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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_김제동

내 것인 걸 알아야 주장하지!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그림이 너무 귀엽다는 것. (p.22)


"혹시.. 법을 아십니까?"


법을 잘 아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위기에 처해본 사람이거나,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사람이거나.


도로교통법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차가 없는 사람보다는 차가 있는 사람, 그중에서도 벌금을 가장 많이 내 본 사람인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울타리 안에서 평화롭게 사는 사람에게는 그 울타리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다. 반면에 울타리를 넘으려고 애쓰는 사람이거나 벼랑 끝에 몰려서 그것의 여부가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

하지만 아는 헌법이 있냐고 물어봤을 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 폐해는 그들이 사회에 처음 나갔을 때 드러난다. 아이들은 심심치 않게 위기에 처하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며 넘어간다. 그리고 불행해한다. 과연 그들만의 잘못이었을까.

<국가란 무엇인가>에서 작가 유시민 씨는 헌법을 꼭 읽어보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다고.


<당신이 허락한다면 나는 이 말 하고 싶어요>에서 김제동 씨는 헌법이 약자에게 남은 마지막 무기라고 얘기한다. 지금까지는 많은 이들이 잘 모르니까 '아는 이들'이 자신들의 힘인 양 누려왔던 것이라고.

제가 헌법 전문부터 시작해서 1조부터 39조까지 외우게 된 이유는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왜 이거 아무도 우리한테 안 알려줬지?' '이거 내 것인데 왜 몰랐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좀 억울하고 분해서 저절로 외워진 것 같아요.
-p.20


자신의 권리를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에게 불법적 행위를 하는 기성세대들의 행태가 종종 기사로 나온다. 내가 무얼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누린다.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어야 불합리한 것에 대해 따질 수 있다.


이 책이 그런 권리를 인지하기 위함의 시작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헌법 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p.23

사실 이 책의 앞장을 읽으며 조금 투덜거렸다.

그래 봤자...



문서에 좋은 말이 적혀있어 봤자 무소용이라고 여겨져서였다. 어차피 가진 자들이 누리는 세상이니까.


이런 말을 종종 듣지 않는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은 가진 자들의 것.


최근 황금 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왔다.

"부자인데 착한 게 아니야. 부자니까 착한 거야
"돈이 다리미야. 구김살을 쫙쫙 펴줘.


그런데 이 책에서는 얘기한다.


헌법이 사실은 약자들에게 남은 마지막 무기라고. 그러니까 꼭 알아야만 한다고.


그래서 궁금해졌다.


정말 몰라서 누리지 못하는 것인지. 1:3으로 지고 있는 축구 후반전 4분 전에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어요!"라며 희망 고문하는 캐스터의 말과 같은 것인지.(나는 그렇게 2019 U20 월드컵을 끝까지 보고 잠들었기에.. 하지만 후회는 없다..)





헌법 조항은 130조까지 있는데, 1조에서 37조까지 국민의 자유와 권리에 대해 얘기해요.
행복 추구권, 평등권,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등 여러 가지를 설명한 다음에,
37조 1항에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라고 멋지게 마무리를 해요.
-p.31


<헌법 전문>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종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 투표에 의해 개정한다.
(1987년 10월 29일)
-p.36


헌법의 전문에는 기회의 균등뿐만 아니라, 결과의 균등까지 보장하고 있다. 경쟁에서 이기지 못한 사람들까지 잘 살 수 있도록 보호해 줘야 한다고 적어놓은 것이 우리나라 헌법이란다.


JTBC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패배는 죄가 아니야. 우리는 벌 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고.
우리는 달리기를 하는 게 아니라 삶을 사는 거고. 우리는 패배한 게 아니라 단지 평범한 거라고.
우리의 국가는, 우리의 정치 공동체는 평범함을 벌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JTBC 드라마 <송곳> 5회 중



물론 내가 보고 겪은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겪었던 사회는 정규직만 옳다고 했고, 달리기를 하는 삶이라고 주입시켰다. 골인점에 먼저 들어가는 순서대로 잘 사는 사회가 이곳이라고 했다. 그래도 조금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보고 싶었던 이유는 이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공상소설이 아닌 헌법이라는 것. 그래서 내가 가진 권리가 무엇이라고 적혀있는지 알고나싶었다. 비빌 언덕이나 찾고 싶었던 심산이었달까.




<1조 1항>-함께 먹어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민주공화국의 '공'은 '공동'할 때 '공共'. '함께'의 뜻. '화和'는 '나무 목木' 위에 쌀알이 달려있는 '벼 화禾'. 그리고 그 옆에 '입口'들이 같이 있다.


입들이 모여서 밥을 함께 먹는 것. 그것이 저자가 해석한 '공화共和'다.

우리가 주인이 되어서 밥을 같이 먹는 나라. 저는 민주공화국을 그렇게 해석합니다.
-p.43


헌법 전문, 그리고 1조 1항은 확실히 너무 좋다.


하지만 마냥 좋다고 생각하던 중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너무 패배자 의식인가?



<1조 2항>-빽 조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저자는 영화 <변호인>의 대사들을 인용한다.


"국민이 국가입니다"
"데모하는 사람들이 천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 데모를 하게 만든 장본인들은 무슨 벌을 받아야 하나요?"


국가는 국민들의 든든한 '빽'이 되어줘야 하며 헌법이 그런 온수매트 같은 느낌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역시나 헌법에 적힌 말은 좋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나마라도 위안이 되었던 이유는 이 부분 때문이었다.


만약에 소수의 사람들만 법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규제한다면 국민을 통제하기가 쉬워집니다.
반면에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 헌법에 보장된 자신의 권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요구한다면 소수의 힘 있는 사람들로서는 성가시겠죠.
-p.56


이 책의 저자인 김제동 씨가 에드윈 캐머런 남아프리카공화국 헌법재판소 재판관과 얘기를 나눈 부분에서 그 재판관의 대답 부분이다.

알아야 가지며, 누릴 수 있다.


과거에는 성경번역이 금지 시 되어있었다. 소수의 사람들만 읽기 위해서였다.
과거에 하층민들에게 글자를 가르치지 않았던 이유는 너무 많이 알면 도망칠까봐였다고 했다.


문자를 알면 정보를 갖게 되고, 정보를 가지면 권력을 갖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본래 뜻은, 모든 백성이 두루 권력을 갖게 하려는 거였다고 생각합니다.
-p. 56

그러니까 지금 당장 현실이 시궁창일지라도, OECD 국가 중 행복지수가 34개국 중 32위일지라도(작년 기준), 헌법을 읽는 것은 어쩌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가진 권리를 하나씩 알아가는 셈이고, 직접 알아둬야 필요할 때 주장할 수 있으니까.



우분투 정신: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헌법은 기본 구조상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라고 요구하며, 사회경제적 권력이 없는 약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라고 명한다. 이는 옳고 꼭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는 입헌주의와 법치주의가 허울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의 약속>-에드윈 캐머런
-p.88


지난주 뉴스 중 흥미로운 두 개의 조사가 있었다.

겉으로는 비슷하게 보이는 설문조사이지만, 결과는 반대였 두개의 조사였다.

조사기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시기: 2018년/응답자: 전국 성인남녀 3천8백여 명
조사기관: 한국납세자연맹/시기: 지난해 4월/응답자: 성인남녀 3032명



세금을 내고 싶어 하지 않는 국민들의 심리는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시작된다. 게다가 지금의 대한민국은 '재벌 공화국'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헌법의 기본 구조나 목적과는 멀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한 이미지를 최소한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용기 있는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언급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마냥 용기 있는 정치인과 헌법학자들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 국민 각자가 견제와 검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론사는 이를 돕기 위한 장치가 되어줘야 하지 않을까.


조금은 낭만적인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을 덮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헌법들이 가득하고, 애초에 헌법의 목적과 구조가 약자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위함이라면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이미 공중파 방송사, 케이블 채널에 이어 유튜브 등과 같은 대안언론까지 횡행하고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공중파 언론사에서는 '헌법'에 대해 알리는 역할또한 해주는 것은 어떨까."


최근 '알바몬'광고에서 알바생들의 권리에 대한 짤막한 내용을 광고 속에 재미나게 녹여 관심을 받았다. 광고의 재미도 재미지만 그 정보 덕분에 많은 10대 20대 아르바이트 생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는 데에 도움을 받았다. 법적인 도움을 주는 것만 도움이 아니다. 가진 권리를 알려주는 것도 큰 도움이다.


이와 같이 국민들이 쉽게 헌법을 보고 익힐 수 있도록, 곳곳에 배치시키는 역할을 누군가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국민들이 자신이 가진 권리를 알고 직접 요구할 수 있도록 말이다. 언론사들이 현 위치에서 국민들을 돕기 위해 그런 역할을 해주는 것도 너무 좋은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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