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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추천하는아나운서 May 12. 2019

6. 국가의 도덕적 이상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_여섯번째 질문

KBS2 '대화의희열2' 유시민 편(2019.04.20,27)

머리가 복잡하다는 핑계로 한동안 브런치를 쉬던 중, 유시민 씨가 나오는 KBS2 '대화의 희열 2'를 보게 됐다.

그리고 그와 출연진들의 대화 가운데 마음에 와 닿던 말.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지" 보다는 "내가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라는 질문을 내게 묻고 사유할 것.
히 거기서 신지혜 기자가 한 말이 있었다.

"남들이 달아준 이름표로 생각하는 순간, 내 삶은 내 것이 아니게 된다."


형용사를 제시어로 썼던 지난번 작문에서 나는 분명 '형용사적 태도'를 갖자고 얘기했었다. '명사'로만 정의된 직업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그 앞에 붙을 '형용사'를 찾고, 추구하자고. 시험에 떨어지고, 복잡 미묘한 감정이 앞서면서 나도 모르게 잊고 있었다.


지난 시험은 지나갔고, 새로운 시험들이 열렸다. 나는 또다시 내가 추구할 형용사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직 마저 덮지 못한 그의 책부터 마무리하기로:)






01.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


정치는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한 활동"이며,
진보정치는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려는 정치활동"이다.
-유시민


미국 기독교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1892-1971) 개인과 국가의 행동은 상이한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판단을 내렸다. 개인과 국가는 도덕적 이상이 서로 다르다는 것 그의 주장이다.


개인으로서 사람은 서로 사랑하고 봉사해야 하며 서로 간의 정의를 확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믿는다. 개인에 있어서 '선'은 남을 이롭게 하는 행동이다.

반면에 인종적, 경제적, 국가적 집단으로서의 개인들은 스스로 그 힘이 명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한다. 집단에 있어서 '선'은 그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다른 집단을 이롭게 하는 것은 '악'이 될 수 있다.


극단적인 대표 사례가 '국가보안법'이다

국가보안법은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을 이롭게 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면 대한민국에 해를 끼치지 않아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니버는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justice)"라고 했다.


개인을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러 면에서 어쩔 수 없이,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이 결코 도덕적으로 승인하지 않을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종국적으로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이두 도덕적 입장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양자 사이의 모순도 절대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조화되는 것도 아니다.
-라인홀트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02. 정의란 무엇인가


국가가 실현해야 할 정의는 무엇일까?


플라톤은 건강하고 안정되고 통합되어있는 국가가 정의롭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각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개념을 채택해 써나갔다.


국가가 실현해야 할 최고의 도덕적 이상이 정의고 정의가 각자에게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주는 것이라고 할 경우,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 있다.



누가 무엇을 얼마나 받을 자격이 있는지 국가가 어떻게 판단하고 어떤 방법으로 집행할 수 있지?



그러한 지식과 권능을 가진 사람은 없다. 오직 신뿐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이 신을 대신해야 하기에 우리는 원칙들을 세워왔고, 그것이 민주주의 문명국가의 헌법이다. 홉스에 의하면 헌법은 성문화 된 사회계약이다.


헌법은 각자가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받도록 하기 위한 정의의 원칙을 담고 있다. 새로운 합의가 성립되기 전까지는 현행 헌법의 규정을 모두가 받아들여야 한다.


각 나라의 헌법은 무엇보다 먼저 그 나라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열거한다.

특별한 자격을 가진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공직과 명예, 소득과 부담을 어떤 원리와 절차에 따라 배분해야 하는지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아울러 이 모든 것이 정의를 실현하는 완벽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교정하고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열어두었다.


그렇다면 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국가가 실현해야 할 정의의 첫 번째 내용이다.

이 권리를 누리는 데는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인간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자유권적 기본권]
나는 인간으로서 무엇보다 먼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국가는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나를 잡아가거나 가두거나 처벌하지 못한다.
나를 고문할 수 없으며 나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도록 강요하지 못한다.
법률에 따라 체포하는 경우에도 나는 가족에게 연락할 수 있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범죄의 자백 말고 다른 증거가 없을 때 국가는 나를 처벌할 수 없다.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행위를 이유로 국가는 나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
나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살고 싶은 곳에 살아도 된다.
나는 내 마음대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사생활의 비밀을 보호받으며 남이 듣지 못하는 가운데 다른 사람과 통신할 수 있다.
내 양심에 따라 살면서 나는 내가 원하는 종교는 어느 것이든 믿을 수 있고 믿기 싫으면 아무 종교도 믿지 않아도 된다.
국가는 내게 특정한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원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고 검열 없이 책을 낼 수 있으며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고도 다른 사람과 함께 단체를 만들거나 집회를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공부와 예술 활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이것은 모든 국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이며,

국민이라는 것 외에 다른 자격이 필요하지 .



1948년에 만든 제헌헌법은 현행 헌법의 자유권적 기본권을 대부분 담고 있었다.
그러나 1987년 6월 이전까지 국가를 장악한 권력자들은 국민의 권리를 전면적으로 또는 심각하게 침해했다.
그때 대한민국에는 정의가 없었다.

국가가 자유권적 기본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려고 본격적으로 조력하기 시작한 것은
최초의 평화적 권력교체가 이뤄졌던 1998년 2월부터였다.

그러나 '역정권 교체'가 이뤄진 2008년 2월 이후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우리는 이 권리의 일부를 다시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국가란 무엇인가' 8장 중(p. 246)





자유 그 자체가 정의는 아니다. 자유가 있다고 정의가 수립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유 없이 수립할 수 있는 정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받을 수 없는 것도 있다. 공직, 소득, 부, 명예 등은 마땅히 그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주었거나 크고 작은 기여 공헌 희생을 한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인간의 기본권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것이 정의롭지만, 여기에 적용되는 정의의 원칙은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대하는 것이다.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헌법을 통해 이러한 공직 또는 권력을 어떻게 배분하는 지를 엿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원리는 헌법 제1조에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여기서 모든 권력이란 지식이나 부와 같은 개인의 사적 권력이 아니라 정당하다고 간주되는 강제력을 국민에게 행사할 수 있는 국가권력을 의미한다. 이 조항은 1919년 3.1 운동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정한 '대한민국 임시헌장'에 처음 등장한 이래 현행 헌법까지 그대로 이어져 왔다.





이 권력(정당한 국가권력)을 배분하는 원리는 경쟁이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시장, 도지사, 군수와 지방의원은 모두 국민의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로 선출한다.


입법권-국회

국회가 만든 법률이 없으면 국가가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아무것도 없다.


행정권-대통령 (정부의 수반)

국가의 원수이며 국가를 대표한다.
국가의 독립과 영토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을 수호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가가 중대하고 긴급한 위기에 직면했을 때 법률과 같은 효력을 내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전쟁이나 그와 비슷한 사태가 발생했을 때 계엄을 선포할 수 있으며,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는 국민의 기본권과 국회, 사법부의 권능을 정지시키는 특별조치를 할 수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같은 공직을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은 "정당"을 만든다.


정당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 활동은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공직을 배분하는 정의로운 방법은 "경쟁"이다.
학력이나 성별과 관련된 제한 조건도 없다. 거짓말로 대중을 현혹하는 사기꾼이든지 정직한 애국자이든지 무관하다. 당선 후에 공약을 잘 지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헌법을 잘 지키며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고,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탐할 수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직을 배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표를 많이 모으는 능력이다.
그 외의 기준들은 모두 참고사항일 뿐이다.



이 페이지는 저자가 의도했든지 아니든지 참 씁쓸했다.
내 사견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안타까움이 느껴진다고여겼다.
최근 KBS2에서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다. 전문 사기꾼인 최시원(양정국 역)이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지난주(작성일자 기준) 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학력위조, 스펙 위조, 인맥 위조, 따지자면 모든 게 거짓. 선거과정에서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진심 어린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 선거가 정당한 선거인 것일까. 하지만 드라마는 주인공만을 탓할 수 없을 만큼 다른 후보들의 어두운 부분을 함께 비춘다.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이라는 듯.


저자는 말한다. 만약 선거가 전적으로 자유로운 가운데 치러졌고 후보들이 법률이 금지한 반칙을 쓰지 않았으며 개표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면,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표를 많이 얻은 사람이 공직을 차지하는 것이 정의롭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그러한 기준을 두고 보았을 때
드라마 '국민 여러분!'에서 주인공 양정국은 정의롭게 공직을 차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전직이 사기꾼이라고 한들 그에게 펼쳐진 앞으로의 삶까지 낙인을 찍을 수는 없을 터이다.
그가 학력을 속인 것이 불법인가?
어쩌면 학력만능사회에 불만을 제기하는 신호탄이 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불편하다.
KBS2 드라마 '국민여러분!'



사법부에서 통용되는 공직 배분의 원리는 '지식의 지배'다.


사법부의 공직은 법률 공부를 잘하는 사람에게 배분된다.
그 사람의 철학과 인생관, 국가관과 성격이 어떠하든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국가가 시행하는 임용시험에서 획득한 점수가 기준이다.


이게 과연 합리적인 걸까? 


그러고 보니 어제 본 기사가 생각났다.

'교대생 잇단 성희롱 논란'

남학생이 여대생을 불법 촬영하려다가 잡혔고, 단톡 방에서 여학우, 심지어는 가르치는 학생들을 희롱하다가 알려졌다.
예비교사를 양성하는 교육대학교다. 몇 년 전에는 예비 의사를 양성하는 의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어 논란이 되었었다.
 의사, 교사, 판사, 검사, 변호사.. 남들이 부러워하는 소위 '사'자 직업들. 모두 공부를 잘하면 될 수 있는 점수 기준 직업들이다.

문제는 '공부만' 잘해도 될 수 있다는 것.
인성에 대한 관심이 떠오르면서 그들의 직업관에 대한 논란도 끊기지 않고 있다.

"지식의 지배"가 보이는 짙은 그늘.

하지만 여기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03. 시장은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다.


경제권력 또는 시장권력이라고 일컬어지는 소득과 부의 분배도 경쟁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가 간섭하거나 개입하지 않을 테니 저마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벌고 싶은 만큼 돈을 벌라는 뜻이다. 번 돈은 법률에 위배되지 않는 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 자유롭게 경쟁하고 계약하고 거래하되, 그로 인해 생기는 이익과 손실은 모두 당사자들이 알아서 소유하고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 해서 이뤄지는 소득과 부의 배분은 정의롭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아래의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면, 소득과 부의 분배를 정의롭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첫째. 모든 사람이 동등한 참여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누군가 처음부터 아예 기회를 얻지 못하거나 출발선이 현저하게 다르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부와 소득을 분배하는 것은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둘째.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경쟁의 규칙이 합리적이어야 하고 반칙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경쟁의 규칙 그 자체가 불합리하거나 반칙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면 그 결과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셋째. 만인이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동등한 주체로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계약과 거래의 어느 한 당사자가 상대방의 시혜 또는 선의에 의존해야 하거나 진정 자유롭게 판단할 수 없을 때, 경쟁이 만들어낸 분배의 격차는 정의로울 수 없다. 모든 시민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작년 겨울부터 올해 초까지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군 드라마가 있었다. JTBC 드라마 'SKY캐슬'이다.

드라마의 의도는 코믹 풍자였다고 했다. 하지만 그 실상은 풍자였다기보다 그만큼 우리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 되어버렸다. 제작진마저 어찌하지 못한 마지막화는 EBS에서 틀어줄 법한 동화이야기가 되어버려서  모두를 당황스럽게 했다.

해당 드라마는 내내 불평등한 교육환경을 보여주었다. 개천에서 나는 용은커녕, 그러한 방식으로 이어지는 학력과 재력 세습만 있음을 언급했다. 상위계층의 권력은 그렇게 이어지는구나 싶었다. 적어도 그 드라마에서는 마블 속 히어로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 '기회균등'이라는 단어는 등장할 수 없는 사회 같았다. 그게 지금의 현실이겠지만.


저자는 말한다.


현실의 시장은 욕망을 충족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데는 아무 관심이 없다고.
그리고 '자유로운 시장은 반드시 사회정의를 위협한다'고.


아니 너무 슬프잖아.
그럼 상류 사회인도 아니고, 뛰어난 지식인도 아닌, 평범한 서민 중의 서민인 나는 무얼 할 수 있는 거람.




그래서 헌법은 소득과 부의 정의로운 분배를 위해 필요한 권능 몇 가지를 국가에 부여했다. 


차별과 계급제도 금지, 무상교육, 공공복리를 위한 재산권 행사 제한, 무상 의무교육과 평생교육 진흥, 임금과 근로조건의 최소기준 도입, 노동권 보호 등의 목적은 모든 시민에게 쟁에 참여할 기회를 주고 출발선의 불평등을 교정하며 경제적 강자의 횡포를 막음으로써 시장 경쟁에 따른 소득과 부의 분배가 더 정의롭게 되도록 하는 것다.



리고 한 발 더 나아가 헌법 국가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소위 '경제조항'을 설치했다.



국가는 국민 경제의 성장과 안정,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해 경제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경제적 약자인 농민을 보호하기 위해) 농사짓는 사람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소작 제도 금지.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해) 지역 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짐.

(기업 생태계 먹이사슬 아래쪽에 있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육성.

(농어민들의 이익을 보호) 농수산물의 수급 균형과 유통 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안정을 도모.

생산성 품질 향상을 촉구하기 위한 소비자보호운동을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


이 조항들은 모두 경제적 약자를 특별히 보호하고 지원하려는 국가의 민주적 개입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성실한 이행은 일어나지 않았다. 소득과 부의 정의로운 분배를 실현하기 위해 헌법이 규정한 의무를 국가가 충실히 행했다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적어도 지금보다 조금 더 높지 않았을까.  - '국가란 무엇인가' 8장 중. (p. 225)


저자는 국가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법률과 제도를 만들지 않았고, 경제적 과정에 민주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 결과,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소득과 부의 분배는 정의롭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라고.



최근 김제동 씨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책 제목은,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하고 싶어요'.

그 책에서 김제동 씨는 이런 말을 한다. 헌법은 너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편지 같다고.
헌법에 규정된 의무는 그러한데, 그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이를 충분히 수행하지 않았거나 혹은 입맛에 맞게 변형시켜버렸던 것이다.

더불어 우리는 헌법에 대해 알지 못했고, 그래서 주장하지 못했다.
어떤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니, '지식'을 가진 자들이 '지배'를 더 쉽게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 - 김제동




[비정규직 노동자]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정의와 관련해 가장 큰 탄식을 불러일으킨 현상은 '비정규직 노동자'문제라고 저자는 언급한다. 국가의 도덕적 이상을 정의라고 볼 경우,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은 국가의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준다고.


EX 01.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

2005년 2월 노동부가 현대자동차를 노동관계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사내하청이라는 형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일을 시켰는데, 이것에 제조업에 금지되어 있는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검찰은 2년을 끌다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정규직 채용을 요구하다가 해고된 노동자들은 이것이 부당하다며 민사소송을 냈다.

2010년 7월 대법원은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며 해고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해고노동자들을 복직시키지 않았다.

현대자동차는 오랫동안 독립된 하청회사와 계약을 맺어, 오랫동안 그 회사 소속 노동자들을  정규직 직원과 함께 생산라인에 투입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시간 동안 같은 작업을 했다. 그러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현대자동차 정규직 직원에 비해 절반밖에 되지 않는 급여와 복지혜택을 받았다. 이런 현상은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대기업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자동차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어 평등한 대우를 요구했다. 그러자 하청회사가 그 노동자들을 해고해버렸다. 일을 시킨 현대자동차는 자기네 직원이 아니라며 대화조차 하지 않았다. 파업을 하려고 하면 불법파업으로 몰아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구속했다.

노동부는 이것을 불법행위로 간주하고 고발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노동부와 법무부는 모두 중앙정부의 집행기관이다. 저자는 결과적으로 이런 현실을 정부가 방치한 것이라고 보았다.

비정규직 그리고 사각지대에 있는 프리랜서까지. 방치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일반 사기업뿐만이 아니라, 내 주위 언론사에 다니는 사람들까지 그 수는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이다. 단지 그 세계가 좁아서 말을 못 할 뿐이다. 말해봤자 해결책이 없으니 어차피 목만 아플 거 괜한 고생을 하지 않는 것이다.


EX 02. 홍익대학교 청소용역 노동자 해고사건.(2010년 말)

대학 당국은 상시적으로 일을 시키면서도 그 노동자들을 직원으로 직접 고용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 용역회사를 바꿔버렸으며 실업자가 될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이 항의하자 학교시설에서 나가라고 요구했다.

대학 당국에서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고 일하면서 청소용구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노동자들의 처지는 용역회사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국가는 여기에 분명 개입할 요가 없다. 이 모든 것은 노동시장의 '자유로운'근로계약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노동자와 사용자 스스로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목적론적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심각하다.





국가의 목적은 정의를 세우는 것이다.


같은 일을 했는데도 급여와 근로조건에서 현저히 차이가 나는 것은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다루어야 한다는 정의의 원칙을 침해한다.
형식은 자유로운 근로계약처럼 보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존을 경제적 강자의 자비심에 맡겨야 하는 상황에서 맺은 근로계약은 진정한 자유로운 계약이라고 할 수 없다.


잘 언급되고 있지 않은 비자발적 프리랜서 또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아닐까.

'긱 이코노미'라는 용어가 있다. 비정규 프리랜서 근로 현황이 확산되는 경제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재즈 연주자가 갑자기 부족할 때, 밖에서 지나가던 단기공연팀(gig)을 데리고 와서 일일 연주자로 쓰고 급여를 지불하던 것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몇몇 언론사에서는 편리하게 자르고 편리하게 고용하기 위해서 '프리랜서'라는 명목으로 고용한다. 그리고는 해당 회사의 일만 할 수 있도록 업무시간 편성을 한다. 상근직처럼 출퇴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경쟁률이 높다.
경력에 한 줄이라도 더하기 위해서.

이것 또한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계약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철저히 국가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부분이겠지.

http://m.blog.naver.com/sdl1951/221375222957


저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적 존엄을 짓밟는 것은 정의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정의가 훼손당하는 현실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목적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이국가가 자기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소득과 부가 분배되는 과정과 결과는 결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어려움이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가가 법률을 정비하고 과정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27년 동안 내가 봐온 대한민국은 그저 돈 있는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였다. 돈이 권력인 나라. 소득분위에 따라 그 교육방식과 삶이 완전히 다른 나라. 삼성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나라. 하지만 싫더라도 어쩔 수 없이 해외에서는 '삼성'이라는 브랜드가 곧 애국심인 나라. 그런 우리나라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 굳센 의지를 갖고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  



자는 승자와 패자가 받는 각각의 보상 차이가 너무 클 경우, 국가는 결과의 격차를 사후적으로라도 보정할 책임이 있다고 얘기한다. 이것이 헌법에 명시된 사회보장과 사회복지를 증진할 국가의 의무이다.


물론 혜택뿐 아니라 부담도 정의롭게 분배되어야 한다.


헌법은 국민 모두에게 네 가지 의무를 부과한다; 교육/근로/납세/국방이다.






04. 진보자유주의


진보정치는
국가로 하여금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정의를 실현하도록 하기 위해
국가를 직접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활동이다.




국가의 정의는 시민들로 하여금 각자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똑같이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을 만인으로 하여금 누리게 하고, 각자가 마땅히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을 저마다 받게 만드는 것이 국가가 사람들 사이에 세워야 할 정의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국가공동체의 최고 목표 또는 최고 가치는 자유, 복지, 평등, 안전, 평화, 경 등이다.


자유는 자유권적 기본권에 대한 침해가 완전히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복지는 1인당 국민소득으로 표현되는 좁은 의미의 물질적 후생을 넘어 국민의 삶의 질을 가리킨다.

안전은 범죄뿐만 아니라 각종 재해와 실업, 질병, 노령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을 의미한다.

평화는 군사적 위협에 대한 단순한 방어를 넘어 한반도에서 무력충돌과 전쟁의 위험이 항구적으로 제거된 상태를 가리킨다.

환경은 단순한 주거환경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자연생태와 생활환경의 정착을 의미한다




홉스의 국가좁은 의미의 안전과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생존의 방편이었다. 국가주의 국가론을 신봉하는 '이념형 보수'에게는 여전히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로크와 밀, 스미스, 루소의 국가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자유주의 국가론을 따르는 '시장형 보수'에게는 자유와, 이를 통해 가장 잘 성취할 수 있다는 물질적 부의 증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국가주의와 시장형 보수가 손을 잡으면 '개발독재'가 된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도 이것이다. 


우리가 박정희 -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직접 경험했고, 현재 중국에서 꽤나 성공적으로 안착한  이념이다.

[보수정당-국가의 공안기관-보수언론-재벌 대기업-보수 지식인들]이 반세기에 걸쳐 형성한 소위 주류의 지배 카르텔 이념으로 보 국가주의와 보수자유주의가 결합한 것이다.




마르크스국가를 무엇보다도 평등의 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보았다.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의 영향을 받은 '이념형 진보'는 여러 고귀한 사회적 가치 중에서 평등을 상대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신좌파 또는 새로운 진보세력은 평화와 환경이라는 가치를 앞세운다. 그들은 자유를 부르주아적, 형식적자유라고 말한다.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만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은 자유는 강자의 이익을 지켜주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진보자유주의자는 어떤 가치 하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거나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진보자유주의는 모든 형태, 모든 종류의 절대주의를 거부한다. 어떤 하나의 가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는 순간 국가는 단일 가치가 지배하는 전체주의로 흐를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주의는 필연적으로 국가의 정의를 파괴한다. 진보자유주의자는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 개량의 길을 선호한다.




저자는 여기서 자신이 스스로 '진보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밝힌다. 분명히 자유를 소중히 여기며 간절히 소망하지만 그만큼 정의를 소망한다고 말한다. 자유를 실현하기 위해서 다른 가치들을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자유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가치들이 똑같이 존중받으며 공존하면서 사회가 발전해나가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자유주의 국가론이라는 땅을 딛고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를 바라보며 나아간다.'




니버는 점진적 개량을 옹호했다. 점진적으로 이상에 접근해가는 사회는 급진적인 이상을 실현하려다가 역사와 자연의 현실에 좌초하고 마는 사회보다 열등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니버는 어떤 가치 하나를 절대적 선으로 상정하여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태도에 대해 조심스럽지만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개인은 절대적인 것을 추구해도 정당하며 위험이 적다. 그러나 개인이 아닌 사회가 절대적인 것을 얻고자 달려들면 수백만 명의 생명과 재산이 하루아에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절대주의는 정책의 수단인 국가의 강제력을 잔혹한 독재로 바꿔버린다.



진보정치의 목표는 국가로 하여금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게 하는 것이다. 특정한 가치 하나만을 추구하는 '절대주의'로는 국가로 하여금 정의를 수립하지 못한다.


진보정치는 열정을 요구하지만 '광신주의'는 배격해야 한다. 그것은 일당독재, 신정국가, 국가의 신격화 등 여러 형태의 전체주의로 귀결될 뿐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과거 독재정권들에 대해 읽었던 기억을 바탕으로 동의했다. 그렇게 신격화되었던 독재정권들은 해당 독재자가 사망하고 다음 독재자가 정권을 이어받았을 무렵부터 정통성을 잃기 시작한다. 혹은 해당 독재자의 힘이 약해질 무렵 새로운 개혁 세력이 일어나 또 다른 신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국민들은 희생될 뿐이다.



진보정치는 자유로운 개인의 내면에 튼튼하게 닻을 내린 도덕적 이상과 인류에 대한 자비심,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과 겸허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를 요청한다.


진보정치에는 자유주의적 기풍과 철학이 필요하다. 이것을 갖추어야 우리나라 진보정치 운동이 대중의 더 큰 신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저자는 그렇게 말했다



시작도 마무리도 마담파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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