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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 Jun 03. 2022

자책 회로가 가동된 날


"어머니, 이따가 3시에 전화통화 괜찮으신가요?"


어제 아침, 우리집 6세 아들의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무슨 일인가 너무 궁금했고 3시가 될 때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이것 때문일까, 저것 때문일까,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 예상 문제(?)들이 나타났다가 지워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일단 전화가 오면 용건을 듣고, 그 이후에 고민하자고 생각을 미루며 머릿속 문제집을 덮었다.


"자꾸 반 친구들을 꼬집고 때려요. 그런데 이유가 없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얘기를 나눠봐 주세요."


선생님의 용건이었다. 그리고 나의 숙제였다.


모두가 즐거운 상황에서 아무 맥락 없이 아이가 갑자기 옆사람을 꼬집어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던가, 자신을 아주 예뻐해 주는 할머니를 자꾸 때리면서 할머니를 아프게 하는 상황이 그간 계속 있었다. 나도 잘 알고 있는 문제였다. 육아에 대해서는 언제나 속수무책으로 도망가고 싶은 나에게 이 문제는 너무 어려웠다. 답을 찾을 수 없이 흘러온 이 상황이 한 반년쯤 된 것 같다.


선생님과의 전화통화가 끝나고 자책 회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완벽한 모습으로 성장할 수는 없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만큼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지금 당장은 심각하지 않아도 아이가 클수록 더 심각해질 수 있는 문제이다.(남자아이에게는 더더욱..) 이 문제를 이렇게까지 키워온 것은 주양육자인 내 문제가 아닐까. 워킹맘의 아이여서 티가 나는 것인가, 갑자기 무슨 서점을 하겠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와의 시간을 줄였나, 당장 내 옆의 가족도 못 챙기면서 저 책들은 다 읽어 무슨 소용인가 등등.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라고 화살을 돌리면 더 마음이 편해지는 것인지, 자책 회로가 쌩쌩 잘 돌아간다.


자책 회로는 쓸데없이 소모적이다. 적당히 하고 해결사 회로를 급하게 가동시켰다.


하원한 아이를 데리고 대수롭지 않은 척 마음을 읽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역시나 '이유가 없이 그랬다'는 답만 나왔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로 들렸다. 일단, 아이가 폭력적인 행동을 보여도 감싸기만 하는 조부모님께 전화드려 상황을 알렸다. 저부터도 노력할 테니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 바로 강하게 언급해야 한다고,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남편이 아이와 놀아줄 때 혹시 툭툭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이도 모르는 사이에 학습된 것이 아닐까 남편과도 얘기를 나누었다. 아이에게 채워지지 않은 특정 욕구가 있어서 부정적인 행동으로 발현되는 것일까 평소 생활을 돌이켜봤다.


주양육자인 나에게 가장 고칠 점이 많아 보였다. 그중 하나는 아이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다. "안돼. 하지 . 이렇게 하면  . 그러지 ." 등등 아이의 욕구와 행동을 제한하는 부정 피드백이 많았다. 둘째 아이가 태어나고부터는  그랬던  같다. 그런 부정 피드백이 아이에게 쌓여서 '나는 나쁜 아이야. 악당이야.'라는 의식으로 강화되고, 아이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악당이 하는 행동인 '타인 때리기' 연결된 것이 아닐까. 아이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라는 만족감을 느낄  있도록 긍정 피드백과 사랑을  많이 표현해야겠다.


.......


(하아, 정말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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