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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_생텍쥐페리

버섯 말고 사람이 되고 싶어!!!

너무도 귀여운 알린을 얻기 위해, 굳이 알린 세트를 구매해 먹었다.. 뿌듯해:)

지난 주말, 토이스토리 4를 예매해놓고서 시간이 남아 아래층 서점에 들렀다. 영화를 앞두고 동심을 예열 중이었어서였을까. 예쁜 책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집어 든 책은 <어린 왕자>.


이 책을 고른 데에는 사실 몇몇의 이유가 더 있었다. 그중 하나는 작가의 창의력을 배우고 싶다는 열망.

어쩜 내가 해내는 생각은 다른 이들의 것과 차이가 없는지 한탄하던 중이었기에.


그의 그림 1호를 보고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상상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겨우 모자나 생각해내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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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그림 1호 (좌) / 작가의 그림 2호 (우)


그림까지도 너무 유명해:)

그림까지도 너무 유명한 <어린 왕자>는 다음과 같은 소개글로 시작한다.

이 책을 어떤 어른에게 바치게 된 것을 어린이들이 용서해주었으면 한다. (중략) 그 어른은 위로를 받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어른'을 나이로 판단한다고 볼 때, 현재의 나는 제법 '어른의 나이'에 속해있다. 그런 나에게 이 소개글(혹은 안내문)은 꽤나 위안이 되었다. '잘 돌아왔어! 널 위한 책이야!'라고 말해주는 기분이었달까.




01. 여섯 개의 별에서 만난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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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별. 그 별에 사는 '이상한 어른'들. 하지만 지금의 지구에도 그대로 존재하는 어른들.

일곱 번째 별인 지구에 도달하기 전에, 어린 왕자는 여섯 개의 별을 거쳐간다. 그리고 그 각각의 별에는 '이상한 어른'들이 산다. 이들은 지금의 지구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어른들이다.


첫 번째 별에는 자신의 권위가 존중되기를 원하는 '왕'이 살고 있다. "모든 것을 다스리노라"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해 그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는 그저 자신에게 복종하는 신하를 갖고 싶어 한다.


두 번째 별'허영심에 빠진 사람'이 사는 별이다. 그는 "어찌 됐든 나를 찬양만 해다오!"라고 얘기한다. 자신을 찬양하는 숭배자를 찾는다. 박수소리만 들을 뿐, 그 외의 소리는 듣지 않는다.


세 번째 별에서 어린 왕자는 '술꾼'을 만난다. 이 페이지에서는 너무도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재미난 대화를 엿볼 수 있다.

"뭘 하고 계시는 거예요?"
"술 마시지."
"술은 왜 마셔요?"
"잊으려고"
"뭘 잊어요?"
"창피한 걸 잊어버리려고"
"뭐가 창피한데요?"
"술 마시는 게 창피해!"

p.63

네 번째 별'사업가'가 사는 별이다.

"오억일백육십이만이천칠백삼십일 개란다.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고 또 정확해."
"별들을 소유하는 게 아저씨한테 무슨 소용이 있는데요?"
"부자가 되는 데 소용 있지"
"부자가 되는 건 무슨 소용이 있는데요?"
"새로운 별이 발견되면 그걸 또 사는 데 소용되지."

p.65

어쩌면 가끔의 내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날수록 다른 것은 몰라도 돈의 중요성만은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으니.


다섯 번째 별에는 '가로등 켜는 사람'이 가로등 하나와 함께 산다. 이 별의 주인은 조금 무의미해 보일 수 있지만, 자기 일에 충실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린 왕자도 그를 보며 가장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여섯 번째 별에는 '지리학자'라는 늙은 신사가 있었다. 그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효율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것도 같다. 하지만 '서재를 떠나지 않고 탐험가만을 기다리는'지리학자는 그저 지적 허영심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끔 만들었다.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가고 있을까. 어린 왕자가 나를 만났을 때 '역시 어른들은 이상해!'라는 말을 내뱉게 되지는 않을까. 어린 왕자를 웃게 만드는 어른이 되고 싶다.



02.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는 이렇게 얘기한다.


'참 이상한 별이군! 온통 메마르고 온통 뾰족뾰족하고 온통 소금 투성이야. 그리고 사람들은 상상력이 없는지 남의 말을 되풀이나 할 뿐이니... 내 별에는 꽃 한 송이가 있었지. 그 꽃은 언제나 먼저 말을 걸곤 했는데.....'

-p.92

괜스레 나로 하여금 멈칫하게 만들었다. 나름 말 좀 한다고 생각하던 나였다. 하지만 남의 말을 되풀이하고 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03. 너무도 예쁜 여우와의 대화 모음

"'길들인다'는 게 뭐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고?"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는 거야.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 거야. 난 네게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고.." _p.98


"사람들은 이제 시간이 없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게 되었어. 상점에 가서 다 만들어진 물건들을 사는 거야. 하지만 친구를 파는 상점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어. 친구를 갖고 싶으면 나를 길들여줘!"_p.101


"어떻게 하면 되는 건데?"
"가령,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시가 되면 난 벌써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되겠지!"_p.102




04. 여우가 가르쳐준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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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들을 다시 가서 봐. 너의 장미꽃이 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꽃이란 걸 알게 될 거야."_p.104


"그럼 비밀을 가르쳐줄게. 아주 간단한 거야.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들인 시간 때문이야."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하지만 넌 그걸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너는 영원히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_p.106


이후 사막에서 '나'를 만난 어린 왕자는 이렇게 얘기했다.

"별들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이야"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오직 껍질뿐.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깊숙한 곳에 어떤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서 내가 누군가에게 매력적이고 싶다면 내 안에 한 송이의 꽃이나 샘이 필요한 것이다. 그 누군가가 면접관이든지 처음 만난 사람이든지.



05. 마지막

"사람들은 다 별들을 바라보지만 그건 같은 별들이 아니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들이 길잡이가 되어주지.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저 작은 불빛에 지나지 않아. 학자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고 전에 말한 사업가에겐 금으로 보여. 하지만 저 모든 별들은 말이 없어. 아저씨는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별들을 갖게 될 거야."

"그게 무슨 뜻이야?"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볼 때면 내가 그 별들 중 하나에 살고 있을 테니까, 내가 그 별들 중 하나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 아저씨에겐 모든 별들이 다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야. 그러니까 아저씬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갖게 되는 거야! 그렇게 되면 나는 마치 별이 아니라 웃을 줄 아는 조그만 방울들을 아저씨한테 잔뜩 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될 거야"_p.129





하늘에 떠있는 을 바라보면서 '수많은 방울들'이라는 생각은 어떻게 한 걸까. 작가는 정말 '어린 왕자'를 만나기라도 했던 걸까.


누가 그랬다. 우리는 모두 한 때 어린아이였으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잘 풀어낸 글이나 그림을 보며 너무도 사랑스러워한다. 하지만 누구나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어른은 아니었을 텐데.


어린 왕자는 여섯 개의 별들을 거치면서 '어른들은 참 이상해'라고 되뇐다. 사막에서 '나'는 어린 왕자에게 꽃 이야기보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으니 그만 귀찮게 하라고 얘기한다. 그러자 어린 왕자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저씨도 다른 어른들과 똑같이 말하네."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어떤 별에 살고 있는 얼굴이 뻘건 아저씨 하나를 알고 있어. 그는 꽃향기라곤 맡아본 적이 없어. 별을 바라본 적도 없고 누구를 사랑해본 적도 없고 오로지 계산밖에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어. 그러면서 온종일 '나는 진지한 사람이야! 나는 착실한 사람이야!' 하고 되풀이하면서 여간 거만하게 구는 게 아니야. 그렇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라 버섯이라고!"_p. 38


'나'가 어린 왕자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동조해주었을 때 비로소 어린 왕자는 웃었다.


가끔은 시대와 사회에 너무도 순응하며 살고 있는 나를 돌아보며 '어쩔 수 없잖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어쩔 수 없잖아.'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여섯 개의 별에 사는 어른들과 같이 되어가고 있지는 않을까. 어린 왕자가 떠나고 싶어 하는.


어린 왕자와 친구가 되고 싶다. 모자를 보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생각해내고, 상자 그림을 보면서 그 안에 있는 양을 구경하고 싶다.


나도 버섯 말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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