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비가 내리는 우리 집
서울에 친정엄마에게 다녀왔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라 설레기보다는 오고 가는 왕복 교통 속에서의 피로감이 더 크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서울에 오래 쭈욱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이렇게 한 번씩 친정 엄마를 만나러 서울에 나가게 되면 그렇게 낯설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가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어느덧 시골 생활에 익숙해진 시골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복닥복닥 바쁘게 살아가는 그들 틈에서 일찍이 빠져나올 수 있었던 나 자신을 기특해하고, 잘했다고 칭찬하며 지내고 있다.
1박 2일의 친정 엄마네의 방문을 마무리하고
다시 산속에 있는 우리 집으로 돌아오니 만개했던 아카시아 꽃들이 바람결에 우수수 다 떨어지며
꽃비가 휘감고 있는 풍경이 그렇게 황홀해 보일 수가 없다.
도시의 현란한 전광판과 눈부신 쇼윈도가 하나도 부럽지 않을 만큼의 장관이었다.
주머니에서 언론 휴대폰을 찍어 아카시아 꽃비가 내리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너무 아름다운 이 순간을 남편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까 낮에 우리 집이 너무 아름다웠어"라는 한 문장의 말로는 지금의 이 가슴 벅참이 다 표현되지 않을 것 같았기에 그 증거자료라도 남기자.라는 마음에 열심히 녹화버튼을 눌렀지만 휴대폰 동영상에는 내 눈으로 바라본 아카시아 꽃비가 제대로 담길 턱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휴대폰을 다시 접어 넣고 나는 그냥 하염없이 서서 아카시아 나무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마치 이 순간. 나 홀로 이 산과 1:1로 마주 서서 교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 멋진 광경을 오래오래 기억에 남기고 싶은데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해
그저 조용히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 주변에 이렇게나 많은 아카시아 나무가 있는 줄 몰랐는데, 다들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렇게 짠! 하고 등장하는 것인지 깜짝 놀라고 반가웠다. 살랑살랑바람이 불 때마다 일제히 향수를 뿌리는 듯 우리 집을 휘감고 도는 아카시아 향기 때문에 묘한 기분에 사로잡혀 나도 모르게 눈을 게슴츠레 뜨고 콧구멍을 연신 벌렁거리고 있다. 온종일 이 향기에 중독되어 있고 싶을 지경이었다. 계속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있어서 그런지 거울 속에 내 모습은 유난히 콧구멍이 넓어 보였다. 저녁에 들어온 남편에게 "내 콧구멍 좀 봐~ 좀 커진 것 같지 않아?"라고 물으니 남편이 "어, 진짜 커진 것 같아~"라고 말하고 하하하 크게 웃는다.
이 아카시아 향은 나만 매료된 것이 아니다.
남편도 저녁 9시만 되면 같이 마당에 나가자고 조른다. 그 시간이 되면 아카시아 향은 우리 집 뒷마당을 더욱 가득 휘감고 있었다. 우린 밤 마당을 한참을 콧구멍만 벌렁거리다 들어오곤 했다. 딱 일주일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니 우리 둘 다 콧구멍이 전보다 훨씬 더 커져 있는 듯 느껴져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장난스럽게 놀리기도 했다.
아카시아가 주고 간 향기의 선물은
우리 두 사람을 더욱 행복하게 해 주었다.
좀 더 오래 볼 수 있다면
좀 더 오래 느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유한하기 때문에 더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쉬워하지도 말고, 더 바라고, 더 욕심내지 말자.
그저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자고 생각했다.
가족 모임도 많고, 이것 저것 챙겨야 하는 일정들이 많아 분주하고,
조금은 예민해졌었던 나의 5월의 마음은
아카시아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더 크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보듬어 주는 듯 느껴져서 충만하게 보상받는 듯했다.
아카시아 나무를 발견하기 몇 달 전,
뒷 산에 나무가 너무 우거져서
남편에게 시간 날 때 톱으로 좀 나무좀 정리해 줘~라고 말했었는데
이런저런 일들로 빨리 실행해 옮기지 못했던 상황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는 순간.
아카시아 향기가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
나의 콧구멍이 더 커져서 이 좋은 향기를 더 많이 가득 담아볼 수 있다면 좋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5월만 되면 앞으로 콧구멍을 더 넓게 만들어봐야지
아주 잠깐, 찰나의 아카시아의 향기로운 시즌을 위해 나의 콧구멍쯤이야 넓어지면 어떠한가
잠깐 멈춰 서서
이 순간을 바라보고, 느끼고,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음에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