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_네 번째 질문
혁명주의와 개량주의, 어느 것이 효과적인가? 어느 것이 옳은 길인가?
먼저, 정의.
혁명이란 '국가권력을 전복하고 새로운 권력을 수립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혁명 중에서 낡은 국가권력이 발 딛고 있던 사회의 기본 질서를 바꾸는 혁명이 사회혁명이다.
그는 취임 직후 반년 동안 무려 6000명의 마약범죄 혐의자를 재판절차 없이 처형하고 4만 명 이상을 체포했다.
6000명 가운데 경찰이 죽인 것은 2000여 명뿐이었고 나머지는 자경단을 자처하는 민간조직이 죽였다. 두테르테는 마약을 근절하기 위해 앞으로도 몇 만 명을 더 죽일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국제 인권단체가 인권유린이라고 비난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여론조사기관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필리핀 국민들은 두테르테의 마약 소탕 전쟁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맥락이다.
마약과 관련이 없는 다수의 국민들은 '나에 대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두테르테 정부가 폭력을 행사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혁명은 언제 일어날까.
이 점은 무조건 동의하지 못하겠다. 구체제의 붕괴로 시작된 사회혁명이겠지만, 새로운 체제가 무조건 질적으로 우수할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지?
저자의 의견인지, 인용된 것인지는 따로 표기가 되어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이 문단의 주장에 관해 개인적으로는 전적인 동의를 표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모든 혁명가가 옳은 것이게..
너무도 허망한 결론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한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으나, 톨스토이의 이런 결론은 조금 허망하다.
사회주의가 실패한 이유, 에덴동산이 지구 상에서 더 이상 현실화될 수 없는 이유, 우리는 알지 않는가?
그의 이런 결론은 결과적으로 '포기했다'라는 것으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사회혁명이 질적인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에 대해 내가 던졌던 질문에 관한 내용이 이번 페이지에서 언급된다.
사회혁명이 초래한 결과.
고귀한 동기를 가지고 일으킨 혁명이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것.
*플라톤식 접근법: 정치문제에 대한 목적론적 사고방식과 행동양식.
*유토피아 주의: 사회악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는, 세상에 품위 있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위에 거슬리는 사회제도를 완전히 근절해버려야 한다는 확신. --저자는 이를 비타협적 급진주의라고 일컫는다.
제한되지 않는 자유는 자멸한다.
-포퍼
마지막 말이 와 닿았다.
'폭력적 수단으로는 그 이상의 것을 성취할 수 없다.'
자유와 경쟁이 필연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과를 미리 예견하고 특정인에게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자유를 지키려면 법의 지배를 확고히 수립해야 한다. 하지만 자유와 경쟁이 초래한 불평등을 인위적으로 바로 잡으려는 시도는 반드시 법치를 파괴한다.
-> 법치가 파괴되면 자유를 지킬 수 없다.
-> 만약 부의 분배를 보장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의도적으로 누가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를 결정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경제 전체를 계획해야 한다.
->경제 전체를 계획하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전체주의로 가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ㅇ
분배의 정의라는 하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전체주의를 선택한다면, 전보다 더 큰 불만과 억압 아래 놓이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국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여기서 저자는 자유라는 하나의 가치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와 정의나 평등이라는 단일 가치가 지배하는 다른 전체주의 사회가 어떻게 다른 건지 묻고 싶다며 의아심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에 대해 나도 공감. '자유'에 사로잡혀 잘못된 논리로 빠져버린 듯하다.
하이에크와 포퍼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저자는 민주주의 문명국가가 걸어야 할 길은 모든 종류의 '사회계획'을 배척하는 하이에크의 길이 아닌 '민주적 개입'을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자고 주장하는 포퍼의 길이라고 얘기한다. 사회혁명으로 흘러가는 흐름을 막고 싶다면 더더욱 부지런히 점진적 개량을 시도해야 하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