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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Feb 12. 2022

입원 가방을 꾸리며

인생의 불확실성


딸아이의 첫 돌을 맞아 고운 한복을 입혀 돌사진을 찍어주고 싶었다. 첫째 아들도 생일 당일에 똑같은 스튜디오에서 돌사진을 찍었고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둘째 딸에게도 똑같이 해 줄 생각이었다. 둘 다 돌잔치는 하지 않았다. 대신 예쁜 기념사진만 남겨 이 날의 아이 모습을 기억해두고 싶었다. 하지만 내 바람이 그러할 뿐. 인생은 바람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사진을 계획한 대로 찍지 못했다. 아이가 그날따라 내 품에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아 도저히 촬영을 진행할 수 없었다.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예약한 케이크를 찾으러 갔다. 약속시간보다 너무 일찍 와버렸고 케이크는 마무리 작업 중에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책장에서 책을 하나 꺼내 들고 스윽 훑어봤다. 눈에 들어온 문장이 있었다. 어구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확실성을 조심하고, 불확실성을 사랑하라.'는 내용의 문장이었다.


불확실성


아이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잘 협조할 것이고, 좋은 분위기에서 사진 촬영을 무서히 마무리 할 것이라는 나의 확신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이 착각은 나에게 실망을 가져다줬다. '아이'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불확실성으로 존재한다. 당연히 통제할 수 없고, 통제할 필요도 없는 이 불확실성이 나에게 큰 스트레스를 준다. 이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내가 그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는 방법뿐일 것이다.




'아이'만큼이나 인생의 불확실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은 '질병'이 아닐까.


딸아이의 생일날 아침에 삼신상에 올린 쌀밥과 미역국을 챙겨 먹었다. 사진 촬영 약속시간 전까지 두 아이를 챙겨 집을 나서야 했다. 그래서 사실 아침을 먹은 게 아니라 거의 마셨다고 봐야 한다. (맛있기도 했으므로..) 낮잠 시간에 제대로 쉬지 못한 딸아이를 달래느라 점심도 허겁지겁 먹었고, 저녁에는 시부모님께서 해 오신 맛난 음식들을 잔뜩 먹었다. 평소에 쌀밥은 저녁 한 끼 정도 먹는데 이 날은 세 끼를 먹었으니 평소보다 과식을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날 밤부터 체기가 돌기 시작했다.


다음날에는 소화불량과 함께 오른쪽 아랫배 통증이 시작되었다. 오른쪽 아랫배가 아플 때에는 많은 경우 맹장염 즉, 충수염을 의심한다. 나도 생전 처음 느껴보는 통증에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지금이라도 응급실에 가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과 걱정과 통증으로 거의 잠을 못 자고 밤을 새웠다. 방사통을 체크하느라 계속 배를 찔렀더니 통증이 더 심해진 것 같았다. 그렇게 날이 밝았고, 나는 병원 갈 준비를 했다. 이미 맹장염 수술을 앞둔 사람이었다.


수술하면 며칠 동안 씻기 힘들 것이므로 꼼꼼히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두 아이를 돌봐야 하고 코로나 상황이다 보니 남편이 병원에 오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예 세면도구와 슬리퍼, 휴대폰 충전기 등을 가방에 챙겼다. 읽을 책도 한 권 넣었다. 입원 준비를 한 것이다. 바로 수술을 해야할지도 모르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분주히 움직였다. 딸아이 이유식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걱정하다가 며칠간은 시판 이유식을 배달시켜야겠다고 결정했다. 다음 주에는 상가 계약 일정도 있는데 이 무슨 맹장염인가 속상했다. 그러다가 혹 맹장염이 아니라 더 큰 병이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다다랐다. 이유식이고 상가 계약이고 뭐고 우리 일상이 모두 멈춰버릴 것이다. 차곡차곡 계획한 미래가 무너져 내릴 것이다.


확실한 진단을 위해 1차 병원을 거치지 않고 집 근처 대학병원으로 바로 갔다. 우측 아랫배가 너무 아파서 왔다고 했다. 맹장염이 의심되어 여러 검사를 하겠지만 맹장염이어도 여기서 수술할 수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무슨 불확실성?)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왜 안되냐고 물었더니 맹장염 수술할 의사가 현재 없다고 한다.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큰 대학병원 중 하나인데 맹장염 수술할 의사가 없다니.. 급하게 다른 큰 병원으로 갔다. (스스로는 이미 복막염 직전의 환자처럼 마음이 급했는데 왜 택시를 타지않고 버스를 탔는지는 미스테리..)


이무튼 병원에 도착하여 다행히 빠르게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외과 교수님의 촉진으로는 장기의 문제가 아니라 근육의 문제인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 복부 CT 촬영을 하고 3일 후 외래진료에서 결과를 확인하기로 했다. 그러는 사이 통증이 미약하게나마 줄어들고 있으니 정말 일반적인 근육통 인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근육통이든, 무거운 큰 병이든, 또는 아무 병이 아니든, 내 미래의 모습은 아직 여러가지이다. 미래학에서 미래를 'future'가 아니라 'futures' 복수명사로 표현하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 일상이 불확실한 변수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길목 앞에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실감했다. 아직은 어두운 그 길에 똑똑 가로등이 켜지며 밝아지는 시점이 온다면, 그것은 어느 하나의 길이 '현재'가 되는 순간.


입원 준비물로  있던 가방을 정리하고 오늘 읽고 싶은 책들로 다시 채웠다. 바로 지금,  순간, 오늘의 시간을 밝히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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