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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추천하는아나운서 May 03. 2019

3.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국가란 무엇인가_세 번째 질문

• 제5장.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이 책에서 던지는 세 번째 질문.


첫 번째는 '국가란 무엇인가.'

두 번째는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그리고 세 번째,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5장의 첫 번째 작은 장에서 저자는 애국심의 '두 얼굴'에 대해 얘기한다.

생각지 못했던 개념인데 수긍이 간다.

'애국심은 내가 속하는 국가를 사랑하는 감정인 동시에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국가를 배척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 애국자 또는 국가유공자라고 불리며 존경받고 추앙받는 인물이 다른 나라에서는 테러리스트나 암살범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가 사살한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국민에게는 애국자이겠지만 우리에게는 범죄자일 뿐이다. 이 모두가 애국심이 지닌 두 얼굴 때문에 생기는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즉, 애국심은 사랑하지 말아야 할 외부의 대상을 전제로 삼으며, 사랑하지 말아야 할 다른 국가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애국심에 관해 주장을 펼친 세 사람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요한 코틀리프 피히테다.



[영원한 것은 조국뿐이다.-피히테]


피히테는 국가보다 민족, 즉 공동체를 중시했다. 그리고 그 민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는 '언어'라고 보았다. 그것도 '살아 있는 언어'다.

저자는 당시 사회적 배경을 이유로 삼는다. 당시 독일에서는 지배층과 민중의 교육적 문화적 분열과 단절이 있었고, 그것이 독일 민족을 단절로 이끌었다고 피히테는 보았다는 것이다. 당시 독일 귀족과 지식인들은 라틴어로 학문을 하고, 프랑스어를 기초 교양으로 삼았다. 반면 대다수인 독일 민중을 토속 독일어만 사용했다.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서로 다른 정신세계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의 민족으로 하나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으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피히테는 '보편적 국가 교육 제도'를 주장한다. 강제적 의무교육 도입이 그 핵심이다. 모든 어린이에 대해 강제적이고 보편적인 국가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독일 사회를 완전히 재구성하고자 했다.


어느 정도 수긍하며 읽고 있었는데, 이 개념이 어느 순간 이상한 쪽으로 흘러들어간다. 피히테조차도 이것을 의도하지는 않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런 피히테의 보편적 국가 교육은 나치 시절 '히틀러 유켄트'와 같은 청소년 세뇌교육 조직을 통해 부분적으로 실현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가가 국민을 교육해야 한다고 믿었던 유신시대에 일부 실현되었다.


이렇게 보면, 애국주의와 전체주의 사이에는 매우 거리가 가까움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피히테는 그 사이를 오간 것이다.



[애국심은 사악한 감정 - 톨스토이]


반면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애국심이 인간에게 해로운 허위 관념이라고 확신했다. 애국심은 권력자가 군대를 장악하고 동원하는 데 쓰는 파괴적인 감정으로, 국가가 애국심을 고의적으로 조장한다는 것이다. 애국심이란 자기 국민만을 사랑하는 감정이라고 말했다.  애국심은 모든 국가의 국민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국민들을 침략하고 학살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생각하던 시절의 개념이다. 지만 2000년 전에 인류는 이미 최고의 스승들을 통해 형재애라는 높은 차원의 개념을 깨닫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서로 긴밀한 관련을 맺어나갔다. 모든 국민들이 평화 속에서 상호 협력의 원칙에 따라 상업적, 산업적, 예술적, 과학적 우호관계를 이루며 살고 있다. 그런데 시대에 뒤떨어지고 인류에 해만 되는 이 감정(애국심)이 계속 존재하면서 왜곡된 방식으로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인류가 겪는 병폐 가운데 많은 것들이 애국심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면서 애국심을 조장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사람들을 궁지로 몰아넣은 세계적 군비확장과 파멸적 전쟁은 바로 이 애국심에서 야기되었다는 것이다.


옳지 못한 애국심, 호전적이거나 맹목적인 애국심은 나쁘지만 참되고 올바른 애국심은 매우 고양된 감정이며 이를 비난하는 것은 비이성적일 뿐 아니라 악의적이라는 반론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맹목적이고 호전적인 애국심과 참되고 올바른 애국심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이 그어져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며 톨스토이의 의견에 약간의 힘을 더한다.  다시 말해서, 톨스토이는 '비뚤어진 애국심'을 악으로 치부한 것이 아니라, 애국심 그 자체를 악으로 보았다.



[함께 귀속되고자 하는 인민의 의지 - 르낭]


르낭민족 창출의 근본적인 요소가 망각이라고 주장했다. 민족은 망각의 공동체라는 것이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인간 공동체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왔다. 씨족공동체들이 통합되어 작은 부족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끊임없는 폭력과 살상이 동반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도 예외가 없다. 이 모든 테러와 살상을 망각하게 한 시간의 축복이 없었다면 한반도에는 단일한 민족공동체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르낭의 주장이다. 기억이 계속해서 힘을 발휘한다면 우리는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영원히 형성하지 못한다. 더 큰 결속을 위해서는 망각과 용서가 필요하다.


르낭은 애국심에 대해서 자유주의적 접근법을 채택했다. 개인보다는 집단을 우선 존중하는 것이다. 또한 언어를 민족의 정체성으로 본 피히테의 견해를 단호하게 비판한다. 언어의 중요성을 과장하면 우리는 민족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한정된 문화에 갇혀버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무엇보다도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존재라는 기본 원칙이다.


그래서 르낭은 철학자와 정치가들이 민족을 규정하는 데 동원한 모든 요소를 다 거부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 자신의 의지뿐이라고. 그 의지의 뒷받침을 받을 때라야 애국심은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영토와 국경선을 설정할 때는 주민의 의지를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주민들에게 어디에 귀속되기를 원하는지 물어보라는 것이다. 결국 민족이란 함께 귀속되어 공동의 삶을 계속해나가기를 원하는 민중의 의지일 뿐이며 국가 역시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애국심이 국가에 대한 배타적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고 보았다. 함께 귀속되어 살면서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 또는 목적에 대한 사랑과 충성심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전쟁의 진짜 원인은 애국심이 아닌 정치제도에 있다고 보았다.



[총정리]


<애국심의 이해>

피히테에게는 '살아있는 언어'가,

르낭에게는 '함께 귀속되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했다.


<애국심이란>

톨스토이에게 애국심은 이성으로 근절해야 하는 유해하고 근거 없는 허위의 감정이었다.

피히테에게 애국심은 어떤 대상을 위해, 즉 언어에 의해 규정되는 민족집단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려는 의지였다.

르낭에게 애국심은 어느 민족 또는 국가에 귀속되어 함께 어떤 가치를 실현하려는 자신의 의지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저자의 의견.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고 소통한다. 합리적이든 아니든, 민중이 고귀하다고 여기는 어떤 말을 남이 독점하도록 허용하면 권력을 그들에게 넘겨줄 위험이 뒤따라온다는 것.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주의자들이 '애국심'이라는 말을 독점적으로 사용해왔고, 자유주의자들은 기피해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지식인이 자신의 철학적 소신에 따라 주장하는 것은 존중해야 하나, 정당과 정치인이 그렇게 한 것은 현명한 커뮤니케이션 전략이 아니라고 적었다. 게다가 르낭의 견해를 채택할 경우에는 애국심이라는 말을 굳이 기피할 필요도 없다면서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애국심은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함께 귀속되어 훌륭한 삶을 영위하고 공동의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정당과 정치인은 국민들 속에서 이 의지를 북돋울 책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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