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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Mar 09. 2022

우리 같이 초밥 먹으러 갈래?

친구를 위로하는 날


그의 사진과 글은 정갈한 초밥 같다.


오후의 시간, 따뜻한 나무 바닥에 더 따뜻한 노란빛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비스듬히 사선으로 내린다. 빛의 속성 그대로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그대로 거기에 쌓인다. 언젠가 그 모습을 보다가 일본 소설 같다는 생각이 났고 이내 초밥이 먹고싶어 졌다. 그 뒤로 나는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초밥 생각이 난다. 나는 초밥을 무척 사랑한다. 말끔한 밥알 위에 편안하게 누워있는 생선회처럼, 그의 사진 속에 빛이 그렇게 누워있다.

  

처음에는 가지런히 놓여있는 그 모습에 선뜻 다가가기 힘들 수도 있다. 나의 어설픈 젓가락이 초밥을 해치거나 약한 생선회를 불편하게 할까 봐 머뭇거려진다. 물끄러니 보고 있자니 나와는 다른 반듯한 모양에 왠지 샘이 날 것 같기도 하다. 나와는 달리 화도 없고, 걱정도 없고, 언제나 다정하며, 따뜻한 마음이 비스듬히 사선으로 내린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이제야 보이는 게 있다. 우리에게 발견된 것인지, 아니면 그가 이제 우리에게 꺼내놓기 시작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제 알 것 같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다정한 빛도 당연히 그늘이 함께라는 것을. 그의 따뜻한 공감에는 과거의 비슷한 아픔이 존재했고, 다정한 위로 속에는 여전한 상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 글을 사이에 두고 잘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비슷한 오해를 받아본 나는 오늘의 그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가 무수히 나에게 해준 것처럼.


그가 나를 위해 책을 골랐던 날처럼 나도 책장 앞에 섰다. 문 하나를 닫은 그가 혹시 이대로 멈춰 다른 문도 닫을까봐 걱정했다. 내 주위의 모두를 통틀어 가장 충실한 독자인 그가 계속해서 책을 읽고 밑줄을 긋고 문장을 골라 나누면 좋겠다. 오해로 시작된 불편한 에피소드 속에서 억울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 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마음 아파하고 있을 그가 그냥 그 마음을 털어버렸으면 좋겠다. 나의 이 바람을 담아 어떤 책을 보내면 좋을까.


책에 파묻혀 큭큭거릴 그를 상상하며, 만화책을 골랐다. 책만 보내려다가 한껏 재잘거릴 준비가  나도 함께 보냈다. 그렇게 찾아가게  그의 , 비스듬히 내리는  속에서 그와 함께 많이 웃었다. 여러  사진으로만 봤던 그곳의 빛을 오늘 처음으로 만났다. 서로의 글을 나누며 거의 매일을 함께 했지만 실제로 그의 얼굴을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러고보니 준비한 위로의 말은  마디도 꺼내지 못한채 마치 어제 만나고 오늘  만난 것처럼 그냥 사는 이야기만 잔뜩 하다가 헤어졌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깨달았다. 그는 초밥이 아니었다. 치킨카레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것도 아닐 것이다. 누군가의 글을, 사진을, 그림을 몇몇 봤다고 해서  사람을 전부  아는 것인  오해하고 있었던  바로 내가 아니었을까. 그가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빛이든, 그늘이든, 우리는 언젠가 같이 초밥을 먹으러 가기로 약속했다.   가득 초밥을 먹다가 웃다가 울다가 사는 이야기 잔뜩 하다가 헤어질 것이다.


언젠가 또 그에게 위로와 응원이 필요한 날이 온다면 암호처럼 외워봐야겠다. "우리 같이 초밥 먹으러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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