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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추천하는아나운서 Oct 21. 2019

3. 국가는 역사적 잘못을 사죄해야 하는가?

9강.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의무를 지는가.(충직 딜레마)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늘 요구하는 것은 '사과'다. 

일본의 입장은 늘 동일하다. 

"이미 사죄했다. 우리의 책임은 끝났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처럼,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사죄 문제'는 만연해있다. 


독일은 유대인 대학살 책임을 인정해, 지금까지도 공개 사죄를 해오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에 원주민에 대한 정부의 의무를 주제로 논란이 있었다. 191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원주민 아이들을 강제로 백인 가정이나 정착촌에서 살게 만들었던 정책 때문이다. 2008년에 새로 선출된 케빈 러드 총리는 원주민에게 공식 사죄했다. 

미국에서 가장 크게 대두되는 사죄는 '노예제'와 관련되어있다. 흑인들에 대한 배상 운동은 제자리걸음이지만, 공식 사죄만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증했다. 2007년, 노예를 가장 많이 소유했던 버지니아 주가 가장 먼저 사죄를 했고, 이어서 앨라배마, 메릴랜드를 비롯한 여러 주가 사죄 대열에 동참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국가는 역사적 잘못을 사죄해야 하는가?


공개 사죄를 정당화하는 주요 근거정치 공동체에 의해 (또는 정치 공동체의 이름으로) 부당함을 강요당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부당함이 희생자와 후손에게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인식하여, 부당행위를 저지른 사람이나 그것을 막지 못한 사람들의 잘못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들이 사죄를 정당화하기에 충분한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역사적 부당 행위에 대한 사죄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흔히 내세우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사죄는 결국 부당 행위를 어느 정도 책임지는 것이며, 내가 하지 않은 행위는 사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세대는 앞선 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사죄해서도 안되며 할 수도 없다는 결론이다. 



1-1. 도덕적 개인주의: "내가 자발적으로 초래한 의무만을 떠맡는 것"


사죄에서 중요한 부분은 '사고방식'이다. '도덕적 개인주의'는 문제를 소극적으로 바라보는 원칙적 반박이다. 이 사고방식에 의하면 우리는 기존 도덕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목적을 선택할 수 있다. 즉, 관습이나 전통 또는 물려받은 지위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만이 스스로를 강제하는 도덕적 의무를 정할 수 있다. 집단적 책임의식은 없다. 앞선 세대가 저지른 죄는 그들의 죄이기에 보상할 책임감은 당연히 없는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빚을 졌다면, 그것은 합의라는 행위, 즉 암묵적이든지 가시적이든지 내 선택이나 약속이나 동의의 결과다. 


존 로크-선택하는 자아

 "우리는 선천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고 독립적이며, 어느 누구도 이 상태를 벗어나 자신의 합의 없이 다른 정치권력에 예속될 수 없다."

합법적인 정부는 반드시 합의에 근거해야 한다. 

이마누엘 칸트-선택하는 자아

우리는 스스로를 취향과 욕구의 덩어리 이상의 존재. 

자율적이라는 것은 내가 나에게 부여한 법칙에 지배된다는 뜻.'



1-2.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자유의 약점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점이 있다. 자발적 합의에 기초한 사회를 원한다면, 실제 합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연대와 충직의 의무, 역사적 기억과 종교적 신념에 관한 의무가 포함된다.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한 공동체와 전통이 요구하는 도덕이다. 즉, 도덕법(칸트)을 따르거나, 정의의 원칙(롤스)을 선택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의 위치를 정하고 지금의 우리를 만든 역할이나 정체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자신을 '부담을 감수하는 자아'로 여기지 않는 한, 내가 정하지 않은 도덕적 요구도 받아들일 자세를 취하지 않는 한, 우리가 경험하는 도덕과 정치에서 그 의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주는 억압적인 부담은 어떻게 극복해나갈 수 있을까. 카스트나 계급, 신분, 서열과 같은 타고난 지위로 정해지는 운명 등으로부터의 자유를 찾는 방법이 있을까. 



2-1. 서사적 존재: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는 그의 책 <덕의 상실>에서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다'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여기서 인간을 자발적 존재로 보는 시각의 대안으로 서사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하려면 그전에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개인이라는 '자격'만으로는 결코 선을 추구하거나 미덕을 실천할 수 없다."내가 속한 이야기와 타협할 때만이 내 삶의 서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내게 이로운 것은 그러한 역할과 관련된 사람들에게도 이로워야 한다. 이처럼 나는 내 가족, 내 도시, 내 부족, 내 나라의 과거에서 다양한 빚, 유산, 적절한 기대와 의무를 물려받는다. 



2-2. 매킨타이어; 젊은 독일인의 예시


매킨타이어는 젊은 독일인의 예를 제시한다. 

한 사람이 "내가 1945년 이후에 태어났으니, 나치가 유대인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든지 현재 나와는 도덕적으로 연관성이 없다"라고 믿는다. 

매킨타이어는 이 예에서 '도덕적 천박함'을 발견했다고 얘기한다. 그는 "사회적, 역사적 역할과 지위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생각은 잘못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기 삶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정체성이 형성된 공동체의 이야기에 속한다고 얘기한다. 나는 과거를 안고 태어나는데, 개인주의자처럼 나를 과거와 분리하려는 시도는 내가 맺은 현재의 관계를 변형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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