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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유 May 24. 2023

꼬순이들 때문에 바뀐 일상들

상추지옥이 상추천국으로


상추지옥과 상추천국 사이 




나에겐 꼬순이 원, 투, 쓰리가 있다.

동네 이웃분이 어느 날 갑자기 선물로 암탉 3마리를 선물로 주신 것이다.

전원에 살고 있으니, 재미로 한번 키워보라며 주셨는데 

내 인생에서 내가 닭을 키워보게 될 줄은 몰랐다. 

닭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바라보게 된 것도 처음이고

닭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고 공간을 마련해 주고 

아침저녁으로 정성스럽게 들여다보며 지내게 될 줄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겠지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변화 속에서 놀래고 당황하기보다는 그 순간순간에 나를 잘 녹여내고,

적응해 나가는 나를 지켜보는 것. 


이름을 뭐라고 지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꼬순이 원, 투, 쓰리라고 지었다. 

그런데 커다란 닭장 안에 암탉 3마리만 있으니 

닭장이 너무 휑하고 허전한 것 같아 재래시장에 가서 2마리를 더 사 와서

5마리라는 홀수를 맞췄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4마리보다는 5마리가 주는 안정감이 더 크게 와닿는다. 


어찌어찌하여 나는 닭을 5마리를 키우게 되었고 

그때부터 닭 5마리를 챙기는 임무는 내 몫이 되었다. 

닭 전용 사료가 있긴 한데, 나는 왠지 자연과 더불어 키우고 싶어서 풀을 많이 먹이고 있다.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닭 사료를 한 그릇씩 부어주고 

오후가 되면 텃밭에 있는 상추를 뜯어다 가져다주는데 

사료를 먹을 때와는 다르게 닭들이 광란의 파티를 하는 것을 보고 상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라는 걸 알게 되었다. 상추를 가져다주게 된 계기는, 텃밭에 상추들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아서이다. 

동네 이웃분들이 오며 사며 상추 모종을 챙겨주시는 덕분에 , 졸지에 상추 부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상추에도 다양한 종이 있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하나하나의 이름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양배추처럼 자라는 상추도 있고 

갈색 컬러도 있고 , 잎사귀가 화살촉처럼 얇고 뾰죡한 종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종들의 상추를 이웃분들이 주시는 대로 텃밭에 모조리 다 심었더니 

날마다 우리 집은 매일 자라나는 상추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매일 식탁이 풍요로워서 좋긴 좋은데 한편으로는 너무 많아서 살짝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던 상추. 


상추만 먹어도 배부른 요즘


하루 3끼. 모두 다 상추만 먹을 수도 없고, 

억지로 하루 3끼를 상추만 먹는다고 해도

이제는 상추가 자라나는데 가속도가 붙어서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식탁



이제는 식사 때가 되면

상추를 소비하기 위한 음식을 요리한다. 

예를 들면 삼겹살은 기본인 것이고, 상추쌈을 싸서 먹기에 좋은 매콤한 낙지볶음이나 제육볶음 종류의 요리를 많이 하게 된다. 이런 나날들이 잦아지다 보니, 어떤 날은 우리가 상추를 해치우기 위한 삶을 살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어느 날은 먹다가 먹다가 지쳐서 더 이상 목구멍으로 상추가 넘어가지 않게 되었을 때, 그릇에 씻어 놓은 상추를 다시 냉장고에 넣고 싶진 않아 (왜냐하면 내일 또 수북이 새로운 상추들이 자라날 것이기 때문에) 꼬순이들에게 가져다줘봤다. 


그랬더니 주고 뒤돌아서면 상추는 금방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 

알게 모르게 너무 잘 자라나는 상추 때문에 매일매일이 고민의 연속이었는데 꼬순이들이 너무 좋아해 주고 잘 먹으니, 새삼 꼬순이들이 고맙고 기특하게 느껴진다. 이런 식으로 매일매일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가는 상추들을 챙겨 가져다주는 일상이 이젠 즐겁게 느껴진다. 상추가 너무 많아서 나도 모르게 "상추 지옥이네~"라고 내뱉었던 말이 어느 순간 " 우와~ 상추 천국이다~"라는 말로 바뀌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렇다면 상추 말고 다른 야채에 대한 반응은 어떨까?






저녁 식사로 먹다가 다 못 먹은 쑥갓도 가져다줘봤더니

이것 또한 흔적도 없이 모두 금세 사라지고 만다. 


과일 껍데기, 야채 껍데기 등등

모든 음식물 쓰레기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모아서 가져다줘봤더니 

모두 깨끗이 잘 먹어주니 세상에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다. 


나는 음식물 뒤처리에 대한 걱정과 수고로움을 덜 수 있어서 좋고

꼬순이들은 일반 사료보다 더 건강한 자연의 음식을 섭취할 수 있어서 좋고 

그야말로 모두가 다 행복한 상황이 된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꼬순이의 활약으로 

나의 상추지옥은 상추천국으로 바뀌었다. 


요즘 날마다 꼬순이들에게 이것저것 챙겨서 가져다주는 재미가 있다. 

꼬순이들 덕분에 시골 생활에서의 삶의 만족도가 더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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