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순수함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
그것만으로써는 아무런 뜻이 없다. 아마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뒤에 마리는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런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마리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점심을 준비하면서 아무것도 아닌 일에 웃어 댔으므로, 나는 키스를 해 주었다.
사장은 생활이 변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 없고, 어떤 생활이든 비슷비슷하며, 또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에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는 불만이 가득한 말투로 나는 언제나 질문을 회피하는 대답을 하는 데다가 야심도 없는데, 그런 것은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아주 나쁜 태도라고 했다. 나는 다시 일하려고 자리로 돌아왔다. 사장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았으나, 내 생활을 바꿔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학생 때에는 야심도 있었지만 학업을 포기해야만 했을 때 그런 모든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보라색:
우아함/품위/화려/정서불안/우울 등을 묘사한다고 한다
_출처. 색채 용어사전
다만 이마 위에 울리는 태양의 심벌즈 소리와, 단도로부터 여전히 내 앞을 뻗어 나오는 눈부신 빛의 칼날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그 타는 듯한 칼날은 속눈썹을 쑤시고 아픈 두 눈을 파헤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기우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바다는 무겁고 뜨거운 바람을 실어왔다. 온 하늘이 활짝 열리며, 비 오듯 불을 쏟아 내는 것만 같았다. 나는 온몸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손으로 권총을 힘 있게 잡았다. 방아쇠가 당겨졌고, 매끈한 권총 자루의 배가 만져졌다. 바로 그 순간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게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버렸고 한낮의 균형, 행복을 느끼던 바닷가의 침묵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나는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총알은 보이지도 않게 깊이 박혔다. 마치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 같았다.
(변호사는) 어머니가 최근 양로원에서 사망한 사실을 알고 마랭고에 가서 조사를 해 봤는데, 그 결과 내가 엄마의 장례식에서 무심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당신에게 이런 걸 물어보는 게 상당히 거북합니다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내가 답변을 찾아내지 못할 경우 그것이 검사 측에 중요한 반박 자료가 될 수도 있습니다."그는 내가 협력해주기를 원했고 그날 마음이 아팠느냐는 질문을 했다. (중략)
그렇지만 나는 원래 감정은 뒷전이고 육체적 욕망이 먼저라고 설명했다. 엄마의 장례식 날도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엄마가 죽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것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변호사는 딱히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중략)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날 내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다고 말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아니요. 그럴 수는 없죠. 그건 사실이 아니거든요." 내 대답을 들은 그는 혐오스럽다는 듯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내가 그(변호사)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원망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소용이 없는 일이었고 귀찮기도 해서 단념하고 말았다.
볼 때는 내가 빈 손인 듯 보이지만 내게는 확신이라는 게 있다. 나 자신에 대한 것, 모든 것에 대한 확신. 그보다 더한 확신도 있다. 내 인생과 닥쳐올 죽음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렇다. 나한테는 이것밖에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진리를, 그게 나를 붙들고 있는 한 나도 그것을 붙들고 있다. 내 생각은 옳았고, 지금도 옳고 또 언제나 옳을 것이다. (중략)
아무도, 그 누구도 엄마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권리는 없다.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나의 모든 고통을 씻어주고 희망을 없애 버리기나 한 듯 온갖 신호들과 별들이 가득한 그 밤을 앞에 두고 나는 처음으로 세계가 가진 정다운 무관심에 마음이 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