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대신 글
우리의 인생에는 약간의 좋은 일과 많은 나쁜 일이 생긴다. 좋은 일은 그냥 그 자체로 놔둬라. 그리고 나쁜 일은 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 이를테면 시 같은 것으로.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어제 저녁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 생각해보면 나는 보통 '기분이 안 좋은' 상태이다. 언젠가 결혼 전, 친한 대학교 후배들을 모아 나의 예비 신랑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한 후배가 말했다.
"선배는 항상 화가 나 있었어요."
나는 그 말이 나를 참 잘 표현하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삐쭉거리는 불만의 입술이 내 트레이드 마크라는 사람도 있고, 그 때문인지 초등학생 때에는 별명이 '병아리'였다. 이제는 남편도 이 말에 상당히 공감하며 자주 인용하고 아주 크게 큭큭거린다.
어떤 뾰족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며 무력감을 느끼는 상태에서 나의 불만은 극대화된다. 어제의 사건이 그러하다. 그런 일이 있으면 하루 종일 턱에 힘이 들어가고 입술은 더 뾰족해진다.
한낮에 그 감정을 쏟아내며 장문의 글을 짓고 글방에 공유했다. 그걸 읽을 글 친구들에게 내 감정이 전염될까 미안하기도 했지만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해결책이 있을까 슬쩍 구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렇게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뭘 해야 기분이 풀릴까. 친구들을 몇 불러서 석쇠에 작은 고기를 뒤집으며 소주를 마시고 싶다. 아무래도 소맥이 좋을 것 같은데 숙취가 걱정되니 무알콜 맥주로 청량감만 주고 소주를 똘.똘.똘. 따라 마시면 좋겠다.
그렇게 술판을 벌일 상황이 못되는 나는 또 휴대폰을 붙잡고 글이라도 써본다. 나쁜 일을 시로 지어낼 자신은 없으니 그 대신 오늘의 좋은 일을 떠올려 남기기로 하며..
- 4일 연속 오늘도 7천 보 이상 걸었음.
- 산책로에서 우연히 발견한 윤슬이 아름다웠음.
- 딸아이의 낮잠1과 낮잠2 모두 성공적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