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같지 않은 인생이라서,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에픽테토스의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 서평

by 바울리


지금 당장은 모든 바람에서 벗어나라. 내 권한 밖에 있는 것을 바라고 있다면 불행해질 것이다.


요즘시대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철학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저는 자신 있게 스토아 철학을 소개하겠습니다.


만약 누군가의 자녀에게 “연극에 배역을 정하는 것은 너의 권한이 아니니 부여된 역할에나 충실해”라고 조언한다면 아마 자녀의 부모에게 최소 욕을 한 바가지는 들을 것이 분명합니다. 청년들에게 “너의 권한 밖에 것들을 바라지 말고, 남에게 인정받기를 갈구하지 말도록 해”라고 조언한다면, 분명 그의 SNS의 게시물은 온갖 비난의 댓글로 가득 차게 되겠죠. 사고를 당한 친구에게 “네게 일어나는 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봐”라고 말한다면, 뺨을 한 대 세차게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이게 바로 후기 스토아학파를 이끈 전설의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싫어할만한 요소를 이보다 더 다양하게 갖추고 있는 철학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어두운 현실에 빛을 밝히는 철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살 순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니까요. 언젠가는 반드시 원치 않는 상황에 내몰리게 됩니다.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기, 그때가 바로 에픽테토스의 철학이 강력한 빛을 내는 순간입니다.


나는 이제 에픽테토스의 세계로 들어간다


철인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치열한 전장에서 에픽테토스의 철학을 자주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르쿠스의 명상록에는 에픽테토스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 그의 가르침이 자주 언급됩니다. 베트남 전쟁으로 8년간 포로생활을 한 제임스 스톡데일 대령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힘들 때마다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을 여러 번 되새기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하고요. 인지행동치료의 창시자인 알버트 앨리스는 합리정서행동치료의 영감을 고대 스토아 철학, 특히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애덤 스미스,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톨스토이, 알베르 카뮈 등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에 감화를 받았다고 밝힌 인물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우리에게는 '내면의 자유'가 필요하다.


그들은 에픽테토스에게서 무엇을 얻었을까요? 그들이 얻은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내면의 자유”입니다.


몸이 자유롭다고 마음까지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내면의 자유는 외부의 조건이나 상황과는 별개로 존재한다는 것이 에픽테토스의 생각입니다. 자신의 젊은 시절처럼 노예 생활을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자유로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주인이었던 에파프로디토스처럼 부를 거머쥐고도 여전히 탐욕에 속박된 사람도 많았으니까요.


에픽테토스는 혹독한 노예 생활을 통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통제할 순 없지만, 최소한 자신의 생각과 태도만큼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해방 후에는 무소니우스의 제자로 들어가 스토아철학을 배우면서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시련’ 자체가 아니라 시련을 대하는 사람의 ‘감정’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고요. 그래서 에픽테토스는 학생들에게 빼앗길 수 없는 ‘내면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가르쳤습니다.



내 몸을 아무에게나 줘버린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남에게 줘버리고 남에 장단에 놀아나도록 내버려 두는가?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폭행을 당해 모욕감을 느꼈다면, 그 모욕감은 그러한 행위에 대한 내 사사로운 감정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렇게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대로 추진하라. 설령 사람들이 엉뚱한 소리를 하며 숙덕거릴지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하고 실천하라.



에픽테토스가 말하는 “내면이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돈, 명예, 타인의 태도, 외부의 사건과 같은 것들은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반면에 나의 생각이나 감정, 태도와 같은 것들은 언제든지 통제가 가능한 것들이죠.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할 때 내면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내면이 자유로운 사람, 즉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은 외부 환경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비난하더라도 그 비난에 휘둘리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습니다. 설령 직장에서 해고를 당했다고 해도 자신을 비관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낼 수도 있죠. 건강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여전히 행복을 찾고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삶의 노예가 아닌 삶의 주인인 사람들입니다.





시대를 초월하는 에픽테토스의 가르침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삶을 완벽히 제어할 수 없습니다. 때로는 불가피한 어려움에 마주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죠. 삶을 관통하는 수많은 관문에서 에픽테토스의 가르침은 우리가 평정심을 유지하고, 스스로를 지키며,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는 없다



에픽테토스가 책을 남기진 않았는데, 다행히 제자인 아리아노스가 그의 가르침을 전하는 어록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중 한 권이 지금까지 널리 읽히고 있는 철학적 지침서인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입니다. 엥케이리디온은 그리스어로 "손에 쥘 수 있는"을 의미하는데, 우리말로는 편람이나 안내서, 영어로는 핸드북 정도로 해석됩니다. 이 책에는 일상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에픽테토스의 철학적 조언이 담겨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보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당장 오늘이 막막한 사람에게는 냉철한 철학보다 따뜻한 위로의 언어가 훨씬 더 도움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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