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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Mar 25. 2022

코로나 확진자의 격리 일기(1)

엄마 버전


현재 격리 5일 차. 네 식구 중 나만 양성이다.


비염이 있는 남편이 코로나에 걸리면 증상이 심할 것 같고, 아이들이 걸리면 고열에 시달린다고 하니 걱정이다. 한 가족은 전부 다 걸려야 확진 릴레이가 끝난다고 하지만 일단은 유일한 확진자인 내가 좀 더 조심해서 막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조심한다고 안 걸리는 상황도 아니고,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겠지만 사실 딱 이것만 바라고 있다.


'하루만 더, 딱 하루만 더.'


첫째 아이를 조산했기 때문에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둘째 아이 역시 높은 확률로 조산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내가 매일 했던 기도도 이와 같았다.

'하루만 더, 딱 하루만 더.'

하루만, 하루만 더 내 뱃속에서 자라 어느덧 정상 주수를 다 채우고 나오길 간절히 바랬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노력해서 바이러스 전파가 지연되고 아이들이 매일 하루치의 면역력이 더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걸릴 때 걸리더라도 좀 더 천천히 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특히 생후 13개월의 둘째 아이는 더더욱.


다행히 다른 식구들에게 아직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러다가 곧 콧물이 나고, 열이 나려나..


아이들을 돌봐야 하니 완전한 격리가 불가능하다. 나는 아파도 엄마는 누워만 있을 수 없다. 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어 아이 반찬과 이유식을 만든다. 나한테서 뿜어져 나오는 바이러스를 이기려면 아이들이 더 잘 먹어야 할 것 같다. 나 혼자 따로 밥 먹는 시간과 씻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 마스크를 끼고 있다. 잘 때도 마스크를 끼고 있는 것이 사실 가장 괴롭다. 자는 동안만이라도 마스크를 벗을까 생각하다가 나의 숨김에 바이러스가 뿜어져 아이들과 남편이 자고 있는 저기 안방 문틈으로 새어 들어가는 상상이 든다. 아무래도 좀 더 참는 게 좋겠다.



방에서 혼자 우두커니 밥을 먹는 내가 외로워 보였는지 6살 아들이 색종이로 책을 만들어주었다. 본인 이름과 내 이름을 써서 하트도 그려 넣고, 몇 가지 스토리가 있는 그림책도 잔뜩 만들어서 건네준다. 식사 때 그 책들을 읽으면서 밥을 먹으라고 하는 아이의 마음이 무척 고맙다. 어린이집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았는지 가까이 오지 말라는 내 말도 그럭저럭 이해하고 잘 지키고 있다. 내가 기침을 할 것 같으면 아들이 먼저 "가까이 오지 마!"라고 외치기도 한다.

'알겠어, 인마...'

어제부터 가래와 함께 기침이 나오는데 그 기침을 자꾸 삼키다 보니 속이 울렁거린다.


마스크를 끼고 덩그러니 혼자 누워있자니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누워있을 때가 생각났다. 제왕절개 수술을 위해 수술대에 누워 산소 호흡기를 끼고 있던 그때. 그때 봤던 천장과 지금 보는 천장은 다르지만 코와 입술에서 느껴지는 공기의 결이 사뭇 비슷하다. 내 뱃속에서 막 꺼내져 응애응애 울던 그 조그맣던 아이들이 언제 저렇게 커서 재잘거리게 된 걸까. 몸을 일으켜 거실을 쳐다본다. 소란스럽게 재잘거리는 아이들 사이에 남편이 있다. 멀찍이 떨어져서 저 셋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나의 부재가 상상된다.


"엄마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존재입니다. 건강하게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됩니다."


어제  글을 읽고 글방 친구가 해준 말을 다시 조용히 떠올린다. 얼른  시간들이 지나 저들 속에서 살을 비비고 같이  튀기며 재잘거리고 싶다. (그나저나 내일은 남편의 생일인데 맛있는 케이크를 사다주지 못해 아쉽다..)



덧) 혼자 잠들고 깨는 건 둘째 아이 조리원 생활 이후로 처음이다. 자기 전에 뒹굴뒹굴 책도 읽고 내가 원하는 자세로 맘껏 누워있자니 예전 자취방도 온 것 같기도 하다. 격리 생활 중 가장 좋다면 좋을 점이다. 격리 기간이  끝나도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혼자 자고 싶다고 남편에게 슬며시 도움을 청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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