중하겠다는 그의 다짐은 나도 함께 실천하리라 마음먹었다.




나의 새해 다짐 1번은 '매일 글쓰기'이다.


분량에 상관없이 조각글이라도 '매일' 쓰겠다고 다짐해본다. 글쓰기는 정적인 활동처럼 보일 수 있지만, 쓰면서 비워내고 또 그걸 계속해서 채우는, 나에게는 동적인 활동이다. 쌓인 에너지를 쓰고, 또 동시에 새로운 에너지가 채워지는 건강한 순환이다. 오래도록 글을 쓸 수 있도록 근육을 만들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1년 동안 글쓰기 루틴이 쌓인다면 회사에 복직한 후에도 어느 정도 이 루틴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담아 본다.


글짓기뿐만 아니라 '그림 짓기'도 올해 계속 이어나갈 계획 중 하나이다. 꾸준히 연습하되 매월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하여 내년도 달력 제작에 활용하고 싶다. 한 해, 두 해, 그림을 꾸준히 그린다면 종이에 풀어낼 수 있는 나의 세계가 더 명확하게 보이지 않을까. 그래서 먼 훗날에는 나의 소속이나 직함을 떼고도 나를 표현할 수 있는 그 무언가 중 하나가 '나의 그림'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올해에는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공간이 생길 예정이다. 월급쟁이로만 살아온 우리가 창업을 한다. 나도 육아휴직을 1년 더 연장하고 이 프로젝트의 초기 연착륙을 도울 것이다. 새해가 되자마자 남편과 함께 사업계획 수립에 착수했는데 회사에서 지루하게 쓰던 사업계획서와는 다르게 너무나 들뜨고 신이 난다. 당연한 걸까. 매년 회사에서 사업계획서를 쓸 때면 이걸 성공시키기 위해 내 영혼을 얼마나 더 갈아 넣어야 할까 의구심만 커져갔다. 하지만 '우리의' 사업계획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하는 바람이 담긴다. 우리가 살고 싶은 삶의 모양을 그려 넣는다. 망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하니 겁도 나지만, 뭐 그래도 일단 시작이다.


아들의 새해 다짐을 빌려 사업계획서 귀퉁이에 적어 본다. "나는 그냥 내가 될래."





참, 우리 집 막내의 새해 다짐이 빠졌네요. 곧 돌을 앞둔 딸아이의 새해 다짐은 저희 부부가 임의로 정해봤습니다. 적고 보니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또박또박 공유해봅니다. 이렇게만 살아도 참 잘 살았다 싶은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1. 걸음마 마스터 하기

2. 오빠와 싸우지 않기

3. 아프지 않기




매거진의 이전글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